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투수 박정현이 역투하고 있다.
삼성 투수 박정현이 역투하고 있다.

지난해 14승(5패)을 거둬 2007년 데뷔후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선 삼성 백정현(35). 시즌후 4년 38억원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했다. 38억원엔 계약 기간 동안 매년 두자리수 승수를 올려달라는 팀의 염원이 듬뿍 담겼었다.

하지만 백정현은 4일 현재 1승도 못 거두고 8연패(평균 자책점 6.44)의 부진에 빠져있다. 백정현의 부진 탓에 팀은 지난해 정규리그 2위에서 올해는 4일 현재 7위와 게임차 없는 6위에 그치고 있다.

백정현 말고도 올해 ‘FA 먹튀’는 더 있다. ‘4년 115억원’의 두산 외야수 김재환(34)은 타율 2할3푼4리(12홈런, 39타점)로 이 부문 40위권에 있고 ‘6년 100억원’의 NC 외야수 박건우는 부상 탓이긴 하지만 한달 넘게 결장을 하고 있다. 삼성 외야수 구자욱(29)은 ‘5년 최대 120억원’의 계약 첫 시즌부터 부상에 허덕이고 있다.

‘6년 150억원’의 KIA 외야수 나성범(0.303, 12홈런 51타점)과 ‘4+2년, 115억원’의 LG 외야수 김현수(0.281, 14홈런 57타점)도 몸값에 비해 활약은 구단과 팬들의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FA 먹튀’는 해마다 끊임없이 생겨 각 구단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왜 이런 계약 부실사례는 멈추지 않으며 방지 대책은 없는 것일까.

먼저, FA 계약후 첫해 부진은 거의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 100억원 안팎의 거금을 손에 쥔 선수들은 일단 엄청난 ‘포만감’에 사로잡힌다.

예를 들어 80억원이면 해마다 2억원을 써도 40년을 풍요롭게 살수 있는 거금이다. “이젠 고생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중고교시절부터 20여년간 참아 왔던 ‘스트레스와 금욕 생활’에서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느낄수 있다.

더구나 계약이 끝난 시점은 비활동기간(12월과 이듬해 1월까지)으로 놀기엔 딱 안성맞춤이다. 김성근 전 감독이 “FA 계약하면 배부터 나온다”는 말이 이 현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또 FA 대박 소식을 들은 친구, 선후배들이 ‘한턱 내라’는 연락이 끊이질 않는다. ‘돈 빌려달라’는 친척들(형제 포함)의 무리한 요구도 뒤따른다. 최악의 사례이긴 하지만, FA 대박후 술에 빠져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됐고 FA 계약금의 절반을 위자료로 날린 후 이듬해 엄청난 부진에 시달린 선수도 있다(3년 30억원에 계약했지만 홈런과 타점, 장타율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FA 모범생 KT 박병호도 있지만).

하여간 FA 계약후 사생활 관리나 자산 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선수 생활의 최대 고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구단에서 계약직후 특별 관리(상담 포함)가 필요한 부분이다.

백정현처럼 ‘14승에서 0승으로의 추락’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처럼 선수에게만 유리한 인센티브 계약을 할 게 아니라 기록 옵션을 걸면 어느 정도 부진은 예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봉 20억원으로 정하더라도 매년 일정 기대치에 못미치면 연봉을 깎는 방법이 있다. 활약이 뛰어난 선수가 FA로 시장에 나오면 10개 구단의 열띤 경쟁이 붙어 실현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FA 먹튀’는 메이저리그(MLB)뿐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NPB)에서도 해마다 일어나고 있다. 먹튀들은 ‘FA 직전 맹활약⟶FA 첫해 부진⟶FA 재계약 1년 전 다시 맹활약’의 패턴으로 구단들을 우롱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구단들은 ‘옥석(玉石)’을 가리기가 힘들고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KBO 리그 선수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MLB와 NPB는 선수 노조를 결성해 10년 안팎으로 구단과 투쟁을 벌여 힘겹게 FA라는 결실을 따냈으나 우리 선수들은 ‘거저’ 얻었기 때문이다.

박찬호, 고(故) 조성민 등과 ‘황금의 92학번’으로 불렸던 임선동(49ㆍ진영고 감독)은 1996년, 연세대 졸업을 앞두고 NPB 진출을 노렸다. 하지만 NPB와 LG 트윈스, 실업팀 현대 피닉스와의 사이에 3중 계약 파문을 일으키며 법정 공방을 벌였다. 결국 “드래프트는 담합 행위로 직업선택의 자유를 무시했다”는 최종 법정 판결이 나와 FA의 길이 열리게 된 것. 다시말해 법원의 권고사항으로 ‘달콤한 과실’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향후 계약을 하게 되는 선수들은 ‘투쟁없이 거둔 자유계약’의 근원을 잘 기억하며 성실히 계약조건을 준수하기를 기대해본다. 또 거액 계약 선수들의 기부 활동도 이어졌으면 한다. 지난 겨울 FA 시장은 총 15명 989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으나 1억 이상 기부한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 본지 객원기자

김수인 객원기자
김수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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