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사진제공=CJENM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사진제공=CJENM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소외되고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찍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는 점이예요."

배우 송강호에게 한국 남자 배우 최초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겼고 국내 톱 여가수인 아이유를 배우 이지은으로 전 세계에 알린 영화 '브로커'는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일본 거장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한국 최고 배우진인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 이지은의 한일 당국간 냉각 모드를 뛰어넘는 민간의 아름다운 만남 정도로 손쉽게 여겨지고 말수도 있겠다. 

하지만 '브로커' 제작의 단초는 배두나가 주연을 맡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공기인형'(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두나는 이후 '꼭 다시 한 번 같이 영화를 하면 좋겠다'고 만날 때마다 서로 다짐을 나누곤 했다. 이후 부산영화제 단골 손님으로 매번 영화제를 찾았던 감독은 한국 배우 중 가장 함께 하고 싶은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송강호를 떠올리곤 했다. 때마침 영화 '밀양'을 본 직후 '송강호 배우와 함께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바로 앞에 송강호가 서 있더란다. 그 때 감독은 "이건 인연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브로커'의 개봉 직전 서울 삼청동에서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나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하나의 질문에도 잠시의 침묵 속에서 고심하며 진지하면서도 또 때론 개구진 청년처럼 영화 제작 과정 전반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양파를 까듯 하나씩 하나씩 공개했다. 

"송강호 배우와 여러 차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강동원 배우는 2015년 '검사외전'으로 일본에 왔을 때 처음 만나게 됐죠. 이런 여러 만남이 거듭되면서 세 배우가 등장하는 플롯을 쓰게 됐고 이 세 배우에게 그 플롯을 보여주게 됐어요. 그 단계에서 이미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이야기의 뼈대를 만든 상태였죠."

실제 '브로커'가 영화로 제작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준 공은 강동원의 몫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강 배우가 구체적 조언과 서포트를 해줬다. 만약 한국에서 찍는다면 이런 시스템, 이런 회사와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조언해줬고 영화사 집 제작사를 연결해줬다. 처음에는 꿈 같은 이야기였지만 점차 구체적으로 되어갔다. 촬영 시기가 정해진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라며 한일 영화인들이 하나의 목표를 두고 뭉치게 된 이야기를 전했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송강호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베이비박스에 놓인 아기를 양부모들에게 연결시키려는 브로커 상현 역을, 강동원이 베이비 박스가 위치한 시설의 직원이자 상현의 파트너인 동수 역을 맡았다. 이지은(아이유)가 아기를 베이비박스 앞에 버렸다가 아기의 새 부모를 찾아주겠다는 상현과 동수의 여정에 참여하게 되는 소영 역을 연기고 배두나와 이주영은 이들의 여정을 집요하게 뒤쫓는 형사 수진과 이형사를 연기했다. 

"이 이야기의 출발점 자체가 신부복 차림의 송강호가 베이비박스에서 아기를 꺼내 안고 자상한 얼굴로 말을 걸지만 결국 팔아버리는 이미지였어요. 제 머릿 속에서는 그 이미지가 떠나 본 적이 없죠. 선악이 혼재된 존재로서의 송강호, 그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어요. 이 영화의 출발점은 송강호 배우였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베이비박스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찍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양한 취재 과정 속에서 일본의 입양 제도와 양부모 제도에 대한 조사를 했고 일본 구마모토 현에 아기 우편함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취재를 통해 한국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었고 한국의 베이비박스에는 일본보다 10배 가까이 되는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맡겨진다는 사실이 조사됐다. 만약 일본에서 이 소재로 촬영했다면 어떤 배우를 캐스팅했을지 질문이 나오자 일본 버전은 생각해본 적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영화는 일본의 이야기를 전제로 쓰다가 실현이 안돼서 한국에서 찍은 게 아니에요. 애초 A4 세 장짜리 플롯에서부터 한국 배우들 이름이 있었어요. 한국은 입양에 대해 널리 인식이 되어 있고 일본보다 입양 제도가 많이 정착돼있다는 인상을 받았죠.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일본보다 한국이 더 어울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영화로 만들었죠."

일본 배우 야기라 유야에게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아무도 모른다'(2004)부터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영광에 빛나는 '어느 가족'(2018)까지 그가 만든 영화들에는 부모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과 부모의 이혼으로 성장기 속 혼란을 겪는 아이, 뒤바뀐 아이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가정, 혈연 관계가 전무한 유사 가족 등 해체되고 절망의 나락에 빠진 가족부터 어딘가 이지러지고 톱니가 빠진 듯 보이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유사 가족까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어김 없이 등장하고 영화속 아이들은 방임 혹은 학대 등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 성장통의 끝자락도 그닥 희망적인 돌파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우리가 속한 사회 속 다양한 소외 가정들과 방임 아동들을 냉정하리만치 차가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면서 관객들에게 칼날 같은 질문을 들이댄다. 영화를 직시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도 사회 속 불합리한 양육의 행태들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자꾸 인지하게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버려지고 학대 받는 아이들, 혹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 받는 아이들에 대한 끊임 없는 관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의 자서전에는 그가 6~7세 무렵 지하철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됐던 사연이 등장한다. 그런 원체험이 무의식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물었다. 

"어릴 때부터 방향치였고 지금도 수시로 길을 잃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길을 잃은 것이 트라우마 정도의 특별한 체험은 아니었어요. 아이들에 관해 관심이 있고 제 영화에서 반복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처음 영화를 찍으려 준비했던 내용이 '아무도 모른다' 였어요. 이 작품은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였지만 그걸 썼을 당시 저는 20대 나이였죠. 그때 왜 아이들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답하기는 어려워요. 교사 자격증이 있었고 처음 찍은 다큐멘터리가 나가노 현에 사는 아이들이 소를 키우는 이야기를 홈 비디오로 찍은 거였어요.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이 '왜 자연 풍경을 담은 다큐를 찍느냐, 당신이 태어났고 자란 도쿄에서 마주해야 할 아이들이 있지 않냐고 따끔하게 충고를 해주셨어요. 훈훈하고 따뜻한 다큐를 찍으며 힐링받을 때가 아니란 걸 깨달았죠. 또 그 무렵 일어났던 사건이 '아무도 모른다'의 바탕이 된 사건이었어요. 그때 바로 '이게 내가 할 일'이라고 깨달았죠. 저 스스로도 왜 버려지는 아이들을 주제로 다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찍는 일이 매우 재미있다는 점이예요."

칸 국제영화제 상영 당시부터 '브로커'에 박한 평가를 내리거나 비판적 리뷰를 내놓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영화 전반의 따뜻하고 훈훈한 정서와 달리 극 중 등장 인물들 대부분이 범죄자이며 애초 아이를 돈 받고 팔려는 범죄 행위가 이어지다가 아이를 지키기 위한 유사 가족 형태의 새 공동체로 대치된다는 점이다.  

"지난 20년 가량 내가 느껴왔던 것은 일본에서는 범죄가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의 책임이고 개인 책임이라는 점이예요. 빈곤이나 범죄가 개인의 책임으로 생각되는 풍조가 있어요. 저는 이런 풍조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생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권리 제한을 받는게 당연하다'는 생각들이 있어요. 이번 영화 혹은 다른 영화 에서 사건를 다룰 때 제가 취하는 입장은 '개인의 원인외에 어떤 원인이 있을까'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그들이 범죄에 손대는 이유가 비단 개인의 문제였을까요? 사회적 요인의 영향들을 제 시야 속에 담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어요. 이 영화에도 이런 입장이 근저에 깔려 있어요. 범죄를 용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범죄는 잘못된 것이지만 '그 사람들의 삶에 가치 없느냐? 전체를 부정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상현도 처음에는 이기적 입장에서 아기를 팔려고 하지만 소영이가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걸 들은 후 우성을 지키는 행동에 나서게 되잖아요. 그가 행한 선택으로 우성의 생명은 지켜지게 되죠."

어린 나이에 가출해 생계를 위해 성매매까지 하게 된 20대 여성 소영, 어느 날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결국 아기를 교회 베이비박스 앞에 버리게 되는 인물이다. 아기를 버린 이튿날 다시 아기를 찾으러 갔다가 아기를 더 좋은 가정에 입양시켜 주겠다는 브로커 상현과 동수의 여정에 동참하게 되는 이 어려운 캐릭터에 한국 최고의 여가수이지만 영화 배우로서는 거의 활동이 전무했던 이지은을 캐스팅한 이유는 뭘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때 빅팬이 됐어요. 그 드라마를 보고 반했죠. 한없이 절제된 연기를 드라마 전편에 걸쳐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또 배우들과 리딩 현장에서 이지은 목소리를 들어보니 정말 풍부한 표현력이 있더군요. '태어나줘서 고마워' 대사는 이지은의 목소리였기에 더 울림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를 이지은 씨 목소리로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최고의 선물이예요.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을 이지은 캐스팅 이후에 그녀의 목소리를 전제로 추가해서 썼습니다. 동수에게는 만나보지 못한 엄마의 목소리로 들렸을 것이고 상현에게는 어쩌면 앞으로 만날수 없는 딸의 목소리로 들렸을 수 있어요. 관람차 안에서 동수가 소영에게 '우리 엄마대신 용서할게'라는 말을 했잖아요. 소영이 동수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한 건 그 대사에 화답한 것이라고 보셔도 좋아요. 두 부분이 서로 호응하는 것이라고 봤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음 차기작 영화는 일본에서 찍을 계획임을 알렸다. 그는 "영화로는 일본에서 차기작을 찍을 계획이다. 초등학교가 무대인 이야기이고 또 아이가 나온다. 하지만 개인적 트라우마가 이유는 아니다"라며 웃음지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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