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김정우 “늘,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죠”
[인터뷰②] 김정우가 축구선수 은퇴를 후회하지 않는 까닭
[인터뷰③] 김정우의 축구인생 제2막, ‘확실한 목표’를 품고(끝)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김정우는 “그저 운동장에서 열심히, ‘늘’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명석
[스포츠한국 인천=김명석 기자] “그저 운동장에서 열심히, ‘늘’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조금은 상투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다름 아닌 김정우(37)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여서, 그 의미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늘’이라는 표현을 강조한 것처럼, 선수 시절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중원을 종횡무진 누비던 선수였던 까닭이다.

부평고-고려대를 거쳐 2003년 울산현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오랫동안 한국축구의 중심에 서 있던 선수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의 특성, 그리고 조용한 성격 탓에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으나 어느 샌가 A매치 출전수가 71경기에 달할 정도로 그는 오랫동안 대표팀 중원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중동 진출 이후 소식이 뜸해졌던 그는 지난 2016년 태국에서 조용히 축구화를 벗었다. 이후 가족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던 그는 지난달 인천유나이티드 U-18팀(대건고) 지휘봉을 잡으며 은퇴 후 3년 여 만에 축구계로 복귀했다. 김정우의 축구인생 ‘제2막’이 오른 것이다.

2007년 아시안컵 8강전 이란전 당시 김정우(맨 오른쪽) ⓒ연합뉴스
재능과 노력 앞에 무의미했던 왜소한 체격

팬들이 지어준 그의 별명은 ‘뼈정우’다. 신장은 183cm지만, 선수시절 체중이 70kg 안팎일만큼 체격이 왜소했던 까닭이다. 상대와의 거친 몸싸움이 불가피한 역할 특성상 그의 체격은 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체격을 키우려 하지는 않았다는 그다. 김정우는 “많이 먹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체질도 살이 많이 안찌는 스타일이었다.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며 “축구는 물론 힘도 중요하겠지만 정해진 룰 안에서 치러지는 경기다. 상황에 따라 더 공격적으로 부딪히려고 노력했다. 체격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고 돌아봤다.

실제로도 왜소한 체격은 그의 재능과 노력 앞에 무의미했다.

축구명문교로 통하는 학교들을 거치면서 일찌감치 인정을 받았고, U-20 대표팀 등 일찌감치 태극마크도 달았다. 2003년엔 프로축구 울산현대에 입단해 처음 K리그에 데뷔했다. 당시 그의 K리그 출전수는 무려 34경기. 만 21세의 신인이 첫 시즌부터 팀의 중심으로 파고들 정도의 재능과 기량을 갖춘 셈이었다.

포지션을 바꾼 것도 프로 데뷔 이후였다. 김정우는 “대학교(고려대) 때까지는 공격적인 역할을 많이 소화했는데, 프로에 와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천수, 도도 등 역습 위주의 울산 스타일과 맞물려 김정우의 역할에도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결과적으로 ‘신의 한수’가 됐다.

김정우는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본 2010년 월드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그는 리오넬 메시와도 월드컵 무대에서 겨뤘다 ⓒ연합뉴스
메시와도 격돌했던 월드컵 무대

데뷔 첫 해 울산의 K리그 준우승에 일조하면서 자연스레 태극마크와도 인연이 닿았다. 당시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4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2차예선에 나섰다. 김정우는 “프로에 와서 포지션을 변경했고, 덕분에 대표팀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김정우는 빠르게 대표팀에 녹아들었다. 아테네 올림픽 등 U-23 대표팀을 오가면서 A대표팀에서도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7년 아시안컵을 거쳐 2010년엔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나섰다. 김정우가 14년 여의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기도 하다.

김정우는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월드컵에 나가고 싶어한다. 가장 큰 대회라고 생각한다”며 “나도 정말 나가고 싶었던 대회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정우는 당시 기성용과 함께 중원에 포진했다. 박지성 이청용 이영표 차두리 등이 당시 월드컵 멤버였다. 김정우는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등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선발로 나섰다.

특히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리오넬 메시와도 겨뤘다. 김정우는 “사실 그때는 메시가 어린 편에 속했다. 유망주에서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을 때”라며 “상당히 스피드가 빨랐던 기억이 있다. 분명히 내 앞에 있었는데, 수비를 하려고 뒤를 돌아서면 또 내 앞에서 뛰고 있을 정도였다”며 웃어 보였다.

당시 허정무호는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의 성적으로 16강에 진출했다. 한국축구 사상 원정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건 처음이었다. 김정우는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도 선발로 나섰다. 8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한국축구의 새 역사 속에 김정우의 이름도 뚜렷하게 적혔다.

김정우는 2013년 여름 아랍에미리트(UAE)리그 알 샤르자에 새 둥지를 틀었다 ⓒ알샤르자
중동 도전, 그리고 연이은 부상

월드컵 당시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하던 김정우는 이후 성남일화, 전북현대를 거쳐 2013년 여름 아랍에미리트(UAE) 알 샤르자로 임대됐다. 일본(나고야 그램퍼스)에 이어 두 번째 해외 진출이었다.

첫 시즌엔 팀의 중심에 섰다. UAE 리그 21경기에 선발로 출전하면서 활약했다. 스스로도 “몸 상태도, 경기력도 매우 좋았다. 베스트11에도 들었을 정도“라고 돌아봤을 정도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엔 같은 리그인 바니 야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다만 새 소속팀에서 부침을 겪었다. 예기치 못한 부상이었다. 김정우는 “종아리 부상을 당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다. 3주 정도 쉬면 낫는 부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열악한 치료가 화근이 됐다. 3개월 가까이 재활에만 몰두했다. 이후 복귀한 뒤에도 또 다시 종아리에 부상이 발생했다.

김정우는 “치료가 제자리여서,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였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결국 그는 중동 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치료에 전념하며 재기를 노렸다. 그는김정우는 “가족들과 쉬면서 다시 몸을 만들고, 운동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 ②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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