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시즌 초반 리드오프 자리를 두고 골머리를 앓던 KIA 타이거즈가 맞나 싶다. 5월 들어 무서운 상승세로 치고 올라가고 있는 KIA는 어느새 리그 최강급 공격 첨병을 얻었다. 2년 전 트레이드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광주-KIA챔피언스필드 더그아웃에서 만난 류지혁(KIA 타이거즈). ⓒ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광주-KIA챔피언스필드 더그아웃에서 만난 류지혁(KIA 타이거즈). ⓒ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KIA의 상승세가 매섭다. KIA는 지난주 6경기에서 무려 5승을 수확했다. 주중 롯데 자이언츠 3연전을 스윕했고 주말 NC 다이노스 3연전은 2승 1패로 위닝시리즈에 성공했다. 이를 포함한 KIA의 5월 성적은 13승 6패, 승률 68%로 삼성 라이온즈(13승 5패·승률 72%)에 이어 두 번째로 승률이 높다.

KIA의 가파른 상승곡선을 이끌어낸 타자는 단연 소크라테스 브리토다. 소크라테스는 5월 월간 타율(0.429), OPS(1.185) 모두 리그 1위를 찍었고 타점도 22개를 올려 박병호(kt wiz· 25타점)에 이어 2위를 달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말고도 숨은 공신이 한 명 있다. 바로 리그 정상급 리드오프로 거듭나고 있는 류지혁이 그 주인공이다.

약 2년 전인 지난 2020년 6월, KIA와 두산 베어스의 트레이드로 홍건희와 유니폼을 바꿔 입은 류지혁이다. 그는 이적 직후 찾아온 햄스트링 부상과 이후에도 줄을 이은 잔부상으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다르다. 본인 입으로도 “몸상태는 문제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 주전 3루수로 도약한 류지혁은 화려한 4~5월을 보내고 있다.

류지혁은 지난주, 18일 사직 롯데전을 제외하고 선발로 나선 5경기서 모두 안타(20타수 8안타)를 쳐내며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했다. 특히 모두 1번 타순에 이름을 올렸던 NC 3연전 활약이 두드러졌다. 3경기 모두 멀티히트로 12타수 6안타, 출루율 5할3푼8리를 찍었다. 그야말로 만점짜리 리드오프였다.

그러나 류지혁 본인은 가파른 상승곡선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시즌 극초반처럼 타격감이 좋진 않다”고 말할 정도. 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숨어있는 메시지였다. 이어 “감은 안좋지만 계속 타석 나가다보니 일단 하나씩 쳐보자고 집중했던 게 유효했다”고 덧붙였다.

비단 지난 한 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류지혁은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리드오프 중 한 명이다. 올시즌 1번에서 50타석 이상 소화한 선수들을 간추리면 현재 각 팀에서 리드오프 1옵션 혹은 2옵션을 수행하고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 포함된다. 그리고 류지혁은 이 중에서 타율 3할6푼6리를 찍으며 당당히 1위에 올라있다. 아직 표본 수가 몇몇 선수들에 비해 많이 모이진 않았지만 분명 의미있는 수치를 내고 있는 류지혁이다.

ⓒ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류지혁은 “타순을 특별히 가리진 않지만 아무래도 1번으로 나가면 타석이 많이 돌아오고 안타 기회도 자연히 늘어난다”라며 “리드오프답게 준비를 해야겠다고 연습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다보니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고 좋은 성적의 이유를 설명했다.

1번 타순 기록에서 또 눈에 들어오는 선수는 바로 팀 동료 박찬호다. 그는 류지혁에 비해 1번 자리에서 타석 수는 많이 부여받지 못했으나 타율 3할6푼으로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반면 9번에서는 1할7푼3리로 크게 떨어지는 모습. 그리고 이는 류지혁도 마찬가지다. 류지혁도 9번에서는 타율이 2할6푼7리로 다소 내려간다. 둘 모두 1번에서 강점을 보이는 상황. 류지혁은 “(박)찬호는 제가 9번 가있으면 싫어한다. 왜 형이 9번 가있냐고 뭐라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그는 “(박)찬호가 감 좋을 때는 1번 가고 싶어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그런 농담을 한다”며 “(누가 1번 가든) 서로 응원하며 좋은 이야기해준다”고 덧붙였다.

KIA 김종국 감독은 시즌 초반 리드오프로 낙점했었던 ‘고졸 루키’ 김도영이 시범경기와 180도 다른 모습으로 깊은 부진에 빠지면서 1번 타자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하지만 이제는 류지혁과 박찬호라는 카드를 상황에 맞게 꺼내들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둘은 각각 좌타, 우타로 타격 유형도 마침 다르다.

류지혁은 타순 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2일 NC전에서 1회초 박민우의 안타성 타구를 미끄러지며 백핸드로 잡아내 깔끔한 원바운드 송구까지 잇는 호수비를 보여줬다. 이어 팀이 6-8로 쫓긴 9회초 2아웃에서도 오영수의 빠른 타구를 넘어지며 건진 후 빠른 송구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책임졌다.

그가 수비 집중력을 높이게 된 이유는 시즌 초반 터져나온 8개의 실책 때문이다. 그는 “실책 나오면 당연히 그 경기에선 힘들다. 하지만 시간 지나면 개의치 않고 내 플레이하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말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류지혁(왼쪽·KIA 타이거즈)와 허경민(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류지혁(왼쪽·KIA 타이거즈)와 허경민(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류지혁은 올시즌을 앞둔 스프링캠프에서 “(허)경민이형하고 통화하다가 2018년의 허경민이 목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밝힌 것이 화제가 됐었다. 허경민이 이에 대해 "그 성적 내면 KIA 우승"이라며 유쾌하게 화답하기도 했다. 당시의 허경민은 133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2푼4리, 10홈런, 79타점, 20도루 등을 남기며 커리어하이 시즌과 함께 3루수 골든글러브를 손에 쥐었다.

류지혁은 여전히 그 목표를 수정하지 않았다. “아직 (허)경민이형에 한참 모자라다. 하지만 제 유일한 개인 목표는 여전히 2018년의 허경민”이라며 옛 동료이자 자신의 롤모델을 꼭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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