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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윤승재 기자] K리그 역대 최다골의 주인공인 이동국이 눈물의 기자회견과 함께 23년 선수생활의 마침표를 고했다.

지난 2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 의사를 밝힌 이동국은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23년 간의 프로 생활을 되돌아봤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이동국은 은퇴 결심의 이유에 대해 “몸 상태는 아주 좋다. 하지만 이번 장기 부상으로 조급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몸이 아픈 것은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오랜 고민 끝에 은퇴를 결심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은퇴하는 기분과 롱런의 비결에 대해서 “서운한 느낌도 있고 기대되는 것도 있고 만감이 교차한다”라면서 “멀리 보지 않고 바로 앞 한 경기만 바라보면서 후배들 앞에서 솔선수범하며 생활하다보니 내 나이를 잊고 여기까지 왔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해서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장점을 만들면 프로에서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1999년 당시 이동국.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동국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 데뷔 후 무려 23시즌이나 프로로 뛴 이동국은 K리그 역대 최다골인 228골을 넣은 바 있다. 국가대표로도 A매치 105경기에 출전해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했다.

이동국은 23년의 프로 생활을 돌아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포항 유니폼을 처음 입었을 때와 전북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를 꼽았다.

이동국은 “포항에서 처음 프로 유니폼을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구단에서 33번과 내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선물로 줬을 때도 떠오르는데 그 때 며칠 동안이나 그걸 입고 잤다”라면서 “2009년 전북에서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도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라고 전했다.

하지만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최연소 선수로 발탁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동국은 그 때가 “하루하루가 기뻤던 순간이다”라고 표현할 정도. 동시에 이동국은 2002년 월드컵 출전에 대한 꿈도 키워갔다. 그러나 결국 히딩크호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동국은 “그때의 기억이 오래 운동을 할 수 있게 한 보약이 된 것 같다. 잊지 못할 기억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2006년 월드컵을 남기고 입은 부상 기억도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동국은 “2002년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2달을 남기고 부상으로 놓쳐 가장 아쉽고 너무 힘들었다. 기억하고 싶지않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동국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도중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미들스브러에 진출해 고배를 마시고 K리그에 돌아와서도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2009년 이적한 전북에서 다시 꽃을 피우며 한국 축구의 레전드로 우뚝 섰다.

2009년 창단 첫 우승 당시 에닝요-루이스-이동국의 전북 공격진.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동국은 “내가 뛴 공식 경기가 800경기가 넘는다는 걸(844경기) 오늘 아침에야 알았다. 1,2년 잘해서 만들수는 없는 기록이고, 10년, 20년 꾸준히 잘했기에 가능한 기록이다. 좋은 경기력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는 걸 보여주는 이 기록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동국은 “좌절할 때마다 나보다 더 크게 좌절한 사람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는 내가 행복하지 않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 없이 생활할 수 있었고,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라고 회상했다.

이동국이 힘들 때 힘이 돼준 사람은 역시 가족이었다. 이동국은 자신의 부모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동국은 “안티 팬들조차 내 팬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땀 흘려왔다”라면서 “어젯밤 늦게까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다. 30년 넘게 축구선수 이동국과 함께하신 아빠도 은퇴하신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가슴이 찡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그는 “부모님께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부모님 얘기만 하면 왜 눈물이 날까. 오늘 안 울려고 했는데 망했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11시즌 동안 몸담은 전북현대와 ‘은사’ 최강희 前 전북현대 감독 역시 잊지 않았다. 이동국은 최강희 전 감독에 대해 “쓸쓸하게 은퇴하는 선수가 많은데, 이렇게 많은 분 앞에서 떠날 수 있게 해주신 분이 최 감독님이다. 평생 감사드리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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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현대에 대해서도 “전주가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다. 전북에서 얻은 것이 너무 많아서,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전주 팬들을 보면 그냥 친숙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호흡이 잘 맞았던 베스트 파트너 역시 전북현대 선수들이었다. 이동국은 “김상식 코치님은 (베스트 파트너로) 꼭 넣어야 한다. 20년간 알아 왔고, 특히 2009년 전북에 함께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에닝요, 루이스 등 2009년 우승 당시 멤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당시 전북은 우승을 바라볼 수 없는 팀이었는데, 똘똘 뭉쳐서 좋은 경기를 해 우승을 이뤄냈다. 당시의 전북 공격진이 가장 강한 공격진이 아니었을까 싶다”라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또 이동국은 현역 당시 ‘발리슛의 장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골을 넣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한 박자 빠르게 그것도 화려한 자세의 슈팅으로 여러 차례 골을 성공시키며 팬들의 믿음에 보답한 바 있다.

이에 이동국은 최고의 골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넣은 발리슛 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발이 공에 맞는 순간의 임팩트와 그 찰나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국은 이동국의 골로 3-1로 승리, 독일에 패배를 안긴 첫 아시아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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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동국은 올 시즌 우승으로 자신의 프로 선수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동국은 “뭔가 짜놓은 것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은퇴하는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이다”라면서 “승점 3점을 가져오면서 우승하겠다. 동료들과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팬들에게 “준비가 안 된 느낌도 든다.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너무도 감사하다. 마지막까지 골 넣는 스트라이커로 남겠다. 기대 저버리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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