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02 한일월드컵 영웅 송종국과 함께 네덜란드 리그에서 활동하던 촉망받던 유망주. 하지만 “더 축구하면 30대에 허리를 못 펴고 살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유망주의 꿈은 꺾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뒤늦게 공부해 고려대를 들어갔고 자신의 경험과 송종국의 성공한 프로축구선수 모델을 접목해 엘리트 선수들의 ‘쪽집게 선생님’으로 거듭났다.

한때 축구 팬들을 설레게 했던, 그리고 인기 유튜브인 이천수의 ‘천재FC’에서도 활약 중인 대형 유망주 출신 정종봉(37) 송종국 축구교실 하남점 총감독을 만나 그의 아쉬웠던 선수생활과 지도자로 변신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2 한일월드컵 '영웅' 송종국(왼쪽)과 정종봉 총감독
▶브라질 거쳐 네덜란드, 해외진출 어려웠던 시기 인정받은 유망주

부산 동래고 시절 정종봉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매우 흔치 않은 브라질 유학을 다녀온다. 당시 브라질 유스팀에서 35경기 30골을 폭발시킬 정도로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도 인정받는 유망주였다.

이런 재능을 네덜란드에서도 알아봤다. 정종봉이 만 18세 무렵 네덜란드로 나가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는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대성공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네덜란드 축구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이 일었고 정종봉 역시 ‘선진축구’의 대표격이었던 네덜란드 무대로 향했다.

네덜란드의 헤라클레스는 정종봉의 재능에 관심을 가졌고 2002 한일월드컵 끝난 직후 정식계약을 했다. 정종봉은 “당시만해도 해외에 진출하긴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나에겐 브라질과 네덜란드라는 좋은 기회가 왔다”며 “고등학교때를 떠올려보면 정말 대회 결승전정도가야 인조잔디 구장을 밟을 수 있었고 대부분은 맨땅에서 경기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어딜 가도 천연잔디였고 훈련도 ‘아 이런게 선진축구’구나 싶을 정도로 체계적이었다”며 떠올렸다.

정종봉의 18살 나이의 네덜란드팀 계약은 손흥민 등 이후 선수들이 그 기록을 깨기 전까지는 ‘한국 선수 역대 최연소’ 기록이었다.

네덜란드 헤라클레스 시절 정종봉
“한국에선 몸싸움이 약한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는 저보다 훨씬 작은 선수랑 경합하는데도 튕겨 나가더라. 심각성을 깨닫고 피지컬 코치와 3개월만에 근육만 5kg을 늘렸다. 그러니까 할만하더라. 네덜란드 선수들이 다리가 길어 태클도 좋고 힘이 달랐다. 또한 네덜란드에서 ‘이 포지션에서는 어떻게 뛰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배우며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송종국이 뛰던 페예노르트와 헤라클레스의 연고지는 차로 1시간 30분 거리. 그래서 정종봉은 토요일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송종국의 집에서 함께 자고 시간을 보내며 외로움을 달랬다고. 송종국이라는 대스타와 함께한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네덜란드 생활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팀의 계약 편법 문제로 인해 외국인 선수들의 계약이 해지됐고 정종봉도 계약을 약속받고 한국에 들어왔다 다시는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후 부산에 입단했다 다시 브라질 무대를 두드렸다. 그곳에서 나름 인정받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심각했던 허리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부상으로 꺾인 유망주의 꿈… 공부로 고려대 진학

정종봉의 허리 상태를 본 의사는 “계속 축구선수 생활을 하면 30대에는 꼬부랑 할아버지처럼 다녀야한다”고 했다. 사실상 축구선수로서의 사망선고.

“최대한 수술을 피하기 위해 1년간 온갖 치료를 다해봤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술을 피할 수 없었고 그렇게 축구는 끝이 났다”고 말하는 정종봉의 목소리는 회한에 가득찼다.

“막상 축구를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막막하더라고요. 그때 ‘대학이라도 똑바로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다졌죠. 다행히 송종국형의 친형께서 서울에서 지내라고 하셔서 함께 살며 강남의 편입학원을 다녔어요. 정말 새벽 5시에 나가 밤 12시에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하며 죽어라고 공부했죠. 서울대와 고려대만 생각했고 결국 고려대로 진학했죠.”

엘리트 선수를 지도 중인 정종봉
▶‘디테일’에 강하다… 화려함보다는 기본을 중요시여기는 ‘쪽집게 선생님’

축구만하다가 ‘공부’로 고려대를 갈 정도로 의지가 강했던 정종봉은 지금은 자신의 해외 경험과 축구 지식과 실전을 유망주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취미반부터 엘리트반을 거쳐 지금은 프로선수로 거듭나려는 학생들만 전담해 가르치고 있다.

“볼 컨트롤과 패스, 드리블은 축구의 기본이예요.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바로 이 기본기를 잘 갖춰야만 해요. 송종국 형과도 매일같이 ‘어떻게 하면 프로에서도 통하는 선수로 만들까’하고 고민해요. 저는 유망주에서 끝난 선수로 실패의 경험, 송종국 형은 대표선수까지 한 성공의 경험이 있잖아요. 둘을 잘 보완해 어떻게 최고 선수로 만들지 고민한 끝에 나온 철학이죠.”

실제로 정 총감독에게 배우는 선수와 학부모는 “디테일이 다르다”며 칭찬 일색이다. 정종봉도 “유망주의 장단점이 누구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수정하면 좋을지 세밀하게 잡아준다. 그 부분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있다”고 했다.

매번 반복적으로 기본기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축구 경기를 하다보면 수많은 상황이 연출된다. 바로 그 상황들에 맞게 훈련 프로그램이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이 정 총감독의 말.

“컨트롤 훈련이라도 매번 상황이 바뀌면서 하게 된다. 그리고 공도 축구공, 풋살공, 스킬볼 등 다양하게 상황마다 바꾼다. 그래서 제 훈련에는 매번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확실히 정신적으로 집중하고, 기본을 철저히 하는 훈련은 분명 어린 선수들에게 필요한 훈련입니다.”

한때 촉망받는 유망주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지금은 최고의 축구 강사로 거듭난 정종봉. 그의 꿈은 자신처럼 재능있는 선수들이 자신보다 더, 송종국보다 더 대단한 선수로 성장하길 바라보는 것 그 뿐이다.

세밀함을 내세워 엘리트 선수를 지도 중인 정종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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