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베일에 가려졌던 한국과 북한의 남북축구 경기력이 마침내 공개됐다. 경기가 열린 지 이틀 만이다. 취재진을 대상으로 먼저 경기가 공개됐는데, 북한의 거친 스타일에 벤투호가 매우 고전한 모양새였다.

대한축구협회는 17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이틀 전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렸던 한국과 북한의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H조 3차전 경기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이날 새벽 입국한 축구대표팀을 통해 DVD 형태로 반입된 영상이었는데, 당초 KBS를 통해 녹화중계될 예정이었으나 화질과 화면비율 문제로 중계가 무산돼 취재진에만 먼저 경기 전체영상이 공개됐다.

경기 영상이 이틀 만에 공개된 데에는, 29년 만의 평양 원정경기가 북한 측의 기이한 행정 속에 이른바 ‘깜깜이 경기’로 치러진 까닭이다.

앞서 북한은 국내 취재진과 응원단의 방북을 불허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중계권료를 요구하면서 생중계마저도 사실상 무산시켰다. 경기 당일엔 현지 관중들의 입장도 제한했다. 북한의 일방적인 결정들만으로 월드컵 예선 경기가 관중도, 중계도 없이 치러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선수단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입·출국을 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고, 숙소에서조차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제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이른 새벽에야 한국땅을 밟은 선수들은 ‘이를 갈면서’ 내년 6월 예정된 홈경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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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러한 북한의 괴상한 행동들 이면에 가려진 것이 있다. 부진했던 벤투호의 경기력, 그리고 무득점 무승부라는 결과다. 경기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워낙 전력차가 큰 경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벤투호 입장에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협회 관계자나 선수 인터뷰를 통해 가늠만 할 수 있었던 북한축구의 스타일은 실제로 더 거칠었다. 북한은 시종일관 거센 압박과 거친 몸싸움으로 한국 선수들을 괴롭혔다. 초반부터 거칠게 충돌이 일어나는 등의 기싸움도 펼쳤다. “축구가 아니었다”는 선수들의 공통된 반응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스타일은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조차도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은 투지가 돋보이는 팀이고, 과감하고 저돌적”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거친 북한의 스타일에 맞선 대비책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더구나 무관중 경기로 치러진 것은 벤투호 입장에선 분명한 ‘호재’였다. 일방적인 북한의 응원은 이번 남북축구를 관통하는 큰 변수였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오롯이 그라운드 위를 누비는 대표팀의 몫이었다.

다만 벤투 감독은 “우리 스타일대로 승점 3점을 딸 것”이라며 전술이나 전략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았다. 북한의 거친 스타일에 대비한 대비책 대신, 벌써부터 자리가 잡힌 듯한 ‘벤투 감독만의 베스트11’이 대부분 선발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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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북한의 거친 스타일에 맞설 힘이나 높이를 갖춘 선수들, 지난 스리랑카전에서 맹활약한 선수들은 빠졌다. 기존의 전술이나 전략으로도 북한의 거친 스타일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는 벤투 감독의 판단이 밑바탕에 깔린 셈이다.

결과적으로 벤투 감독의 이같은 선택은 내용도, 결과도 잡지 못했다. 한국의 전반전 유효슈팅수는 제로(0)였다. 결정적인 기회마저도 골키퍼 선방에 막힌 김문환(부산아이파크)의 슈팅만이 거듭 언급될 정도로, ‘잘 싸우고도 비긴 무승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한국은 피파랭킹 113위인 북한과 득점 없이 비겼다. 한국축구가 피파랭킹 100위권 밖의 팀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한 것은 지난 2017년 6월 이라크(당시 120위)와의 평가전 0-0 무승부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공은 둥글고, 또 이번 북한전은 평양 원정이라는 특수성마저 있었던 경기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벤투호 출범 이후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로 시원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는 경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벤투호는 지난 1월엔 필리핀(당시 피파랭킹 116위) 바레인(113위)에 1골 차 승리를 거뒀고, 지난달에도 투르크메니스탄(132위) 원정길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홈이 아닌 원정이나 중립지역에서 열린 경기들이었다.

이번 무승부라는 결과를 그저 북한 원정의 특수성 또는 북한의 거친 스타일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들이다. 무산된 중계나 무관중 경기 등 북한의 비상식적인 행동들에 가려있긴 하나 예상 가능했던 상대의 전략에 말려버린 것, 사실상 최정예를 꺼내들고도 무승부에 그친 결과는 벤투 감독의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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