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에서 '성매매와의 전쟁'을 벌이며 성매매 근절의지를 불태운 지 2년. 이로 인해 집창촌은 많이 사라졌지만 성매매 여성들이 음지로 숨어들어가 오히려 단속이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최근 A지역 숙박업소에서 성매매를 하는 속칭 '여관바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난달 28일 저녁 9시쯤 A지역에 자리한 모텔촌. 모텔촌 어귀로 들어서자 이른바 '삐끼'라고 불리는 호객꾼이 다가와 "아가씨 있어요, 놀다 가세요"라며 말을 건넨다. 한 걸음만 옮겨도 말을 붙여오는 통에 보행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이 중 한 삐끼의 안내에 따라 인근의 허름한 모텔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모텔의 간판이 꺼져 있던 것. 일반적으로 간판 불이 꺼져 있다는 건 방이 다 차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손님이 그것을 보고 헛걸음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그런데 이곳은 간판 불이 꺼져 있는데도 여전히 손님이 눈에 띄었다.

이에 대해 의아해 하자 삐끼가 귀띔을 해줬다. 그에 따르면 이는 '여관바리'를 하고 있다는 표시로, 일반 숙박 손님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반대로 성매매를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만 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붉은 조명이 낮게 깔린 복도를 따라 삐끼가 안내한 방에 들어서니 퀴퀴한 냄새가 풍겨온다. 5분쯤 기다리니 똑똑, 누군가 도착했다. 방문을 열자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 티 차림을 한 여성이 허리에 조그만 가방을 둘러 멘 채 서있었다.

들어오기가 무섭게 이 여성은 화대를 요구해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중에는 '볼일'만 보고 화대 지불을 안 하거나 아예 달아나 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대로 4만원을 지불하니 그녀는 "옷 벗고 누우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성매매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말벗이 필요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여성은 위 아래로 기자를 훑어보더니 '혹시 변태 아니냐'며 짐짓 경계의 눈빛을 보내 왔다. 그래서 결국 취재 중임을 밝혀야만 했다. 한사코 취재를 거부하던 이 여성은 '절대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에야 말문을 열었다.

자신의 이름이 '혜란'이라고 밝힌 이 여성은 올해 33살의 미혼모다.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단란주점 여종업원으로 화류계에 첫발을 들였다. 10대 후반, 아버지의 폭력과 가난으로부터 도망친 끝에 다다른 곳이었다. 당시 그녀의 월 평균 수익은 자그마치 400만원. 보통 월급쟁이들의 월급을 크게 웃도는 액수였다. 하지만 쉽게 번 만큼 빠져나가는 것도 쉬웠다. 그야말로 돈을 '물 쓰듯 썼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그녀는 "쉬는 날이면 쇼핑을 갔어요. 몇백만원 어치씩 사들고 들어왔죠. 일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돈 쓰는 걸로 푼 것 같아요. 손님들 상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다른 아가씨들도 보통 쇼핑하면서 스트레스를 해결해요. 더러는 호스트바 가서 푸는 사람도 있구요. 지금 생각하면 아깝고 후회되죠. 그렇지만 어쩌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딸을 얻은 것도 이때라고 한다. 당시 같은 가게에서 일하던 웨이터와의 사이에서였다. 아이를 낳은 그녀는 화류계에서 떠날 것을 결심했지만 이내 돌아오게 됐다. 그녀는 "막상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학력이 번듯한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잖아요. 생활고에 찌들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시 단란주점에서 일하고 있더라구요"라며 씁쓸해 했다.

하지만 단란주점에서도 곧 내몰려야만 했다. 그녀는 "한때 장사에요. 30줄에 들어서면 단란주점에서 일 못해요. 한 살이라도 젊은 여자를 선호해요. 비싼 돈 내고 술 먹는데 나이든 아가씨 나오면 기분이 좋지 않겠죠. 단란주점에서 나오면 노래방 도우미나 사창가에서 일하는 게 보통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단란주점을 나선 그녀는 집창촌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성매매 단속이 심해지면서 같이 일하던 친구들 몇몇과 이쪽으로 옮겨 왔다.

그의 소원은 자신의 7살 된 딸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녀는 "작은 방 하나 구해서 딸과 함께 사는 것이 소원이에요. 지금은 일 때문에 친정에 맡긴 딸아이가 매일 밤 눈에 아른 거려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벌이가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

화대는 4만원. 하루 평균 4명의 남성을 상대한다. 하루에 16만원을 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화대를 여관 주인, 포주, 삐끼와 나누면 그녀에게 돌아가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곳에서 일하는 다른 여성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에 혜란씨는 "한 번 이 일을 시작하면 쉽게 발을 뺄 수 없어요. 분명이 후회할 게 눈에 선해서 안타깝네요"라고 말했다.

성매매가 나쁘다는 말에 공감한다는 혜란씨. 때문에 경찰 단속 자체엔 불만이 없다. 그러나 단속 이후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녀는 "단속을 했으면 성매매 여성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게 다른 일을 알선해 주거나 직업훈련을 시켜주는 등 현실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단속만 해대니…. 그렇게 해서 집창촌을 없앤다고 해도 성매매 자체를 근절 시킬 수는 없어요. 오히려 우리처럼 단속을 피해서 안 보이는 데로 숨어들어갈 뿐이죠"라고 말했다.

그녀와의 대화를 마치고 모텔을 나섰다. 삐끼들의 호객행위는 끊이지 않고 있었고 불나방처럼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정부가 성매매에 대한 단속과 처벌에 앞서 성매매 여성을 양지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스포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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