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한국에서는 ‘韓축구 명경기 열전’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경기 중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기억된 위대한 한 경기를 파헤쳐 되돌아봅니다.

-1976 박대통령컵 쟁탈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전

▶경기 전 개요

1994년에 시작해 2018년까지 간 후 다시 1976년이다. 서술한 경기는 많은 독자의 요청과 함께 한국 축구사의 전설적인 명경기가 충분하다고 판단됐다.

1976년까지 한국 축구는 ‘국민 스포츠’이긴 했지만 올림픽과 월드컵에 나갈 수준은 되지 못했다. 당시만해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호주, 이란의 위세가 대단했고 한국은 한국 스스로 만든 일명 박스컵, 박정희 대통령컵과 같은 지금은 사라진 대회에서 잘하는 것이 지금의 월드컵과 같은 대우를 받던 시절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이 동남아시아 지역대회인 킹스컵에서 우승하고 나서 베트남이 들썩이고 기뻐한 것을 떠올리면 된다. 박스컵은 당시에 킹스컵, 메르데카컵과 함께 아시아 3대 국제축구대회로 인정받을 정도로 위상이 컸다.

1976년, 만 23세의 차범근은 어린 나이지만 이미 대표팀의 핵심선수였다. 이회택에 이어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선수로 낙점됐고 10대에 국가대표에 데뷔해 압도적인 스피드와 저돌적인 돌파와 화끈한 슈팅으로 이미 충분히 대단한 선수였다.

그런 차범근을 필두로 1976년 한국에서 열린 박대통령컵이다. 당시 한국은 대표팀 1진 화랑팀에 차범근을 포함시켰고 2진팀은 충무라는 이름으로 출전했다. 지금은 황당하지만 그때는 대표팀을 1,2진으로 나눠 출전하기도 했다. 이외에 브라질 상파울루주 U-21 팀도 참가하는 등 지금보면 다소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때의 논리로 이해해야하는 참가팀도 있었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지금과 같은 축구 위상이 아니었다. 1976년의 2년전인 1974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한국과 같은 A-2조에 속해 1승1무1패로 조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1승2무로 겨우 말레이시아를 젖혔을 정도. 지금처럼 최약체의 위치가 아닌 팀이었다는 것이다.

ⓒFIFA
▶전반에만 0-3 뒤져… 1-4에서 종료 7분 남기고 시작된 기적

1976년 9월 11일, 지금은 사라진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박스컵 말레이시아전.

한국 1진 화랑은 전반 12분 선제 실점에 이어 전반 21분 추가골, 전반 32분 김철수의 자책골로 시작 32분만에 무려 0-3으로 뒤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가뜩이나 약 3주전 열린 메르데카컵에서 3위를 차지해 좋지 않았던 한국은 말레이시아에게 32분만에 동대문운동장에서 3골을 먹었으니 국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나마 후반 24분 박상인이 만회골을 넣었지만 득점 10분만인 후반 34분 또 골을 헌납하며 1-4가 된다. 고작 종료 10여분을 남긴 상황에서 추가득점은커녕 실점을 했으니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원성이 자자했다. 당연히 화가 잔뜩 났고 더 볼 것도 없이 동대문운동장을 빠져나가며 대표팀을 욕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SBS
▶후반 38분부터 44분까지 6분간 3골…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되다

1-4로 뒤진 경기.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차범근만은 달랐다. 차범근은 후반 38분 왼발 슈팅으로 2-4를 만든 후 후반 42분 또 득점에 성공했다.

모두가 ‘설마’하던 그 찰나, 후반 44분 김진국의 슈팅에 이은 차범근이 갖다댄 오른발에 걸려 공은 말레이시아 골망을 갈랐다. 1-4로 뒤지던 경기가 6분만에 4-4 동점이 된 것이다.

차범근의 전설로 남은 ‘6분 해트트릭’이다. 말도 안되는 장면을 차범근이 만들어냈고 이 기세를 타 한국은 이 대회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한다. 차범근은 이 경기를 통해 확실한 전설이 된다.

ⓒSBS
▶경기 후 개요

차범근은 훗날 이 해트트릭에 대해 “전반전에만 3실점을 하니 화가 났다”며 동대문 운동장 부지를 방문한 후 “이 곳 하면 역시 1976년의 3골이 생각난다. 관중의 절반이 1-4가 된 이후 경기장을 나갔고 나가면서 방석을 날리며 야유했다. 그런데 나가다가 ‘어~ 어~ 어~’하다가 4-4가 됐다”며 웃어보였다.

신동아 2002년 5월호의 당시 대한축구협회 송기룡 홍보차장에 따르면 당시 경북지역은 경기가 열리는 시간에 마침 정전사태로 인해 라디오만 들을 수 있었다고. 경북지역 사람들은 이 전설적인 경기를 TV로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전설적인 경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상’으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경기를 직접 보거나 혹은 생중계로 본 사람이 아니고는 이 전설적인 6분 해트트릭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방송 기술은 생중계를 한다고 녹화까지 같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기록 보존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때라 가지고 있던 영상마저 사라졌다고 한다. 결국 지금까지도 이 전설적인 경기에 대한 영상은 발굴되지 않았고 대한축구협회의 공식 기록과 사람들의 구전으로만 이 경기가 회자될 뿐이다.

확실한 것은 이 경기를 통해 당시까지도 대표팀 핵심 선수정도였던 차범근은 전국민이 사랑하는 전설적 선수로 가는 발판을 놓았다는 점이며 이후 차범근이 세운 대단한 업적을 놓고 보면 충분히 가능했던 6분 해트트릭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한축구협회
-韓축구 명경기 열전 시리즈

[韓축구 명경기 열전①] 홍명보-서정원, 5분의 기적으로 무적함대를 세우다(1994 스페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②] 황선홍-홍명보에 당한 독일 "5분만 더 있었다면 졌다"(199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③] 역사상 최고 한일전 ‘도쿄대첩’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1997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④] TV 역대 최고 시청률의 전설, 투혼의 벨기에전(1998 벨기에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⑤]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겼나(1999 브라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2002 5월 평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⑦] 이때부터였죠… 사람들이 축구에 미치게 시작한게(2002 폴란드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⑧] 박지성, 히딩크 품에 안겨 월드컵 16강을 이루다(2002 포르투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⑨] 역적에서 영웅된 안정환, 히딩크의 상상초월 전술(2002 이탈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⑩]한국 2군이 독일 1군을 누르다… 최고 미스터리 경기(200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⑪] ‘방송인(?)’ 이천수-안정환, 월드컵 원정 첫승을 일구다(2006 토고전)(2006 토고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⑫] 박지성, 산책하며 일본의 출정식을 망치다(2010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⑬] ‘야쿠부 고마워’ 실력+천운으로 첫 원정 16강 이루다(2010 나이지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⑭]'1-3이 4-3으로' 韓축구 최고 역전승… 홍명보호의 시작(2010 이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⑮] '박지성의 마지막' 한국-이란, 5연속 8강 악연을 끊다(2011 이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16]‘박시탈 인생골’ 홍명보호,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따내다(2012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17]故이광종 감독이 남긴 유산, 28년만에 감격의 AG 금메달(2014 북한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18] 한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사 가장 위대한 승리(2018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19] 황의조, 모두의 인생을 바꾼 '인생경기'를 해내다 (2018 우즈벡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20] ‘6분간 3골’ 차범근, 기적을 만들고 전설이 되다 (1976 말레이시아전)

*지금까지 '韓축구 명경기 열전'을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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