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군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집창촌, 소위 '청량리 588'의 한 업소에서 끔찍한 모습의 한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 아랫도리는 벗겨진 상태로 간신히 상의만 걸치고 있었는데, 그것도 흉기에 베인 복부에는 장기가 밖으로 삐져 나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시신은 바로 이 업소에서 일해온 성매매 여성 박모씨(34)의 것.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동대문경찰서 수사관들은 현장에서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흉기를 확보했으며, 이날 오후 2시45분께 이 업소에서 나오는 한 남성의 모습이 찍힌 CCTV 녹화영상을 확보, 이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피해 여성은 5년 전 이 업소에서 잠시 일하다 새 삶을 찾아 떠났는데, 지난해 7월 다시 이 바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당시 업주에게는 "여동생 둘이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 간호를 하고 있어 내가 돈을 벌어야 가족이 먹고 산다"며 도움을 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검 결과 박씨는 목이 졸려 숨졌고, 복부는 흉기로 수차례 찔려 심하게 훼손된 것으로 밝혀졌다.

CCTV에 찍힌 남성의 신원은 곧바로 확인됐다. 용의자는 이 업소를 자주 드나든 신말석(52)씨로, 평소 박씨와 가까이 지냈으며 이날 오전에도 박씨를 만나 오후 2시께 다시 오겠다고 말한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3일 신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전국에 살인혐의로 전국에 공개 수배했다. 키 167㎝의 왜소한 체격에 하얀 피부의 신씨는 단정한 상고머리를 즐겨 하며 가끔 안경을 쓰는 데다 와이셔츠에 캐주얼한 면바지를 자주 입어 겉보기에는 멀쩡한 회사원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씨의 동료들에 따르면 신씨는 박씨를 자주 찾아온 단골 손님이라고 한다. 지난해 7월 가정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다시 이 업소에 나온 박씨로서는 다정다감하게 잘 대해주는 신씨를 무리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건 당일 두 사람은 크게 다퉜고, 신씨가 오후 2시께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걸로 봐서 신씨가 분을 삭이지 못해 박씨를 살해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씨가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아 소재 파악이 어렵고 살해 수법이 매우 잔인하다는 점에서 추가 범죄가 우려돼 조기에 검거하고자 공개수사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집창촌 주변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요즘 들어 거의 없었는 데다 박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주변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씨가 일하던 업소 근처의 다른 업소에서 일하는 한 동료는 박씨의 죽음에 대해 "가정을 돌보려고 혼자 힘들게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한 게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다"며 "손님에 대해 좀 더 조심을 했더라면 이런 일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같은 업소 동료들은 박씨의 허망한 죽음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동료들에 따르면 박씨의 삶은 하루하루가 힘겹기 그지없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 병원비를 벌기 위해 박씨는 부지런히 손님을 상대했으며 생활비 일부를 빼고 수입의 전부를 병원에 갖다 바쳤으나 그래도 부족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빚을 져야 했다고 주변인들은 전했다.

평소 가까이에서 박씨를 봐온 한 업주는 "여기서 버는 돈으로도 병원비를 다 대지 못해 따로 여기저기서 돈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이런 험한 꼴을 당하다니...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씨의 수입은 월 20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의 병원비도 매달 200만원 선이어서 박씨는 따로 빚을 지지 않으면 두 여동생들과의 생활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박씨 주변에서는 박씨가 무참하게 살해당한 원인에 대해 여러 뒷말이 나돌고 있다.

집창촌 생리를 잘 아는 한 전문가는 "박씨가 집창촌의 오랜 금기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집창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손님과 가깝게 지내거나 정을 주고받는 것을 금기시한다고 한다. 자칫 좋았던 사이가 틀어지면서 뒷끝은 다른 사람보다 더 나빴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집창촌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성향을 볼 때 전화번호를 주고받거나 제 3의 장소에서 따로 만나는 행위는 또 다른 범죄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동의하는 경찰 관계자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박씨는 용의자 신씨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며 "나이가 많은 박씨로서는 단골손님을 많이 만들고 싶어했겠지만, 그 단골이 자기를 살해하려고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창촌에서의 단골은 바람 들어간 풍선과 같다고 한다. 바람이 빠지는 순간, 더 추해진다는 것. 단골손님의 경우 돈거래가 복잡하게 얽힐 수도 있다. 그 결과는 또 예측할 수 없다.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 박씨로서는 젊은 손님들보다 중년층 손님을 더 선호했다고 동료들은 말한다. 그래서 비교적 젊은 손님이 많이 찾는 밤보다는 낮 시간에 주로 일을 했다고 한다. 그 낮 시간이 오히려 집창촌에서는 '사각 시간대'였다는 걸 박씨는 몰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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