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한국에서는 ‘韓축구 명경기 열전’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경기 중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기억된 위대한 한 경기를 파헤쳐 되돌아봅니다.

-2010 월드컵 직전 평가전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 시리즈

[韓축구 명경기 열전①] 홍명보-서정원, 5분의 기적으로 무적함대를 세우다(1994 스페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②] 황선홍-홍명보에 당한 독일 "5분만 더 있었다면 졌다"(199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③] 역사상 최고 한일전 ‘도쿄대첩’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1997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④] TV 역대 최고 시청률의 전설, 투혼의 벨기에전(1998 벨기에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⑤]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겼나(1999 브라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2002 5월 평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⑦] 이때부터였죠… 사람들이 축구에 미치게 시작한게(2002 폴란드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⑧] 박지성, 히딩크 품에 안겨 월드컵 16강을 이루다(2002 포르투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⑨] 역적에서 영웅된 안정환, 히딩크의 상상초월 전술(2002 이탈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⑩]한국 2군이 독일 1군을 누르다… 최고 미스터리 경기(200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⑪] ‘방송인(?)’ 이천수-안정환, 월드컵 원정 첫승을 일구다(2006 토고전)(2006 토고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⑫] 박지성, 산책하며 일본의 출정식을 망치다(2010 일본전)

스포츠코리아 제공
▶경기 전 개요

지금은 고인이 된 핌 베어백 감독이 2007 아시안컵 3위의 성적을 거둔 후 ‘바레인 쇼크’의 여파로 사퇴한다. 이어 허정무 감독이 개인 두 번째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다. 베어백 감독이 남긴 ‘4백’ 시스템을 기반으로 허 감독은 박주영의 혜성같은 등장과 FC서울 유스 듀오인 기성용과 이청용의 급성장으로 ‘양박쌍용(박지성,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려간다.

결국 한국은 허정무 감독 지휘아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에서 4승4무0패로 조 1위를 차지해 월드컵 진출에 성공한다.

일본 역시 혼다 케이스케-나카무라 순스케를 중심으로 A조에서 4승3무1패 조 2위로 월드컵에 진출한다. 하지만 일본은 조 1위 결정전이었던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1-2 역전패를 당하며 조 1위를 빼앗기기도 했다. 또한 일본을 이끌던 이비차 오심 감독이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급하게 허정무 감독처럼 대표팀 감독이 두 번째인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선임된다.

무패로 월드컵 본선에 오르긴 했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월드컵을 4개월여 앞두고 열린 2010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에게 충격의 0-3 대패를 당하면서 1978년부터 30년간 이어왔던 중국전 무패(당시까지 16승 11무 0패)의 ‘공한증’이 깨지며 허 감독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다.

이 경기를 월드컵 출정식으로 삼은 일본. ⓒAFPBBNews = News1
일본은 이 대회에서 마지막 경기인 한국전을 승리했다면 첫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1-3으로 패하며 우승을 놓쳐 분함 감추지 못했다. 이에 일본은 월드컵에 나서기 직전 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떠나는 축구대표팀의 출정식으로 과감하게 한국을 상대로 택한다.

즉 월드컵 직전에 양 팀 모두 월드컵에 나설 최상의 멤버로 라이벌전을 가지게 된 것. 친선전을 2003년 이후 처음이었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는 동아시안컵 패배를 설욕해 자신들의 출정식을 드높일 생각뿐 이었을터. 한국 내에서는 ‘굳이 월드컵 직전에 라이벌전을 할 필요가 있냐’는 여론도 있었다. 치열할 수밖에 없는 라이벌전 특성상 부상 우려가 컸던 것.

▶6분만에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침묵시킨 박지성의 산책

2010년 5월 24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열린 일본의 월드컵 출정식 겸 A매치 평가전은 라이벌전다웠다.

일본은 선발라인업에 유토 나가토모, 엔도 야스히토, 오카자키 신지, 나카무라 순스케, 하세베 마코토, 혼다 케이스케 등 ‘전설의 1군’이 총출동했다. 이에 질세라 한국도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이청용, 차두리 등을 내세웠다.

경기시작 전부터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5만 7천여 관중들은 한국에 큰 야유를 보냈다. 이 야유가 오히려 한국 대표팀의 주장인 박지성의 가슴 속에 칼을 꽂아준 계기가 될지는 그땐 몰랐다.

골은 시작 6분만에 터진다. 전반 6분 김정우가 중원에서 헤딩경합을 하며 흐른 공을 옆에 있던 박지성이 공을 낚아채고 몸싸움을 이기며 드리블을 시작한다. 이후 박지성은 빠른 속도로 일본 수비 중심을 파고들고 박지성의 빠른 속도에 일본 수비는 당황한다. 수비가 가까이 달라붙었지만 박지성은 몸싸움으로 이겨낸 후 페널티박스 바로 밖 지점까지 오자 반박자 빠른 슈팅을 날린다.

ⓒAFPBBNews = News1
이 슈팅은 박지성의 오른발을 떠나 잔디를 맞고 바운드 되며 그대로 일본의 먼 골대 쪽을 향하고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워낙 빠른 공의 속도와 코스에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의 ‘주장’ 박지성이 전반 6분만에 한일전 선제골을 넣은 것. 박지성의 이 득점 직후 뒤에서 파란 일본 유니폼을 입고 일장기와 응원기를 흔들던 울트라 닛폰의 깃발이 축 늘어지는 모습이 일품.

박지성은 이 득점 후 자신과 한국에게 야유를 퍼붓던 5만 7천여 관중들이 보란 듯이 산책하듯 설렁설렁 뛴다. 지금은 전설이 된 ‘산책 세리머니’의 시작이다. 카메라가 박지성의 얼굴을 줌인했다가 산책하는 모습을 비추는 앵글은 지금봐도 통쾌한 장면.

KBS
이 득점 후 양팀은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는다. 일본도 골과 비슷한 기회를 수차례 만들어냈고 한국도 질세라 기성용의 세트피스 중심으로 추가골을 위해 노력한다.

▶‘차미네이터’ 명장면과 박주영의 쐐기 PK골

전반 40분에는 ‘차미네이터’ 차두리의 명장면이 탄생한다. 오른쪽 측면 중앙에서 공을 잡은 차두리가 빠르게 돌파하며 태클을 피한뒤 자신 앞을 막고 있는 일본 수비를 보고 압도적 몸싸움으로 넘어뜨릴정도로 밀어젖히며 한 명을 벗겨낸 것. 반칙이 아닌가 싶은 장면이었지만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고 이어진 연속 장면에서도 일본 수비수가 달라붙자 차두리는 어깨로 완전히 밀쳐내며 공 소유권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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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일본 수비수가 차두리 앞에 완전히 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자 이후 수비는 차두리에게 달려들 듯 하다 공의 진로만 막아선다. 자신도 저렇게 될까 두려워하는 듯 했고 차두리는 공을 살짝 띄워 스루패스를 시도하지만 실패하며 명장면은 종료된다. 차두리가 얼마나 대단한 피지컬로 몸싸움을 잘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으로 2004 독일전에서 측면을 파괴했던 모습과 함께 ‘차두리 명장면’으로 항상 언급된다.

전반전을 1-0으로 앞선채 마친 한국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박주영과 김남일을 투입한다. 이후 한국은 오범석, 김보경, 이승렬 등도 교체투입하며 유망주들에게도 기회를 주며 리드를 단단히 한다. 반면 일본은 호기롭게 월드컵 출정식에 한국을 볼러놓고 홈에서 패할 상황이 오자 다급하게 공격을 퍼붓는다. 하지만 일본은 골결정력 부족으로 동점을 만들지 못하며 패색이 짙어온다.

결국 후반 45분, 최전방의 박주영을 향한 킬패스가 투입되고 박주영은 곧바로 골키퍼와 맞서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때 일본의 나라자키 세이고 골키퍼가 공을 차단하기 나왔다가 박주영을 손으로 걸게 되고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한다. 명백한 페널티킥 상황이었고 키커는 그대로 박주영이 나선다. 박주영은 침착하게 왼쪽으로 차넣었고 그렇게 한일전은 2-0 한국의 승리로 종료된다.

ⓒAFPBBNews = News1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직전 자신을 향해 좋지 않던 평가를 모두 날려버렸고 일본은 라이벌을 불러 월드컵 출정식을 호기롭게 장식하려던 모든 계획이 망쳐졌다.

▶경기 후 개요

박지성은 이 득점에 대해 훗날 “국가를 부르기전 일본 관중들의 야유가 굉장히 심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무심한 듯 세리머니를 했다”고 밝혔다. 일본 팬들이 내뱉은 야유가 독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산책 세리머니’로 명명된 이 세리머니 이후 한국팀이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가거나 혹은 국가 대항전, 클럽 대항전을 일본 원정으로 할 때 득점하는 선수는 이 세리머니는 꼭 한다.

2013년 전북 이동국이 우라와 레즈 원정에서 득점 후 ‘후배’ 박지성의 세리머니를 따라한 이후 2017 감바 오사카전 제주 이창민, 2017 동아시안컵 염기훈, 2018 아시안게임 결승전 황희찬, 2019 우라와 레즈전 울산 주민규 등 많은 선수들이 이 세리머니를 했다. ‘한일전’을 원정으로 치르는 한국 선수들에게 꼭 따라해야할 일종의 ‘클리셰’가 된 것이다.

선후배들이 따라하는 세리머니가 된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 ⓒAFPBBNews = News1
경기전 '아시아 최고가 누구냐' 에 대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냐 CSKA 모스크바에서 전성기를 달리던 혼다와 유럽에서 인상적 활약 후 일본으로 돌아온 나카무라냐로 논쟁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경기를 통해 박지성은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며 아시아 최고 선수 입지에 쐐기를 박는다.

많은 이들이 박지성이 산책 세리머니를 할때 왜 등번호 7번이 아닌 14번을 달고 있는지 궁금증을 가지기도 한다. 이 경기부터 한국은 매번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는 월드컵에 제출한 공식 등번호가 아닌 다른 등번호를 다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상대가 전력분석을 할때 등번호를 보고 선수를 인식하는 것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라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비판 여론이 존재한다.

이 경기로 ‘까방권(까임방지권)’을 얻는가 했던 허정무 감독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진 월드컵 직전 2번의 평가전에서 모두 0-1로 패하면서 다시 국민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었다. 스페인에게 0-1로 진 것은 이해해도 월드컵도 못간 벨라루스에게 진 것이 여론에 특히 좋지 못했다.

하지만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고 이 업적을 가능케한 출발점이 바로 일본의 월드컵 출정식을 망친 '사이타마 한일전'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분명 의미심장하다.

ⓒAFPBBNews = News1

https://youtu.be/Xq_ZTUJz8Q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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