배우 이정재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 이정재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눈물로 지새운 밤이었어요. (웃음) ‘꿈에서는 좀 풀릴까’ 하면서 ‘헌트’ 시나리오를 썼어요. 일단 주제 설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고요, 실제 사건이 연상될 수 있는 장면들은 어디까지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작업을 해도 될까, 잘못 시도했다가 연기 커리어에도 큰 지장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컸어요. 또 제가 신인 감독이라 제작비가 많이 할애되진 않거든요. 그래서 더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로 입증해야만 했죠.”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로 30년차 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작이다. 당초 그는 제작을 염두에 두고 ‘헌트’의 원작 시나리오인 ‘남산’의 판권을 구입했다. 이후 주제의 방향성을 수정하면서 연출을 맡아줄 감독을 찾아 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이정재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을 맡고 메가폰까지 잡게 됐다. 영화는 80년대 격동했던 정치 상황을 절묘하게 녹인 스파이 첩보물로 세련된 액션과 탄탄한 심리전, 끝까지 높은 완성도로 지난 10일 개봉 이후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본격 흥행을 시작했다.

“초고에서 주제를 바꾸면서 인물 관계도에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박평호 원톱에서 투톱 구조로 바꾸고 조유정(고윤정)과 잠자리를 하는 설정도 다 빼버렸죠. 방주경(전혜진)도 원작에선 두 신 정도 나오는데 좀 더 역할을 확대했고요. 그리고 예전에 재밌게 본 고전들을 다시 찾아봤어요.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같은 작품들이요. 근데 막상 제가 직접 쓰려고 하니까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조화롭게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지루하지 않게 액션을 중간 중간에 잘 배치해야하고 두 주인공이 액션을 벌이기 직전까지 온도가 확 올라가게 만드는 과정도 매우 어려웠죠. 쓰다가 막히면 막 술을 마시면서 써보기도 하고, 봉준호 감독님이 카페에서 쓰신다기에 저도 카페에 쪼그리고 앉아서 써보기도 했어요.”

80년대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헌트’는 실제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훨씬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해외에선 다소 박한 평가를 받은 이유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로선 이해가 어려웠던 탓이다. 그럼에도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된 ‘헌트’는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7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뜨거운 호평을 얻었다. 당시 많은 피드백을 받은 이정재는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헌트’ 수정에 돌입했다.

“칸 영화제 기간 동안 기자님들의 인터뷰 요청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건 진짜 ‘오징어 게임’의 영향이었을 거예요. ‘헌트’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스케줄을 잡았어요. 수많은 인터뷰를 마치고 제가 느낀 건 한 30% 정도는 한국의 80년대 정치 사회를 전혀 이해 못하니까 전체적인 이야기를 못 읽었더라고요. 나머지 20%는 스파이 장르물 흐름을 보고 절반 정도 이해하셨고, 50%는 한국영화 팬이라 흥미롭게 보셨고요. 근데 30%의 관객들이 이야기를 놓쳤다는 게 제 입장에선 크게 다가왔어요. 이정도의 외국인들이 이해를 못한다면 우리나라 1020세대 관객도 비슷할 것 같았거든요. 이건 빨리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추가 촬영을 할 시간은 없으니까 편집을 최대한 활용했어요. 입술이 보이지 않는 쇼트에 다시 대사를 만들어서 후시 녹음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찍어둔 컷들은 다 명확하게 목적이 있는데 내용을 수정한 대사로 하나하나 편집했어요. 비행기에서 시작해서 한 3~4일 전체 수정하고 서울에서 편집본을 확인하고 들어가지 않은 컷들까지 싹 뒤져서 쓸 수 있는 걸 찾았어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 스태프분들에게 많은 부탁을 드렸어요. 그래도 더 재밌는 영화를 선사하는 게 감독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고 봐요.”

‘헌트’는 치밀한 심리전 속에서 스펙터클한 액션까지 챙겼다. 도심을 가르는 카체이싱,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대규모 폭파 신 등 스타일과 스케일을 모두 확보해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했다. 제작진은 무려 10000발의 총탄과 520대의 차량을 동원했는데, 저격 총탄 100발을 제외하고도 일반 탄의 수량만 총 10000발로 전쟁영화 수준의 규모를 자랑한다.

“액션은 박력이죠. 무조건 파워풀한 에너지가 느껴져야 해요. 짧지만 강력한 폭발을 보여줬다가 또 어떤 때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충격을 주고 다양하게 보여드려야 지루하지 않죠. 처음부터 액션 디자인에 많은 고민을 했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태프들이 함께해주셔서 좋은 아이디어들이 잘 구현됐어요. 특히 총기 액션 담당하신 분은 ‘인천상륙작전’ 때부터 같이 했는데 ‘전쟁영화보다 총알을 더 많이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엇보다 ‘헌트’를 이끄는 힘은 이정재와 정우성, 투톱 배우에게 있다. 두 사람은 1999년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만나 절친다운 완벽한 호흡을 선보였다.

“(정)우성 씨랑 저랑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같고 나이도 같은데요, 요즘 후배들이 자꾸 질문을 많이 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냐’고 꼭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도요. 그러다보니까 이제 진짜 우리가 나이를 먹었구나 싶죠. 저도 물어보고 싶어요. 내 인생도 잘 모르겠거든요.(웃음) 근데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정우성이랑 이정재가 친구고 같이 사업도 하는 거 대한민국이 다 알잖아요. 영화에서까지 개구진 모습으로 보이는 게 저희 나이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양은 없다’ 직후에 재밌는 영화를 찍었다면 그 나이엔 어울렸겠지만 반백년을 살았는데 미노이 유튜브에 출연해서 재롱을 피울지언정(웃음) 죽어서도 남는 영화에서까지 그런 모습만 보여주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은 거죠. 그러다보니까 주제도 잘 정하고 색깔도 뚜렷하고 관객 분들의 공감도 얻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게 ‘헌트’에요.”

오랜만에 한 작품에서 만난 이정재와 정우성은 ‘헌트’를 위해 각종 뉴스, 예능, 유튜브 웹 예능까지 출연하며 역대급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작품의 높은 완성도가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헌트’는 지난 10일 개봉 이후 단숨에 흥행 1위에 등극, 무서운 속도로 관객몰이 중이다. 이 같은 기세라면 올 여름 극장가의 최고 흥행작, 또 이정재에게는 성공적인 연출 데뷔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제가 각본도 쓰고 제작도 참여했지만 제일 크게 깨달은 건 역시 영화는 공동의 작업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동안 수많은 현장에서 ‘영화는 감독의 것이야, 감독의 예술이야’, ‘감독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야해’ 이런 말을 많이 들었지만 결코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현장에 가면 잘 안 될 때 막 소리 지르고 욕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걸 좀 참지’ 싶었던 기억이 있다 보니까 '내가 저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내가 설득 당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화했어요. 그렇게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아갔던 노력이 모여서 ‘헌트’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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