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한국에서는 ‘韓축구 명경기 열전’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경기 중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기억된 위대한 한 경기를 파헤쳐 되돌아봅니다.

-2006 독일 월드컵 G조 조별리그 1차전 토고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 시리즈

[韓축구 명경기 열전①] 홍명보-서정원, 5분의 기적으로 무적함대를 세우다(1994 스페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②] 황선홍-홍명보에 당한 독일 "5분만 더 있었다면 졌다"(199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③] 역사상 최고 한일전 ‘도쿄대첩’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1997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④] TV 역대 최고 시청률의 전설, 투혼의 벨기에전(1998 벨기에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⑤]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겼나(1999 브라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2002 5월 평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⑦] 이때부터였죠… 사람들이 축구에 미치게 시작한게(2002 폴란드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⑧] 박지성, 히딩크 품에 안겨 월드컵 16강을 이루다(2002 포르투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⑨] 역적에서 영웅된 안정환, 히딩크의 상상초월 전술(2002 이탈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⑩]한국 2군이 독일 1군을 누르다… 최고 미스터리 경기(200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⑪] ‘방송인(?)’ 이천수-안정환, 월드컵 원정 첫승을 일구다(2006 토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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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개요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한국은 홍역을 치렀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사우디아라바이아에게 모두 패하고 2005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에게 비기고, 일본에게 지며 조 본프레레 감독은 신뢰를 잃는다. 결국 본프레레는 전임감독 체재에서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도 경질당하는 역대 최초의 감독이 된다.

월드컵을 1년도 안 남겨둔 상황에서 급하게 대체자를 찾았고 한국은 거스 히딩크-조 본프레레에 이어 또 다시 네덜란드 국적의 딕 아드보가트 감독을 데려온다. 유로 2004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4강에 이끈 것은 물론 네덜란드 PSV와 스코틀랜드 레인저스, 독일 묀헨 글라드바흐 감독을 한 경력이 있는 아드보카트는 데뷔전에서 조원희의 시작 1분만에 골로 이란을 침몰시키며 순항했다.

그렇게 한국은 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첫 시즌을 보낸 최전성기의 박지성, 토트넘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이영표, 마음 고생을 마치고 스페인에서 돌아와 K리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천수, 월드컵 출전을 위해 6개월 전에 미리 독일로 이적한 안정환을 주축으로 멤버를 꾸렸다. 대표팀 최전방을 도맡던 이동국은 월드컵 개막 2개월을 앞두고 무릎 십자인대부상을 당하며 이탈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당시 토고는 무서운 팀이었다. 세네갈, 콩고, 말리 등과 아프리카 최종예선에서 한조가 되어 7승2무1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로 월드컵 진출 티켓을 따냈다. 당시 토고가 따낸 승점 23점은 아프리카 최종예선 30개팀 중 최고 승점이었다.

현재까지도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진출이었던 토고에는 훗날 아스날과 맨체스터 시티에서 전설아닌 전설적인 선수가 된 에마뉘엘 아데바요르가 있었다. 마치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폴란드의 핵심 ‘올리사데베와 두덱’을 외운 것처럼 언론은 ‘1승 제물’ 토고의 핵심선수 아데바요르를 연일 강조했기에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데바요르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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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프랑스-스위스와 한 조에 묶였기에 월드컵 첫 진출이자 월드컵 당시 피파랭킹 고작 61위(한국 당시 29위)로 월드컵 진출 32개국 중 최하위였던 토고가 현실적인 1승 대상이었다. 토고 역시 한국이 가장 만만한 것은 매한가지.

한국 입장에서는 전세계가 ‘직전 월드컵 4강 진출팀’에 대해 기대감과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식의 시선을 이겨내야 했다. 한국의 2002 월드컵 4강에 대해 박수는 치지만 ‘홈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아서 가능했다’는 부정적 시선도 있었기에 2006 월드컵에서 2002년만큼은 아니라도 최소한의 저력은 보여줘야 했던 한국 대표팀이다.

▶생각보다 이른 선제실점… 안정환 카드를 꺼내들다

2006년 6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G조 1차전.

한국은 2002년에 그랬듯 이번에도 3-4-3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던 이동국이 월드컵 직전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대신해서 뽑힌 조재진이 최전방에 서고 박지성, 이천수가 양쪽 윙포워드를 봤다. 늘 그렇듯 이영표-송종국이 양쪽 윙백, 중앙 수비진은 김영철-최진철-김진규로 구성됐고 중앙 미드필더는 이호와 이을용이 섰다.

대회 전부터 공격진에 비해 중앙 수비진에 대한 우려가 컸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된다. 토고 선수들은 아프리카 특유의 탄력적인 몸놀림과 가속도로 한국 수비진을 휘젓는다. 전반 31분만에 김영철이 토고 모하메드 카데르에게 간 공에 위치선정에 실패했고 그 틈을 타 카데르는 굉장한 탄력을 보여주며 과감한 슈팅을 때린다. 슈팅은 그대로 골문을 가른다. 이운재 골키퍼도 어쩔 수 없었던 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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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공을 자주 잃었고 위협적인 장면도 만들지 못했다. 아데바요르에 함몰돼 나머지 선수들에 대한 수비가 소홀했다. 생각보다 이른 선제실점에 많이 흔들렸다. 가뜩이나 아드보카트 선임 1년도 되지 않았기에 조직력 부분도 약점이었다.

0-1로 뒤진채 전반전을 마치자 아드보카트 감독은 과감한 승부수를 꺼내든다. 바로 수비수 김영철을 빼고 공격수 안정환을 투입한 것이다.

아드보카트 입장에서도 ‘무조건 이겨야하는’ 토고를 상대로 선제실점을 했으니 극약처방이 필요했고 안정환은 최고의 선택이 된다.

▶‘전성기’ 박지성이 휘젓고 이천수-안정환이 해내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안정환이 투입되며 3-4-3 포메이션은 4-2-4에 가까운 형태로 바뀐다. 이 경기를 질 경우 승산없는 월드컵이기에 납득되는 선택이었다.

PSV와 맨유 초창기시절, 즉 무릎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지성은 왕성한 활동량은 기본이고 굉장히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선수였다. 당시 25세의 한창이던 박지성이 후반전 물꼬를 튼다.

토고의 주장인 장 폴 아발로는 전반 23분 경고를 받았음에도 박지성을 막기 위해 깊은 태클을 하다 후반 8분만에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게 된다. 박지성이 놀라운 돌파력으로 골키퍼 일대일 기회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태클이었기에 옐로카드가 당연했고 퇴장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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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이 얻어낸 프리킥은 이천수가 키커로 나선다. 이천수는 수비 키를 살짝 넘기면서 가까운 포스트가 아닌 먼 포스트쪽으로 공을 보낸다. 토고 골키퍼는 당연히 수비 키를 넘겼으니 가까운 포스트로 올 것이라 보고 몸을 움직였으나 원래 있던 곳으로 오던 공에 역동작이 걸려 몸도 날리지 못한다. 훗날 이천수는 “골키퍼의 역동작을 예상한 프리킥”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후 K리그로 돌아와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천수의 모든 골 중 가장 국민들 뇌리에 박힌 골이 된 이 득점으로 한국은 1-1 동점을 만든다.

이천수의 골이 터진 시점은 고작 후반 9분. 추가시간 포함 무려 40분이나 남은 시점에서 수적 우위까지 잡았으니 충분히 역전을 노릴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박지성이 골에 견인차 역할을 한다.

후반 27분 오른쪽에서 송종국이 중앙의 박지성을 보고 투입한 패스를 박지성은 공을 잡을 듯 다가가 트레이드마크인 공을 잡지 않고 공 가는 방향 그대로 살려 수비를 벗겨낸다. 이때 수비는 젖혀졌지만 마침 안정환 앞으로 공이 왔고 안정환은 그대로 방향을 바꿔 자신이 드리블을 한다.

박지성과 안정환의 움직임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공격수인 안정환이 페널티박스 바로 밖에서 수비가 아무도 막지 않는 상황이 연출된다.

안정환이 이런 기회를 놓칠리 없는 선수였다. 그대로 오른발 중거리슈팅을 날리고 이 슈팅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먼 골대를 보고 그대로 꽂힌다. 사실 이 슈팅은 급하게 튀어나온 토고 수비의 허벅지를 맞고 살짝 굴절돼 그 코스가 더 예측하기 힘들었고 골키퍼 머리와 크로스바 그 사이를 절묘하게 파고드는 코스가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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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안정환은 또 다시 반지에 키스를 하고 한국은 2-1 역전을 해낸다. 2002 한일월드컵 미국전에 이어 또 다시 교체로 투입돼 월드컵에서 득점을 한 안정환은 ‘슈퍼 조커’로 또 다시 해냈고 한국은 더 이상 ‘운으로 월드컵 4강을 간 팀’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후 한국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다. 이때 더 공격해서 골득실에 대비해 더 득점을 노릴지, 아니면 안정환 투입으로 다소 무리하게 공격을 했으니 안정을 찾을지에 대해 훗날 갑론을박이 있었다. 아드보카트는 공격수 조재진을 빼고 수비수 김상식을 투입하며 안정을 택했고 그대로 2-1 승리로 마치게 된다.

한국 축구가 원정 월드컵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경기 후 개요

이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이동국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당시 27세의 이동국은 선수 인생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었고 대표팀은 이동국-박지성-이천수 3톱이 절정의 호흡을 이어갔었다. 이동국은 훗날 방송에서 “절정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더 이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컨디션을 유지했었다”고 할 정도로 몸상태에 자신 있었지만 부상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한 통신사에서는 월드컵 특수를 노린 광고에서 이동국의 목소리로 대표팀을 응원하는 CF를 찍을 정도였다.

이천수는 득점 후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이동국을 위해 이동국의 골 세리머니를 따라한다. 이천수는 경기 후 "세리머니는 동국이형을 위한 것이었다. 내 골이 한국의 월드컵에서 20번째 골이었다. 동국이 형의 등번호와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동국은 없어도 대표팀 내에 이동국의 존재감은 매우 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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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전 경기시작전 국가 연주에서 진행오류가 발생해 한국의 애국가 2번이 울렸다. 원래 애국가 한번 후 토고 국가가 울려야하는데 실수가 발생해 애국가가 또 울린 후에야 토고 국가가 울린 것. 공교롭게도 스코어도 2-1이 돼 ‘애국가가 스코어를 예상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안정환은 이 득점으로 인해 유상철-홍명보가 가지고 있던 한국 선수 월드컵 최다골이자 당시까지 아시아 선수 월드컵 최다골인 3골을 기록한다(2002 미국전, 이탈리아전, 2006 토고전). 이후 이 기록은 박지성이 2010 월드컵 그리스전에 득점하고, 손흥민이 3득점을 하며(2014 알제리전, 2018 멕시코전, 독일전) 여전히 한국 선수 월드컵 최다골(3골) 공동 1위에 올라있다. 아시아 선수 최다골은 일본의 혼다 케이스케가 4골로 갈아치운다.

선수 은퇴 후 방송인으로 국민들에게 친숙한 이천수와 안정환이 한국의 원정 월드컵 첫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10대들이 보기엔 다소 어리둥절한 장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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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전 당시 거리응원 모습. ⓒAFPBBNews = News1

https://youtu.be/koCOttBSZ9s


https://youtu.be/723FcoEBi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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