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의 영웅이자 중동에 한국 축구의 개척자로 활약하며 끝내, 제주 유나이티드의 레전드로 남은 조용형(37)이 그라운드를 떠난다.

스포츠한국은 조용형의 고향인 인천에서 만나 파란만장했던 선수생활 전체를 돌아보는 것은 물론 중동 축구와 제주 유나이티드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에 대해 들어봤다.

‘조용형을 말하다’ 인터뷰는 총 3편으로 조용형이 처음으로 털어놓는 선수 은퇴 이유부터 인터뷰 기사를 게재한다.

‘조용형을 말하다’ 인터뷰 시리즈
‘제주 레전드’ 조용형, 은퇴 선언… 지도자로 새출발[조용형을 말하다①]
이천수보며 꿈 키운 조용형, 박지성과 월드컵 16강을 일구다[조용형을 말하다②]
조용형이 말하는 중동-말라가-제주 “제주는 날 4번 불러준 곳”[조용형을 말하다③]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전했던 조용형(오른쪽 상단 두번째)의 모습. ⓒAFPBBNews = News1
▶최태욱-이천수 보며 키운 축구선수 꿈

달리기가 빠르다는 이유로 축구부에 들어간 초등학생 조용형의 2년선배는 2002 한일월드컵 멤버이자 현 국가대표팀 코치인 최태욱이었다. 당시 유망주 랭킹 전국 1위였던 최태욱에게 기초를 배우며 자란 조용형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태욱이형 같은 선배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보고 배우는게 정말 컸다.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고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집안형편이 어려웠기에 ‘무조건 축구선수로 성공해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부평동중으로 진학한 조용형은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묵묵히 기량을 갈고 닦았다.

“솔직히 중학교 때까지는 축구부에 많은 선수들 중 하나일 뿐이었죠.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고요. 그래도 매일 같이 코치님들이 시키는 훈련을 모두 마치고 추가로 혼자서 묵묵히 훈련해왔죠. 지금 생각하면 그런 훈련들이 바탕이 돼서 이후에 프로 선수로 뛰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봐요.”

초등학교때는 공격수, 중학교때는 미드필더를 거쳐 고등학교때 조용형하면 떠오르는 수비수 포지션으로 완성됐다고.

“인천 부평고 1학년을 가니 2년 선배가 바로 최태욱-이천수-박용호로 일컬어지는 전설의 3인방인거예요. 정말 살아생전 그렇게 축구를 잘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어요. 오죽하면 고등학생인데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고 스포츠 신문 1면에 나고 했으니까요. 그런 형들 밑에서 주전자만 들고 있어도 배우는게 정말 컸죠.”

조용형은 최태욱, 이천수 등이 직속 선배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그저 그렇게 사라지는 축구선수가 됐을거라고. “만약 축구부 선배들이 프로도 못가고 사라지는 형들이었다면 저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대단한 선배들이 매일 신문에 나오고 프로에 갈 때도 거액의 돈을 받고 하는걸 보면서 저 역시 ‘나도 저렇게 되야지’라는 목표를 다잡을 수 있었죠”라고 회상한다.

고려대학교에 진학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축구부 입학정원이 꽉 차면서 정식적으로 1학년에 등록은 되지 못하지만 다음해 입학을 확정받는 연습생 신분으로 고려대에 들어간 것. “서러웠다. 그래서 대학은 늦게 가도 프로는 제일 빨리 가자”는 생각으로 더 이 악물고 연습했다는 조용형이다.

뒤돌아보면 정식으로 고려대 1학년에 진학하지 못하면서 이악물고 훈련했던 것이 자신의 기량 상승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동기부여가 확실한 상황에서 프로팀들과 연습경기를 하면서 실력이 늘어갔죠. 워낙 좋은 선배들이 많다 보니 프로팀들이 일부러 고려대와 연습경기를 많이 했는데 그때 저도 눈에 든거죠. 지금은 대구FC 사장님이신 당시 FC서울의 조광래 감독님이 어린 저를 보고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어린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에 FC서울 선수들과 함께 참가하도록 도와주시기도 했으니까요”라며 대학시절을 떠올렸다. 그렇게 어느새 조용형은 프로에 데뷔하기도 전에 ‘대형 수비수’라며 축구계에 알려진 유망주가 됐다.

2005년 각종 시상식을 휩쓴 신인 조용형의 모습. ⓒ스포츠코리아
▶프로 등장과 동시에 리그 베스트11… 이적 파동과 주장까지

이제야 비화를 밝히지만 조용형은 고려대 2학년 당시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와 수원 삼성이 그를 스카웃 하기 위해 영입 경쟁을 벌였다고. 수원 삼성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고려대를 설득했지만 당시 부천 SK의 정해성 감독은 조용형이라는 좋은 재목을 잘 키우겠다며 조용형의 부모님께 어필했고 그 설득이 통했다. 결국 조용형 측에서 부천 SK를 택했고 이것이 훗날 제주 유나이티드의 레전드가 된 조용형의 시작이었다.

“프로에 들어가고 첫 동계훈련이 기억나요. 김한윤, 조준호, 최철우, 김길식 같은 선배들이 있었는데도 그땐 주눅드는게 없었어요. 대학 축구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훈련했고 실제로 2005년 첫 경기부터 정해성 감독님께서 교체 투입으로 뛰게 해주시더라고요. 그 경기 이후 계속해서 주전으로 출전하며 프로 데뷔시즌에 전체 2경기만 빼고 34경기나 출전했죠.”

신인이지만 2005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는 조용형의 이름이 있었다. 2004년 부천 SK는 리그 최하위팀이었지만 조용형이 등장한 2005년 리그 최소 실점팀으로 4위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K리그 베스트11에는 박주영-이천수-조원희-김두현-이호-임중용-김병지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선정됐으니 신인 조용형의 베스트11 선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알 수 있다.

“2005년은 마침 박주영이 K리그에 등장한 해예요. 그래서 제가 많이 가려졌죠. 하하. 워낙 (박)주영이가 잘하고 인기몰이를 했으니까 당연하기도 하죠. 신인왕은 주영이가 가져갔어도 나름 저 역시 좋은 평가를 받고 칭찬도 받았으니 찬란한 데뷔시즌이었죠.”

프로 두 번째 시즌이던 2006년. 터키 전지훈련에 있던 조용형은 깜짝 놀랄 소식은 전달받는다.

“새벽훈련을 마치고 들어오니 당시 정해성 감독님께서 ‘부천 SK가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름을 바꾸고 연고이전이 됐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감독님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고 선수들도 깜짝 놀랐죠. 솔직히 저희야 무슨 힘이 있나요. 그냥 따라갈 수밖에 없었죠”라며 2006년을 떠올린 조용형은 “지금이야 환경이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제주에서 오가는 이동거리나 클럽하우스도 없이 콘도를 숙소로 옮겨다니며 훈련하다보니 적응하는데만 1년이상이 걸렸어요. 게다가 원정경기만 가면 화나신 부천 팬들이 버스를 막기도 했고요. 2시간동안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적도 있어요. 백미러를 부수시고 동전을 던지시고 하면서 항의하는데 선수입장에서는 참 어쩔 수 없었죠”라고 떠올렸다.

2007년, 조용형은 희대의 이적파동의 희생양이 된다. 터키 클럽에서 이적제의가 와 이적을 추진했지만 이적료가 크지 않자 제주 구단은 더 이해관계가 맞은 경남FC로 강제 트레이드를 시킨 것. 경남 이적이 확정되니 어쩔 수 없이 팀 합류를 위해 전지훈련 중이던 브라질로 날아갔다. 하지만 브라질에 도착하자마자 경남에서 ‘다시 이적하게 됐다’는 황당한 통보를 했다. 조용형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했다. “정말 비행기에서만 3일은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정말로 황당했다”고 떠올린다. 제주에서 경남, 경남에서 성남으로 4일여만에 팀을 수차례 옮기게 된 조용형은 당대 최강팀이던 성남 일화(현 성남FC) 유니폼을 입는다. 당시 성남은 이미 2006 K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팀.

“김두현 형은 정말 성남의 왕이었다. 정말 K리그 최고 선수였다. 게다가 모따는 제가 생각하는 공격수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공격수는 냉정하면서 침착해야하고 때로는 이기적이어야한다고 생각해왔는데 바로 그런 선수였다. 결코 가볍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전 김영철-조병국 중앙 수비진의 백업 역할이었다. 두 선수의 성실함을 보고 배우며 강팀이란 무엇인지 배웠다.”

2007시즌을 보내고 2008시즌을 앞두고 다시 제주가 조용형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제주에 정착하지 못한 팀의 성적은 바닥쳤다. 그럼에도 조용형은 2009년 팀의 주장까지 맡으며 무너지지 않게 지탱한 힘이 됐다.

2010 월드컵 16강 남아공전에서 루이스 수아레즈를 막던 조용형의 모습. ⓒAFPBBNews = News1
▶월드컵부터 리그 1위까지… 뜻 깊었던 2010년

“클럽하우스가 자리잡고 2010년도에 박경훈 감독님이 부임하시면서 그제서야 팀이 새출발을 했죠. 김은중, 구자철, 산토스 같이 좋은 선수들과 함께하면서 정말 즐겁고 재밌게 축구했죠. 제가 이적하기전까지만 해도 리그 1위였으니까요. 홈에서도 한번 지고 다 이겼던걸로 기억해요. 나가면 이기니까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죠. 2010년은 참 뜻 깊은 한해였죠.”

2010년은 단연 월드컵의 해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월드컵 16강을 일궈낸다. 박지성-이영표로 대표되는 2002 세대와 기성용-박주영 등으로 대표되는 2012 런던 세대가 겹쳤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기였다. 조용형은 그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해냈다.

“이제와 말하지만 많은 분들이 저를 ‘자동문’이라고 비난도 많이 하셨지만 허정무 감독님은 저를 붙박이로 두고 나머지 수비수들을 실험할 정도로 저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셨어요. 저 역시 리그 1위팀의 핵심 수비수였고 절정기를 달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이정수, 강민수, 곽태휘, 김형일 등 뛰어난 수비수들이 저와 호흡을 맞췄고 이정수 형이 파이터형을 맡으면 제가 커맨더 형을 맡는 조합이 탄생할 수 있었죠.”

박지성의 골로 승리한 그리스전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그리스가 강하지 않았다. 초반부터 세트피스로 골이 터지다보니 선수들이 쉽게 풀어갔다”고 떠올리며 “월드컵은 전세계 축구선수들의 꿈 아닌가. 그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그리스전을 무실점으로 마치고 나니 한국에서 호평이 쏟아졌고 더 이상 ‘자동문’이라는 오명은 없었다”고 떠올렸다.

물론 조별리그 2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네골이나 내주며 패했다. 하지만 당시 리오넬 메시는 역대 최고의 선수인데 절정기를 내달리던 상황이었다. “메시도 메시지만 앙헬 디 마리아, 카를로스 테베즈, 곤잘로 이과인 같은 선수들까지 신경써야 하고 후반 교체로 세르히오 아게로까지 들어오더라. 정말 말 도 안되는 선수진이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이제야 말하지만 당시 남아공 기온이 춥고 덥고가 왔다갔다하는 상황에 저희 골대 앞이 그늘이 져 잔디가 모두 얼어있었다. 그러다보니 수비하려하면 미끄러지는 상황이 속출했다. 팬들은 그런걸 모르시니 욕할 수밖에 없는거 아닌가. 물론 제 축구인생 가장 강한팀을 상대했고 월드컵의 클래스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AFPBBNews = News1
16강 운명이 달린 나이지리아전. 조용형은 “정말 정신없는 경기였다”고 회상한다. 모두가 기억하는 야쿠부의 골대 바로 앞에서 날린 슈팅은 조용형이 봐도 “참 운이 따른 경기”라고.

“제가 이후에 카타르에 갔는데 야쿠부랑 같은 팀이었어요. 그때 농담으로 ‘너가 골을 놓쳐서 우리가 16강 갔다’고 말하니까 야쿠부가 ‘난 그것 때문에 나이지리아에서 살해위협까지 당했었다’고 말하더라고요.”

“나이지리아전 직전에 터널에 도열하는데 나이지리아 선수들의 피지컬이 정말 엄청나더라고요. 몸통이 엄청 두껍고 머리가 두 개는 더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런 선수를 막아야하나’하고 솔직히 겁먹었어요. 근데 막상 뛰어보니 뛸만 했고 저희가 16강까지 갔으니 웃을 수 있었죠.”

16강 우루과이전은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고. “정말 16강전을 뛰면서 선수들 모두 진다는 생각을 안하고 뛰었다. 선제실점을 했어도 비등비등한 승부가 이어지니까 자신감을 잃지 않았고 이청용의 동점골까지 나오니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만 갖고 뛰었어요. 아마 연장전을 갔으면 정말 몰랐을 거예요. 그런데 루이스 수아레즈는 골을 넣는 순간 딱 거기에 있더라고요. 슈팅을 정말 그렇게 정확하게 때리는 선수를 본 적이 없어요. 정말 재밌고 할만한 시합이었기에 패배가 더욱 가슴 아팠죠”라고 말했다.

어느새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도 딱 10년이 됐다. “강산이 변했더라고요. 참 좋은 추억이자 축구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죠”라며 “허정무 감독님께서 많이 믿어주셨어요. 솔직히 월드컵 전에 비난도 많았지만 월드컵 후에 길을 지나가도 알아봐 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정말 뿌듯했죠. 결국 잘하면 비난은 쏙 들어가더라고요.”

당시 2010 월드컵 멤버의 분위기를 묻자 “박지성-이영표-차두리 같은 선배들이랑 함께 훈련하고 뛴다는 것만으로 즐거웠어요. 정말 그런 선수들은 경험해본게 달라서 그런지 안정감이 달라요. 선수들은 바로 알거든요. 공을 잡았을 때 허둥지둥해서 긴장하는지, 아니면 안정적인지. 그 형들은 늘 안정감있고 공을 잡으면 동료들의 마음이 편해져요”라고 회상했다.

“당시 이영표 형이 ‘좋은 정신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한게 기억나네요. 다른게 아니라 강팀을 만났을 때 겁먹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게 바로 ‘좋은 정신력’이라고 강조해주셨어요. 그렇게 수비진을 이끌어줬죠. 박지성 형은 사실 주장인데도 말이 거의 없었어요. 그냥 행동으로 보여줬죠. 주장에 제일 유명하고 잘하는 선수인데 팀에서 가장 많이 뛰고 열심히하니까 나머지 10명은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그게 바로 지성이형의 리더십이었죠.”

나이지리아전 득점 이후 골세리머니를 하는 한국 선수단과 조용형의 모습.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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