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거리 출퇴근 힘겨워 퇴직한 후 찾아온 당구 인생
-PBA트라이아웃도 처음엔 ‘심드렁’...지인 권유로 마감 1시간 전 신청

프로당구 선수 김남수가 17일 경기도 구리시 캐롬박스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김남수가 17일 경기도 구리시 캐롬박스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어떤 운동이든 재능이라는 부분에서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재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는 땀으로 이룬 노력으로 그 차이를 극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재능을 타고 난 선수한테 노력까지 더해지면 누구보다 무서운 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운’까지 더해지면 그만큼 금상첨화가 없다. 바로 김남수 선수(42. TS샴푸히어로즈)가 그렇다.

당구 동호인 출신인 김남수는 프로당구 리그 PBA가 출범한 2019년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직장 생활 10여 년 동안 동호인으로 취미 삼아 즐기던 당구를 본업으로 삼았다. 대개의 경우 당구를 좋아해서 당구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김남수는 반대의 경우다. 당구가 그를 선택해 당구선수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과연 그의 당구인생은 어떤 길을 밟아왔을까. 

◆ 큐대 잡은 지 한 달 만에 4구 200점 돌파한 ‘프로 재능러’

김남수가 처음 당구를 접한 것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그의 아버지가 경기도 구리시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면서다. 하지만 당시 당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섣불리 큐대를 잡지 않았다.

“예전에 당구장 구조를 보면 카운터 바로 앞 테이블이 고점자들이 주로 치는 테이블이었어요. 그때 카운터에 앉아서 손님들이 치는 걸 1년 정도 구경만 했어요. 그러다 손님이 없을 때 한 번씩 당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실력이 빨리 늘었어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눈으로 고수들의 당구 기술을 습득한 김남수는 큐대를 잡은 지 한달 만에 4구 수지 200점을 기록했다. 어린 나이를 감안해도 타고난 재능이었다.

김남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4구 수지가 500점까지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당시에는 당구를 아무리 잘쳐도 취미 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당구 선수의 이미지는  배고픈 직업군의 전형이었다. 심지어 당구는 스포츠 종목으로 제대로 인정을 받지도 못하는 환경이었다. 선수의 길을 꿈 꾸는 것은 언감생심 떠올릴 생각조차 못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더 이상 큐대를 잡지 않았다.

“당시 구리시 선수협회, 지금의 연맹이죠. 협회 관계자 분이 ‘선수를 시켜도 되겠냐’ 제안을 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냥 운동이나 시키겠다’며 거절하셨습니다. 그때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면 지금 조기교육을 받고 잘하는 선수만큼 빨리 성장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프로당구 선수 김남수가 17일 경기도 구리시 캐롬박스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김남수가 17일 경기도 구리시 캐롬박스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회사 영업직 퇴직 후 우연하게 발 들인 ‘프로의 길’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온 김남수는 평범한 회사의 영업부 직원으로 지내면서 당구는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10여 년 정도 지난 28살 무렵 다시 당구를 시작했다. 계기는 회사의 이전 때문이었다. 회사가 경기도 남양주에서 평택으로 옮긴 것이다.

그는 2년 동안 구리시 집에서 평택까지 머나먼 출퇴근을 이어갔지만 몸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1년 정도 쉬자는 마음을 먹고 일을 그만뒀다. 이때부터 심심풀이로 당구장을 다시 찾았고 예전에 느끼지 못한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동호회 활동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다시 취미로 시작한 당구가 본업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동호회 활동을 통해 SM 빌리어즈 신동혁 대표와 연을 맺었고 결국 구리시에 직접 당구장을 열었다.  

“동호회 시합에만 나가다가 프로리그가 생긴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지금 운영하는 구장을 오픈한 지 불과 4~5개월 정도였던 때라 정신이 없었던 거죠. 그러다 친한 형이 트라이아웃(입단 테스트)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오픈챌린지가 있는데 같이 나가보자고 했죠. 처음 추천받았을 때는 그냥 잊어버리고 넘어갔어요. 며칠 지나서 그 형이 한 번 더 참가 의사를 물어보더군요. 그때 접수 마감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냥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접수를 했습니다.”

별 생각없이 우연처럼 접수한 오픈챌린지 신청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 전환점이 됐다.  김남수는 2019년 4월 동호인 대상 PBA오픈챌린지에 이어 PBA 선발전도 가뿐하게 통과하면서 1부 투어 선수가 됐다. 그렇게 김남수의 본격적인 프로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잠재된 재능이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대부분의 프로들은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하다가 PBA로 넘어온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동호회 출신이다 보니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없었죠.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위축되기도 했어요.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첫해 성적이 잘 나와 1부리그에 잔류하고 팀리그까지 들어가면서 선수들과 친분도 쌓게 됐죠.”

프로당구 선수 김남수가 17일 경기도 구리시 캐롬박스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김남수가 17일 경기도 구리시 캐롬박스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기적의 서바이벌 역전승과 팀리그 원년 우승의 기억

김남수가 PBA 입문 후 1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그는 당구인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길 인생경기를 치르게 된다. 바로 ‘TS샴푸 PBA챔피언십 2020’ 128강 서바이벌 경기다.

다비드 마르티네스,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 이상용 선수와 같은 조에 편성된 김남수는 8이닝까지 4득점에 그쳐 18점을 기록하면서 최하위에 머물렀다. 마르티네스가 78점, 필리포스가 70점, 이상용이 34점이어서 거의 탈락 직전이었다. 하지만 9이닝부터 김남수의 맹추격이 시작됐다. 11이닝에 10득점을 올려 38점까지 따라붙었다. 

마지막 이닝을 남겨두고 1위 79점(필리포스), 2위 67점(마르티네스)을 뒤집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마지막 14이닝. 김남수는 기적처럼 11득점에 성공해 73점을 획득, 단숨에 1위를 차지하면서 서바이벌을 통과했다.

“이때 경기가 저에게는 정말 인생 경기였어요. 대역전승인 만큼 짜릿함도 더 컸습니다. 그때 필리포스 선수가 TS팀에 합류하기로 확정이 되고 나서 처음 얼굴을 본 날이었거든요. 필리포스 선수가 인터뷰에서도 제 경기가 가장 인상이 깊었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어요. 얼굴 도장을 제대로 찍은 거죠.”

김남수에게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일은 바로 팀리그 원년 우승을 차지했을 때다.  2020~2021 시즌에서 김남수는 ‘승리의 키맨’으로 불리며 팀을 포스트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다. 

“첫 팀리그 우승을 했던 시즌 마지막 7차전 경기는 여전히 기억에 생생합니다. 제가 3세트에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마지막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 짜릿한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당구를 처음 시작한 92년 무렵(위), '신한금융투자 PBA 팀리그 2020-2021' 우승 후 팀 선수들과 함께한 모습. (사진= 김남수 선수 제공)
당구를 처음 시작한 92년 무렵(위), '신한금융투자 PBA 팀리그 2020-2021' 우승 후 팀 선수들과 함께한 모습. (사진= 김남수 선수 제공)

◆ “당구의 미덕은 올라갈수록 겸손해야”

어떤 운동 경기든 스스로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실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김남수는 힘 있는 스윙을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았다.

“일단 시원시원한 배팅이 제가 생각하는 나름의 장점입니다. 이런 부분이 한 번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게 또 단점이기도 합니다. 예민한 두께의 공을 맞혀야 하거나 이럴 때는 백스윙이 크면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좀 억누를 필요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을 보완하려고 작년 중순부터 백스윙 크기를 줄이는 연습을 꾸준하게 하고 있습니다.”

김남수는 고(故) 이상천(Sang Lee) 선수를 동경했다. 이상천의 경기 모습을 담은 동영상들을 많이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부터는 여러 선수들의 장점들을 연구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였다.

평소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닌 그는 체력 유지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근육을 늘리는 웨이트 트레이닝도 해봤지만 늘어난 근육이 오히려 세밀한 샷 감각을 무디게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등산을 통해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

“당구는 배우면 배울수록 더 어렵다고 느껴져요. 공 3개로 경기를 하니까 그 공들의 궤적을 다 예측해야 하고, 이런 게 알면 알수록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게 당구의 매력인 거 같아요. 어려울수록 더 정복하고 싶은 심리도 작용하죠.”

당구에 대한 정복욕은 그를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할 원동력이다. 그는 꾸준한 연습만이 실력을 쌓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믿는다. ‘키맨’이라는 별명도 ‘에이스’로 바뀌도록 뼈를 깎는 ‘절차탁마’에 임할 각오를 다지고 있다. 

프로당구 선수 김남수가 17일 경기도 구리시 캐롬박스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김남수가 17일 경기도 구리시 캐롬박스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당구 선수 김남수의 또 다른 이정표는 바로 ‘겸손’이다.

.“프로선수로 입문한 기간에 비해 빠르게 명성을 얻다 보니 거만해지는 걸 가장 경계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겸손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좋은 선수로, 성실하고 인성이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물론 프레드릭 쿠드롱 선수처럼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도 있죠.”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우선 장기영 TS 대표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장 대표님께서 후원을 해주셔서 제가 지금 마음 편하게 당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거든요. 앞으로도 대표님과 인연을 계속 이어가면서 함께하고 싶어요. SM빌리어즈 신동혁 대표님도 감사한 분입니다. 여러모로 많이 신경 써주시고 도움도 주셨어요. 지금까지도 계속 지원해주시고요. 그리고 구단 관계자분들과 애써주시는 매니지먼트 관계자분들, TS 팀원들, 또 리그 때마다 가게를 비워도 성실히 맡아서 열심히 일 해주는 직원들까지 평소에 표현은 잘 못하지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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