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한일전 0-3 대패의 참사가 나온지 9일이 지났다. 그러나 파울루 벤투와 대한축구협회는 묵묵부답이다. 2021년 3월에는 ‘친선경기’에서 지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명의의 사과문을 내더니 이제는 월드컵을 앞두고도 한일전 패배에 침묵하고 있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감독 선임 위원장(현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이 벤투 감독 선임을 발표했던 것이 2018년 8월 17일. 이제 곧 선임 4년을 맞는 벤투는 한국대표팀 역사상 ‘최장수’ 감독이 됐다.

그만큼 대표팀 감독으로 오래했으면 자연스레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고, 한국 축구와 K리그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벤투의 언행을 보면 한국 축구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는다.

ⓒK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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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안컵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양해했는데…

이번 동아시안컵 대회를 위해 K리그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한창 순위 경쟁이 치열한 시즌 중임에도 K리그1은 아예 시즌을 중단했다. FIFA가 공인한 A매치 휴식기가 아님에도 '월드컵을 앞두고 열리는 사실상 마지막 국내파 선수들의 평가전'이라는 명목하에 K리그는 2주간 강제 휴식기를 가졌다.

가뜩이나 K리그는 4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를 위해 24일이나 쉬었고 6월에도 이례적으로 길었던 A매치 휴식기로 인해 18일이나 중단했었다. 이로 인해 K리그 일정은 갈수록 빡빡해지던 상황에서 동아시안컵까지 겹쳐 K리그 구단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아시안컵 휴식기로 인해 K리그팀들은 8월에만 5경기(ACL 추가 경기 미포함)를 해야하는 것은 물론 9월에는 A매치 휴식기(19일부터)까지 많게는 18일, 적게는 15일간 5경기를 치르는 비정상적인 일정을 소화하게 됐다. 한 예로 FC서울은 9월 4일 경기부터 9월 18일 경기까지 15일간 5경기, 즉 ‘3일당 1경기’라는 지옥의 일정을 치러야하는 말도 안되는 일정이다.

이 모든걸 알고도 K리그 팀들과 프로축구연맹은 희생했다. ‘월드컵 호성적’을 위한 대승적 차원이었기에 원치않는 동아시안컵 휴식기를 받아들였다.

ⓒ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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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일본전에서 실험이나 한 벤투

사실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이나 홍콩전은 중요치 않았다. 홍콩의 경우 말할필요도 없는 아시아 내에서도 최약체며 중국의 경우 아예 국내사정과 리그 사정을 고려해 23세 이하팀으로나왔기 때문. 굉장히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대 구성이었고 연속 3-0 승리는 당연했다.

중요한건 일본전이었다. 냉정하게 일본전 하나만 보고 동아시안컵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홈에서 열리기에 주축인 유럽파는 없어도 나름 J리그 실력파로 팀을 꾸렸다. 가장 비등하게 맞설 수 있고 의미있는 90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이런 일본전에서 ‘굳이’ 실험을 했다. 수비수 권경원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실험했다. 결과는 ‘꽝’이었다. 중국이나 홍콩전에서도 할 수 있었던 실험이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이 없었던 것도 아니며 행여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었다 할지라도 K리그에 좋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즐비했지만 모두 패싱하고 전문 중앙수비수인 권경원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써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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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에 대한 의미를 4년간 감독하면서도 모르는듯한 벤투

게다가 일본전은 단순히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팀’이라는 것을 넘어 역사적, 정치적, 축구적 모두에서 말할 필요도 없이 큰 의미가 있다. 한일 축구의 라이벌리즘은 결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독일과 잉글랜드 등의 라이벌리즘과 뒤지지 않게 치열하다.

최소한 4년이나 한국 대표팀 감독을 했다면 ‘라이벌’에게 승리하려는 간절함, 선수들에게 명확한 동기부여를 하는 열정을 보여야했다. 하지만 벤투는 한일전을 그저 월드컵을 위한 ‘평가전’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지 않는 듯 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이 이런 인상을 뿌리깊게 한다. 벤투는 "예상했던 경기였다. 앞 두 경기와 다른 경기였다. 일본의 수준은 달랐다. 90분 동안 일본이 더 잘했다. 타당한 결과다"라며 "우리도 최선을 다했지만, 실수가 잦았다. 이런 경기에서 실수가 잦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일본은 굉장히 잘했다. 앞으로 잘 분석해 월드컵을 향해 준비를 잘하겠다"고 했다. 한일전 연속 0-3 패배에 대한 미안함이나 한탄은 전혀 없고 상대를 칭찬하고 월드컵 준비에 대한 얘기 뿐이다. 또한 ‘실수가 잦으면 대가를 치러야한다’며 다른팀 얘기를 하는 듯 유체이탈 화법을 쓰기도 했다. 한국인 감독이 한일전에서 연속 0-3 패배였다면? 고개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왜 박항서 감독에게 베트남은 '파파'라고 부르고 훈장까지 주며 열광하는 것일까. 물론 성적이 좋아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최대 라이벌인 태국을 상대로 10년만에 승리를 안기고 이후 태국전만큼은 대부분 이겼기 때문이다. 10년간 못이기던 라이벌을 한국사람이 와서 이기게 해주고 성적까지 좋으니 사랑하지 않을 수밖에.

그만큼 라이벌전이라는 것은 그나라 국민들에게는 의미가 각별하다. 그런데 대표팀 감독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4년이라는 역대 최장수로 부임하고 있음에도 일본전 패배를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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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선수들에 대한 존중 부족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K리거 위주의 한국이 J리거 위주의 일본에게 패하자 ‘K리그와 J리그의 수준차’라는 시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팀들이 J리그팀들을 압도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기에 직접적 비교는 어렵다.

문제는 벤투 감독이 K리그 내에서도 압도적인 활약을 한 선수들보다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만 뽑았다는 것이다. 물론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K리그에서 잘한다는 선수들을 제외하고 뽑히고도 놀라운 선수들을 선발했다면 그 책임은 져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실수가 잦았다’, ‘타당한 결과’와 같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하면 곤란하다. 또한 비주전급 선수가 나오면 일본정도의 팀은 이기기 힘들다는 뉘앙스를 풍겨서도 곤란하다.

2005년 이천수, 2009년 이동국, 2013년 김신욱, 2017년 이재성까지. 월드컵이 열리는 직전시즌에 K리그 MVP를 차지한 선수들은 모두 다음해 월드컵에서 주축 역할을 했다. K리그 최고는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인정받았기 때문. 2001년 신태용이 2002 월드컵에서 선발도 안된 경우이긴 하지만 20년전이며 당시 신태용은 1997년이 마지막 대표팀 차출이었을 정도로 이후 커리어는 아예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었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반면 벤투는 2021시즌 K리그 MVP인 홍정호, 득점왕인 주민규 등 K리그 최고 선수를 아예 써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홍정호나 주민규는 올시즌에도 여전한 활약 중이다. 홍정호가 이천수-이동국-김신욱-이재성의 사례와 다르다고? 홍정호는 한국인 최초 유럽 빅리그 주전 센터백까지 했던 선수다. 당시의 이천수-이동국-김신욱-이재성만으로 비교한다면 뒤질게 전혀 없다.

거기에 현 K리그 공격포인트 1위인 강원FC의 김대원, '돌아온 탕아' 이승우, U-22 자원 중에 최고로 여겨지는 양현준 등 어리고 뛰어난 선수들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현재 K리그에서 가장 ‘핫’한 선수는 벤투호에 없다. 즉 K리그에서 아무리 잘해도 벤투 입맛이 아니면 절대 대표팀에 갈 수 없다는 패배의식을 K리그 선수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K리그에서 최고 활약으로 주목받는 한 익명의 선수도 “이렇게 잘해도 안뽑아주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뽑히는 사람만 뽑히는 곳이 대표팀 아닌가”라며 허무한 마음을 귀띔하기도 했다.

2021시즌 K리그 MVP 홍정호. ⓒ프로축구연맹
2021시즌 K리그 MVP 홍정호. ⓒ프로축구연맹

▶월드컵만 잘하면 된다? 못하면?

벤투는 오직 ‘월드컵’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럴 수 있다. 월드컵 호성적을 위해 벤투를 대표팀 감독 역사상 최고액을 주고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컵에서 잘해야 한다.

그런데 월드컵에서 행여 못한다면? 4년간 해온 축구가 통하지 않는다면? 벤투는 떠나면 그만이다. 외국인이며 계약기간도 월드컵까지다. 호성적을 내도 계약 연장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벤투 감독은 한국을 발판으로 이후 다시 재기에 성공하고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거스 히딩크(이후 네덜란드 대표팀-첼시 등 감독 역임), 딕 아드보카트(이후 벨기에-네덜란드 대표팀 등 감독 역임) 등의 사례를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 축구 역시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커리어 이후 하락세만 겪던 벤투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통해 성과를 내고 이후 승승장구 해 또 다른 히딩크 사례가 벤투에게서 만들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의 책임은 없다. 어차피 계약 만료며 떠난다. 이후 남는건 우리며 한일전을 연속 0-3으로 지고 월드컵에서도 실패한 한국 축구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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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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