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토끼는 빠르다. 어떨 때는 엄청난 속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반면 거북이는 느리지만 제 갈길만 묵묵히 간다.

야구에서 ‘구속’은 잘 던질 수 있는 하나의 무기는 맞지만 절대요소는 아니다. 구속이 빠른 투수가 최고라면 평균 90마일도 던지지 못하는 류현진(35·토론토 블루제이스)은 설 곳이 없다.

오타니 쇼헤이(28·LA에인절스)와의 역사적인 맞대결. 하지만 류현진은 승리했다. 평균 88.7마일짜리 속구로 95마일 이상을 심심찮게 뿌려대는 오타니에게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 값진 승리였다.

ⓒAFPBBNews = News1
ⓒAFPBBNews = News1

류현진은 27일(이하 한국시각) 오전 10시 38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엔젤스타디움에서 열린 LA에인절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해 5이닝동안 65구를 던져 2실점 6피안타 1볼넷 1탈삼진으로 시즌 2승째를 따냈다.

평균자책점은 기존 6.00에서 5.48로 내려갔고 토론토가 6-3으로 승리해 류현진은 승리투수, 에인절스 선발로 6이닝 5실점을 기록한 오타니는 패전투수가 됐다.

이날 류현진은 5회 마지막으로 상대한 오타니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을 잡지 못했다면 탈삼진을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할 뻔 했을 정도로 타자를 압도하진 못했다. 오히려 1회와 3회,4회 위기가 있어 불안하기도 했다.

구속마저 평소나오는 평균 89.6마일에서 0.9마일 떨어진 88.7마일만 기록했다. 영 구속이 나오지 않았고 90마일 이상 던진 공이 65구 중 단 2구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거북이도 이런 거북이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건 류현진은 5이닝을 2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됐다는 것이다.

반면 오타니는 최고구속 97.6마일에 평균 95.4마일로 타자를 압도했다. 탈삼진만 무려 10개. 헛스윙도 무려 17번이나 유도해냈다.

그러나 결과는 6이닝 5실점 패전이었다. 물론 토론토 타선이 더 셀 수 있다. 그러나 2번 마이크 트라웃-3번 오타니-4번 앤서니 렌돈으로 이어지는 에인절스의 타선 역시 만만치 않다(메이저리그 팀홈런 2위, 팀장타율 2위, wOBA 3위, wRC 2위). 현재까지 비슷하거나 오히려 에인절스 타선이 더 센 상황이었다.

오타니는 많은 삼진과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질렀다. 하지만 지나친 강대강 대결과 영리하지 못한 투구를 했다. 단적으로 6회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할 때 커브공이 바깥쪽으로 걸치며 스트라이크가 되자 또 같은 공을 비슷한 코스로 던지려다 홈런을 맞기도 했다.

반면 류현진은 어쨌든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제구를 하고 최대한 땅볼을 유도하며 맞춰잡는 투구를 했다. 공 3개로 삼진을 잡든 공 1개로 땅볼을 만들어 잡든 같은 아웃카운트 하나인 셈이기 때문이다. 팔꿈치 통증으로 인한 예방차원에서 교체만 아니었다면 5이닝까지 고작 65구만 던졌기에 7회까지도 가능했던 투구수였을 정도.

무조건 빠르게, 강하게 던지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이길 확률이 높고 타자가 치기 힘들다. 하지만 중요한건 완급 조절과 아웃카운트를 쌓아가는 것이다. 류현진은 90마일도 되지 않는 공으로 오타니에게 ‘느림의 진수’를 보여줬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