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K리그, 한국 축구팬들이라면 기억할 수밖에 없는 선수. ‘황카카’ 황진성(35)이 그라운드를 떠난다.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통해 은퇴를 공식화한 황진성은 축구교실과 레슨을 통해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 새 삶을 시작한다.

스포츠한국은 서울 강서구에서 축구교실을 준비중인 황진성을 만나 은퇴에 대한 소회, 프로 16년 생활의 회고, 축구선수가 아닌 유소년 지도자로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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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역대 공격P 1위… 국가대표 2경기 감격-소중해

2013년 포항의 전설적인 K리그 우승을 끝으로 황진성은 프로 데뷔부터 몸담았던 포항을 떠난다. 선수에게 치명적이고 재활기간이 길게 필요한 무릎 십자인대부상 때문이었다. 11년의 포항생활이 끝난 것.

황진성이 포항을 떠난지 6년이 됐지만 여전히 황진성이 포항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서 기록한 47득점-58도움, 105개의 공격포인트는 1973년 포항 창단 46년사 역대 1위의 공격포인트다.

47득점은 라데, 이흥실, 이동국에 이은 역대 4위, 58도움은 37도움의 박태하에 21개나 앞선 압도적 1위다. 279출전도 김광석-황지수-신화용에 이어 역대 4위에 해당한다. 포항 스틸러스 역사에 남는 선수인 것.

“자부심이 있죠. 역대 공격포인트 1위라는건 제 인생에 남을 족적이죠. 한동안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요”라며 역대 1위의 기록에 쑥스러운 듯 말하는 황진성이다.

2012년 전성기를 보낸 황진성은 국가대표 유니폼도 입었다.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에 ‘소집’된적은 있지만 큰 활약은 없었던 황진성에게는 축구선수 모두가 가지는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최강희 감독님께서 잠비아, 호주전에 출전시켜주셨는데 정말 소중했고 감격스러웠죠. 그 2경기에서 임팩트를 보여줬어야했는데 아쉽긴 하죠. 그래도 대표팀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사실 제가 뛰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가 워낙 경쟁도 치열한데 정작 강팀과 붙으면 투톱을 쓰거나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한명 더 두면서 사라지는 자리잖아요. 쓰임새가 마땅치 않은 자리다 보니 어쩔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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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일본 생활과 K리그 복귀와 마무리

포항의 역사를 세운 후 황진성은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한국에서 구단을 운영하는 벨기에 2부리그의 AFC 투비즈로 향한 것. 6개월 짧은 생활이었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2013년 당시 국내로 이적하면 이적료가 발생하기도 했고 FA로라도 해외에 나가고 싶은 열망은 있었어요. 좋은 기회가 닿아 투비즈로 갔죠. 당시 한국인 직원들도 많아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죠. 색다른 경험이었고 정말 즐겁게 뛰었어요. 확실히 유럽 축구 문화의 다른 점을 느꼈고 승격권팀은 강한데 중하위권 팀들은 K리그보다 수준이 낮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죠.”

짧은 벨기에 생활 후 황진성이 향한 곳은 박지성, 김남일 등 많은 한국 선수들이 뛰었던 일본의 교토 퍼플상가였다. 2015년 교토와 오카야마를 뛰며 1년간 일본 생활을 한 황진성은 “일본의 축구 인프라에 대해 새삼 놀랐죠. 정말 ‘내가 프로선수로 대우받고 있구나’하는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어요. 만약 저와 관련된 굿즈가 판매되면 정확하게 지분을 알려주고, 팬들과 만나는 순간 하나하나 구단에서 관리하고 함께해주고. 정말 축구 환경이 부러운게 많더라고요”라며 놀라워했다.

“교토에서 부상 등으로 인해 자리를 못잡고 오카야마로 갔고 거기선 경기는 많이 뛰었지만 제가 공격 포인트로 보여드리지 못한 부분이 아쉽죠. 또 언어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포항에서 느꼈던 선수단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느끼지 못해 허무함이 들었어요. 상황이 여의치 않아 1년만에 일본 생활을 접어야했죠.”

1년 반의 해외 생활을 접고 황진성은 2016년 성남FC, 2017~2018년 강원FC 생활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성남 시절은 정말 힘들었죠. 어떻게 해서도 팀 분위기가 안 바뀌더라고요. 정말 고생많이했죠. 강등을 막지 못한 책임은 가슴 아프죠. 강원 첫해는 정말 행복했어요. 지금은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이 되신 최윤겸 감독님과 함께 했는데 솔직히 아무 인연도 없었는데 정말 축구를 하면서 행복했어요. 감독님이 전적으로 믿어주시는걸 느꼈고 선수단 사이에서도 친하고… 정말 하루하루 운동하고 경기하는게 행복했어요.”

2017시즌을 31경기나 뛰며 노장으로 풀시즌을 뛴 황진성은 “지금 은퇴하는데 미련 없는건 2017년에 후련하게 뛰었기 때문이다”라며 “2018시즌은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인 김병수 감독님과 함께 했다. 물론 출전이 들쑥날쑥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충분히 의미 있었다. 다만 K리그에서 54골 67도움으로 마쳤는데 딱 6골만 더 넣었으면 역대 5명밖에 없는 60-60클럽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게 아쉽죠. 은퇴하고 나니 현역시절 골대 앞에서 놓친 기회가 그렇게 아쉬울 수 없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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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카카’ 너무 감사해… 나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현역시절 황진성의 별명은 ‘황카카’였다. 브라질의 축구스타 카카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였다.

“제가 골을 넣으면 카카처럼 두 손을 기도하듯 하고 하늘을 바라봐요. 그 세리머니랑 제 포지션도 카카처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다보니 ‘황카카’라고 불러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축구교실 제 이름으로 낼 때 ‘황카카의 축구교실’이라고 할까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할정도니까요. 하하.”

카카가 다소 피지컬과 스피드를 통해 돌파하는 성향으로 실제 황진성의 플레이스타일과 맞지 않는게 아니냐고 지적하자 황진성은 웃으며 “맞다. 나도 사실 플레이스타일은 카카와는 다른데라고 생각은 했었다. 정의하자면 전 스루패스나 감각적인 경기 운영을 해서 다비드 실바나 메수트 외질과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정의한 황진성은 “전 공을 뿌려주고 볼 컨트롤을 전방을 향해 두는 것에는 자신 있었다. 압박이 오기전에 공을 미리 보내고 이대일 패스로 동료를 이용해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것이 장점이었다”며 “슈팅보다는 스루패스에 더 자신 있었다. 솔직히 패스의 길은 배운다고 되는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저도 모르게 패스가 되는 경우가 있다. 감각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앞서 설명했지만 전 고등학교때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향하면서 당시 코치님인 김병수 강원 감독님께 공격형 미드필더로 갖춰야할 모든걸 배웠어요. 그 덕분에 프로 생활을 했고 제가 패스를 하면 앞에서 스테보, 노병준, 유창현, 고무열, 박성호 같이 움직임이 좋은 공격수들이 잘 받아서 넣어줬기에 포항 역대 공격 포인트 1위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결국 축구는 동료 없이 아무것도 되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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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지도자’ 변신한 황진성 “최윤겸 감독님같은 지도자 되고파” [은퇴 인터뷰③]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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