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한국에서는 ‘韓축구 명경기 열전’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경기 중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기억된 위대한 한 경기를 파헤쳐 되돌아봅니다.

-2004 A매치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①] 홍명보-서정원, 5분의 기적으로 무적함대를 세우다(1994 스페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②] 황선홍-홍명보에 당한 독일 "5분만 더 있었다면 졌다"(199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③] 역사상 최고 한일전 ‘도쿄대첩’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1997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④] TV 역대 최고 시청률의 전설, 투혼의 벨기에전(1998 벨기에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⑤]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겼나(1999 브라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2002 5월 평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⑦] 이때부터였죠… 사람들이 축구에 미치게 시작한게(2002 폴란드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⑧] 박지성, 히딩크 품에 안겨 월드컵 16강을 이루다(2002 포르투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⑨] 역적에서 영웅된 안정환, 히딩크의 상상초월 전술(2002 이탈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⑩]한국 2군이 독일 1군을 누르다… 최고 미스터리 경기(2004 독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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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개요

독일은 2002 한일월드컵 4강에서 만나 접전 끝에 한국을 1-0으로 떨쳐내고 결승전에 오른다. 하지만 한국전에서 팀의 핵심선수인 미하엘 발락이 경고누적으로 인해 결승전 출전이 불가능해질정도로 타격이 컸고 결국 독일은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다.

바로 다음 월드컵인 2006 월드컵 개최국인 독일은 유로 2004에서 충격적인 조별리그 탈락(2무1패)을 당하며 망신살을 제대로 구겼다. 이후 루디 펠러 감독이 경질되고 위르겐 클리스만 감독이 선임됐다.

독일은 다음 월드컵 개최국으로 월드컵 개최국 홍보차원과 아시아내 독일 축구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지금은 보기 힘든 유럽팀의 12월 A매치 원정길에 오른다.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을 거쳐 태국을 가는 아시아 3연전을 계획했고 독일 분데스리가 전반기 일정이 끝나자마자 독일 대표팀 1군을 모두 소집해 아시아 투어를 떠난다.

처음으로 들른 일본에서는 '독일답게'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2골과 발락의 골을 더해 3-0으로 가볍게 이겼다. 독일의 강한 피지컬 축구에 일본은 아무것도 못해보고 허무하게 패할 정도였다. 아무리 유로 2004에서 죽을 쒔어도 월드컵 최다우승국 2위(당시 3회, 1위 브라질 5회)의 나라답게 독일은 강했다.

한국은 조 본프레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2004년 7월 열린 아시안컵에서 ‘숙적’ 이란을 만나 알리 카리미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8강에서 3-4로 패해 상황이 좋지 못했다. 이후 열린 A매치에서도 베트남에 2-1로 겨우 이기고 레바논에게 1-1로 비기고, 몰디브에겐 홈에서 후반 20분이후에야 골을 넣어 2-0이라는 실망스럽게 이기며 본프레레 감독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남긴 좋은 외국인 감독-네덜란드 감독에 대한 인상을 본프레레가 다 까먹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본프레레 축구에 대한 회의감이 치솟던 시기였다.

게다가 한국은 K리그가 막 끝난 시점이었기에 선수들의 피로도도 상당했다. 반면 독일은 전반기만 마치고 왔기에 조금 더 체력적인 여유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건 공식 A매치데이가 아닌 12월에 열린 친선전 개념의 경기였기에 해외파 차출이 불가능했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차두리만이 독일 선수들처럼 합류할 수 있었을뿐 대표팀 핵심이던 박지성, 이영표(이상 당시 PSV), 설기현(당시 울버햄튼), 송종국(당시 페예노르트), 이천수(당시 누만시아) 등이 차출되지 못했다. 게다가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우승을 이끈 안정환-유상철도 차출되지 못했다. 해외파는 소속팀의 양해를 얻은 조재진(시미즈 S-펄스)과 차두리(프랑크푸르트) 뿐이었다.

반면 독일은 올리버 칸, 필립 람, 클로제, 발락, 뵈른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케빈 쿠라니 등 1군 최정예가 나섰다. 한국은 냉정하게 2군급 멤버인데 독일은 1군급 멤버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당시 선발 라인업. 중계화면 캡처
▶‘전설의 짤’이 된 차두리의 폭풍질주와 김동진의 벼락골

2004년 12월 19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독일의 평가전. 당시 한국의 베스트11을 보면 이운재 골키퍼는 믿음이 갔지만 박재홍-김진규-박동혁으로 이어지는 3백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게다가 이동국-김동현-차두리의 3톱 역시 '조합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빅맨들로 구성됐다.

독일은 일본전은 신예 들이 나서 3-0으로 가볍게 이겼기에 한국전은 최정예로 나섰다. 좋게 해석하면 1994 월드컵 2-3 패배, 2002 월드컵 4강 0-1 패로 한국이 쉽게 지지 않았기에 독일도 경계심을 놓지 않았다고 볼 수 있었다.

독일은 전반 초반부터 발락이 강력한 프리킥 슈팅 등을 시도하며 한국을 압박했다. 부산 아시아드에 모인 4만5천여 관중은 ‘역시 독일’이라며 감탄을 내뱉을 때쯤이었다.

전반 5분, 오른쪽 측면 중앙선 뒤에서 공을 잡은 차두리는 달라붙는 슈바인슈타이거를 때어낸 후 폭풍같은 드리블 돌파를 선보인다. 지금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풀백 중 한명으로 언급되는 람(당시 21세)이 따라붙지만 이마저 이겨낸다. 이어 뵈른스가 저지하려하지만 차두리는 앞으로 길게 차놓은 후 속도만으로 수비를 모두 젖힌다. 람은 차두리를 막기 위해 이 악물고 전력질주 했고 차두리는 엔드라인 부근까지 와서 크로스를 시도했지만 몸을 날린 람의 태클에 공이 맞고 코너킥이 된다. 지금도 ‘차두리 질주’ 등의 제목으로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전설의 장면이 된 이 가슴 뻥 뚫리는 돌파는 차두리가 '차미네이터'로 불리는데 쐐기를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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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의 엄청난 돌파에 고무된 한국은 기세를 탄다. 그리고 전반 16분 역습 때 이동국이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를 독일 수비수가 헤딩으로 걷어냈지만 앞이 아닌 옆으로 흐르게 된다. 이때 왼쪽 윙백 김동진이 깜짝 등장해 공이 바운드 되기도 전에 논스톱으로 벼락같은 왼발 슈팅을 때린다. 이 슈팅은 당대 세계 No.1 골키퍼인 칸이 반응도 못할 정도로 쏜살같이 골망을 흔든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멤버로 각광받던 김동진이 확실하게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린 득점이자 3번의 독일전 끝에 처음으로 따낸 선제골이었다.

▶프리킥 넣고 PK놓친 발락… 이동국 인생골과 조재진의 쐐기골까지

김동진의 선제골로 모두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전반 24분, 독일은 곧바로 부산아시아드에 찬물을 끼얹는다. 골대와 약 25m지점에서 얻은 프리킥을 발락이 키커로 나섰고 발락은 오른발로 수비벽 끝으로 절묘하게 감아찬 슈팅으로 이운재를 뚫어낸다. 모두가 김동진의 골에 흥분해있던 시점 독일은 냉정하게 8분만에 동점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괜히 독일이 월드컵 우승 2위의 축구강국이 아님을 새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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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국과 독일은 공방을 주고받는다. 의외로 치열했고 그 속에서 전성기를 내달리던 이운재는 람의 중거리슈팅을 선방하는 등 칸에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치열한 승부는 어느덧 후반 중반을 다다르고 있었다. 이때 정말 엄청난 슈팅이 골망을 흔든다. 후반 26분 오른쪽에서 얼리 크로스로 길게 올린 공을 이동국 포함 한국 공격진 두 명과 독일 수비진 두 명이 동시에 떠 헤딩경합을 한다. 누구도 공을 소유하지 못한채 공이 바운드 된다. 이때 가장 먼저 균형을 잡은 이동국은 마치 패스할 듯 시선을 둔채 몸을 완전히 180도로 비틀어 오른발 회오리 발리슈팅을 때린다.

이 슈팅은 워낙 기습적이면서도 그 코스가 먼 골대 쪽으로 절묘했기에 칸 골키퍼는 반응도 못하고 그대로 골망에 공이 철렁이는걸 지켜봐야했다.

이동국이 훗날 ‘발리장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시작과도 같은 골이며 K리그 역대 득점 1위이자 A매치 역대 득점 4위인 이동국의 수많은 골 중에서도 최고의 득점으로 기억되는 바로 그 골이다. 당시 광주 상무(현 상주 상무) 소속으로 월급 10만원도 못 받던 선수가 세계 최고 골키퍼에게 골을 넣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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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 20분여를 남기고 한국이 2-1로 독일을 앞서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쯤 되니 모두가 진심으로 ‘독일을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고 그렇게 종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 38분 박재홍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핸들링을 범하는 결정적 실수를 하고 말았고 페널티킥이 선언된다.

여기서 PK실점을 하면 2-2 무승부가 유력했던 상황. 키커는 발락, 골키퍼는 이운재. 독일 대표팀 주장 완장을 찬 발락은 왼쪽으로 강하게 차고 ‘PK의 명수’ 이운재는 완벽하게 방향을 읽고 몸을 날려 이 페널티킥을 막아낸다. 4만 5천여 관중들은 열광했고 이운재는 2분 후 독일의 골과 다름없는 중거리슈팅을 역동작이 걸렸음에도 골라인 바로 앞에서 막아내는 등 ‘선방쇼’를 펼치며 최소한 이 경기만큼은 올리버 칸에 완승을 거두게 된다.

이운재가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2-1 스코어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 한국은 모두가 ‘이대로만 끝나라’라고 바라며 종료를 기다렸다. 하지만 ‘3골을 실점하면 4골을 득점하면 된다’는 본프레레 철학은 2-1의 스코어에 만족하지 않았다.

후반 42분 독일의 코너킥을 걷어낸 후 찾아온 역습 기회에서 왼쪽에서 교체선수 남궁도가 길게 중앙을 보며 크로스하고 독일 수비가 태클로 급하게 이 패스를 막는다. 하지만 이 걷어낸 공은 옆으로 흘러 차두리에게 갔고 차두리는 골키퍼 칸이 튀어나오자 골대 앞에 있던 조재진에게 패스한다. 교체로 들어온 조재진은 아무도 없는 골대에 오른발을 갖다대 독일을 완전히 침몰시킨다. 이 실점과 동시에 필립 람은 망연자실하게 주저앉고 그렇게 독일은 완패를 당하게 된다.

아시아 국가가 독일을 이긴 최초의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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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개요

이 경기 이틀 후 열린 태국 원정에서 독일은 한국에게 진 한을 풀려는 듯 무려 5골을 폭발시키며 5-1 대승을 거둔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 원정팀들이 그렇게 힘들어한다는 태국 원정에서도 대승을 거둘 정도면 결코 독일의 전력이 약했던 것이 아님이 방증되기도 한다.

이 패배는 당시 독일 언론도 큰 충격에 빠져 고작 클리스만호 출항 후 6번째 경기만에 “클린스만이 한국전 패배와 경기 내용을 외면한 채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큰 비난을 보냈다.

한국은 선발 멤버 중 오른쪽 윙백을 본 박규선, 공격수로 나선 김동현, 그리고 후반 교체로 나온 남궁도와 유경렬이 이날 경기가 A매치 데뷔전일 정도로 경력이 부족한 선수가 많았다. 골을 넣은 김동진도 A매치 8번째 경기였고 선발 중앙 수비수 김진규는 A매치 5번째 경기였다. 월드컵 경험이 있는 선수는 이운재와 차두리, 이동국이 전부였다. ‘2군’이라는 말이 불편할 수 있지만 실제로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유상철, 안정환, 이천수, 송종국 같은 핵심선수가 없고 A매치 경력이 일천한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다는 점에서 2군이라는 표현은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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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교체선수로 뛰며 쐐기골에 결정적 역할을 한 남궁도는 훗날 인터뷰에서 “많은 분들이 그 경기를 ‘한국 축구의 미스터리’라고 하시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전술이나 전략이 특별한 것도 없었는데 유독 그날따라 선수들 컨디션이 200%였다. 현장에 있던 나도 어떻게 이겼는지 모르겠다. 그냥 다 잘 됐던 경기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 축구사 최대 미스테리한 경기로 이 경기를 많이 언급한다. 한국이 오히려 2군이며 독일은 1군멤버였다는 점과 3대1의 꽤 벌어진 스코어, 그리고 역대 최악의 외국인 감독으로 기억되는 본프레레 감독이 지휘했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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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s6VHH3p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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