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한국에서는 ‘韓축구 명경기 열전’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경기 중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기억된 위대한 한 경기를 파헤쳐 되돌아봅니다.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일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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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개요

2009 FIFA U-20 월드컵 8강 기적으로 시작된 ‘홍명보의 아이들’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목표했던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韓축구 명경기 열전⑭’에서 언급된 동메달 결정전 이란전에서 1-3으로 뒤지던 경기를 4-3으로 역전해내며 하나의 팀으로 원동력을 가지게 된다.

홍 감독은 금메달 실패에도 다시한번 23세 대표팀을 맡게 되고 목표는 2012 런던 올림픽이었다.

당시 한국축구는 월드컵 4강에 원정 월드컵 16강, 세계 청소년 축구 4강 등을 이뤄냈음에도 유독 23세 대표팀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었다. 무려 1948 런던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총 8번의 대회에 도전했지만 최고 성적은 8강이 전부(1948, 2004).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전국민의 영웅이던 홍명보 감독을 필두로 A대표팀과 크게 다르지 않는 선수단이 있기에 가능한 근거있는 자신감이었다. 당시 A대표팀 주전이었던 지동원-구자철-기성용과 와일드카드 박주영-정성룡에 주전과 백업을 오가던 김보경-김영권-남태희,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던 김창수, 윤석영, 박종우까지 발탁됐기 때문. 혹자는 ‘A대표팀 전력의 70%이상을 옮겨놨다’고 평할 정도로 마침 23세 이하에 정말 좋은 자원들이 많았던 시기였다.

물론 대회전 박주영이 병역 문제로 인해 큰 논란을 빚고 대회 직전 주전 수비수인 홍정호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이탈하며 문제가 없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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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홍명보 감독의 지도아래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스위스를 이기고 멕시코-가봉과 비기며 B조 2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한다. 8강에서는 축구 종주국이자 올림픽 개최국으로 ‘홈팀’인 영국을 상대한다. 잉글랜드가 아닌 ‘영국’으로 출전해 라이언 긱스, 크레이그 벨라미 등이 와일드카드로 나서고 아론 램지, 다니엘 스터리지 등 엄청난 몸값의 선수들 최정예로 나섰지만 한국은 승부차기 끝에 영국을 꺽는 기적을 만든다.

4강에서는 네이마르가 이끄는 브라질에 0-3으로 패해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려났다. 동메달 결정전은 한국은 비겼던 멕시코에 8강에서 1-3 역전패를 당한 일본.

올림픽 축구는 동메달까지 병역혜택이 주어지는데다 마침 동메달 결정전이 ‘숙적’ 일본이니 가히 전국민적 관심이 엄청났다. 전국민적 스타인 홍명보 감독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박주영-기성용-구자철까지 나서니 런던 올림픽 최고 화제가 됐다.

실제로 이 경기는 한국시각 2012년 8월 11일 오전 3시 45분이라는 최악의 새벽시간대에 열렸음에도 공중파 3사 합계 시청률 33%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동메달이 결정된 후반 종료시점에는 무려 51.3%의 순간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박주영 인생골’과 ‘와이? 와이?’ 외치던 주장 구자철의 쐐기골

웨일즈의 카디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메달 결정전은 라이벌전답게 매우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다. 양팀 모두 공방을 주고받던 전반 34분 훗날 많이 회자 되는 장면이 나온다. 구자철이 다소 깊숙한 태클을 하자 일본 선수가 넘어졌고 심판은 구자철에게 옐로카드를 꺼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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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구자철은 주심에게 ‘와이(WHY), 와이’를 계속 외쳤고 이후 구자철의 별명은 ‘와이 자철’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흥분한 구자철은 훗날 일본대표팀의 주축 선수가 되는 기요타케와 충돌해 잠시 양팀 선수단이 대치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축구 외적인 기싸움이었다.

이 장면이 나온지 3분만에 수없이 언급 되는 바로 ‘그 골’이 나온다. 한국이 수비에서부터 길게 걷어낸 공이 바운드가 되며 높아 일본 수비가 점프를 했음에도 헤딩을 하지 못하고 전방에 있던 박주영에게 연결된다. 박주영은 중앙선 앞에서부터 수비 한명과 대치하는 좋은 기회를 맞이한다.

드리블 속도가 다소 늦은 감이 있어 일본 수비가 끝에는 4명이 달라붙었음에도 박주영은 최종수비를 현란한 드리블로 젖혀놓은 후 오른쪽으로 공을 한번 치고 그대로 오른발 슈팅을 때린다. 이 슈팅은 가까운 포스트에 낮게 깔렸고 일본 골문을 가른다.

박주영 축구 인생 최고의 골로 회자되는 엄청난 득점이 나온 것. 당시 아스날 소속으로 첫 시즌 주전경쟁에 밀렸던 박주영이지만 자신을 홀대한 영국에서 라이벌 일본을 상대로 대단한 골을 넣은 것이다.

블리스 미디어 제공
한국이 1-0으로 앞서자 일본은 급해진다. 오히려 급한 일본이 실수를 범하기도 하며 후반 4분에는 백패스 실수로 박주영이 골키퍼에게 가는 공을 뺏을뻔한 상황도 나온다. 후반 10분에는 일본 기요타케가 절묘한 개인기로 결정적 기회를 맞았음에도 슈팅이 빗맞는 어이없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기요타케의 슈팅을 막은 후 이어진 공격에서 길게 전방으로 공이 투입되고 박주영이 수비와의 경합을 이기고 헤딩으로 앞으로 떨군다. 이 공을 역동적인 구자철이 달려가며 왼발로 잡은 후 그대로 오른발 하프 발리슈팅을 때리고 또 다시 한국의 추가골이 터진다. 후반 11분 한국대표팀의 주장인 구자철은 득점 후 광복절을 4일 앞두고 미리 ‘만세 삼창’ 세리머니를 선수들과 함께 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가슴 통쾌했던 장면.

구자철의 추가골이 터진 후 또 골이 나올뻔도 했었다. 3분 후인 후반 14분 김보경의 왼발 중거리 슈팅이 일본 골키퍼 손을 맞고 골대를 때리고 나온 것. 일본 입장에서는 2골을 허용했음에도 운이 좋았던 셈이다. 후반 42분에는 일본이 코너킥 기회에서 주장이자 현재 EPL에서 뛰는 요시다 마야가 헤딩골을 넣지만 이내 골은 취소된다. 득점이 되기전 일본 선수가 정성룡 골키퍼를 완전히 밀쳤기 때문. 일본에겐 희망고문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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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은 2-0 완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거머쥔다. 1948년 런던 올림픽부터 시작한 남자축구의 도전이 다시 2012년 런던에서 64년만에 첫 메달의 결실로 이뤄진 것이다.

▶경기 후 개요

경기 직후 동메달도 동메달이지만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바로 김기희의 4분전역이었다. 후반 44분 구자철과 교체투입되며 올림픽 첫 출전을 하게된 김기희는 출전 후 4분뒤 경기가 종료되며 병역혜택을 받게된 것. 올림픽 경기에 ‘참가한’ 선수만 병역혜택이 가능하기에 그동안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던 김기희를 홍 감독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게 배려한 것. 훗날 코치진은 “홍 감독님이 경기전에 ‘혹시 이길 상황이 오면 경기막판에 김기희를 넣으라고 꼭 얘기해달라.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라고 당부했다”는 말을 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김기희는 ‘4분전역’으로 유명해져 역대 병역혜택을 받은 선수 중 가장 적은 시간만 함께한 선수로 기록되고 많은 논란과 이슈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전경기 풀타임으로 뛰었던 기성용은 “한일전을 앞두고 비디오 미팅을 할 때 홍병보 감독님이 ‘공 소유권이 애매한 상황이 오면머리부터 갖다대며 부숴버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이기고 싶어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정말 경기 중에 일본 선수들은 뜬 공에 발을 갖다대도 우리는 머리부터 나갔다. 그게 한국과 일본의 정신력의 차이였다”고 방송을 통해 말하기도 했다.

경기 후 박종우는 팬이 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팻말을 듣고 기쁨의 세리머니를 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정치적 메시지 금지’라는 IOC 규정을 위반한 것이 돼 박종우는 결국 A매치 2경기 출전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일본은 전범기를 드는데 왜 박종우만 징계를 받는지에 대한 여론이 나오며 한일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박주영은 이 경기로 ‘박시탈’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같은 시기 KBS에서 인기를 끌던 드라마 ‘각시탈’이 일본과 대항하는 영웅의 이야기였고 마침 박주영이 일본 수비진영을 휘젓고 결승골을 넣은 것이 합성돼 ‘박시탈’이라며 축구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병역 문제로 큰 논란 끝에 와일드카드로 힘겹게 합류했던 박주영은 일본전 1골 1도움의 엄청난 활약을 하며 일명 ‘합법적 병역 브로커’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2006년 야구의 이승엽, 2010년 추신수처럼 스스로 엄청난 활약을해 병역혜택을 거머쥔 이 호칭은 이후 2018 아시안게임 황의조와 손흥민 등도 언급되기도 했다.

박주영은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여론이 굉장히 좋지않았으나 무려 ‘한일전’에서 결승골에 도움까지 올리며 맹활약해 한국 축구사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에 그 비난을 한방에 날린다. 자칫하면 홍 감독과 박주영 모두 벼랑 끝에 몰릴 수 있던 상황에서 인생골로 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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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u4UaoJxK6U


https://youtu.be/7riFvlJ7coo

-韓축구 명경기 열전 시리즈

[韓축구 명경기 열전①] 홍명보-서정원, 5분의 기적으로 무적함대를 세우다(1994 스페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②] 황선홍-홍명보에 당한 독일 "5분만 더 있었다면 졌다"(199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③] 역사상 최고 한일전 ‘도쿄대첩’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1997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④] TV 역대 최고 시청률의 전설, 투혼의 벨기에전(1998 벨기에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⑤]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겼나(1999 브라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2002 5월 평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⑦] 이때부터였죠… 사람들이 축구에 미치게 시작한게(2002 폴란드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⑧] 박지성, 히딩크 품에 안겨 월드컵 16강을 이루다(2002 포르투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⑨] 역적에서 영웅된 안정환, 히딩크의 상상초월 전술(2002 이탈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⑩]한국 2군이 독일 1군을 누르다… 최고 미스터리 경기(200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⑪] ‘방송인(?)’ 이천수-안정환, 월드컵 원정 첫승을 일구다(2006 토고전)(2006 토고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⑫] 박지성, 산책하며 일본의 출정식을 망치다(2010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⑬] ‘야쿠부 고마워’ 실력+천운으로 첫 원정 16강 이루다(2010 나이지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⑭]'1-3이 4-3으로' 韓축구 최고 역전승… 홍명보호의 시작(2010 이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⑮] '박지성의 마지막' 한국-이란, 5연속 8강 악연을 끊다(2011 이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16]‘박시탈 인생골’ 홍명보호,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따내다(2012 일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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