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나의 축구는 점유하고 지배하는 축구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을 ‘점유와 지배’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지배와 점유 하는 축구는 2014 브라질 월드컵부터 깨졌고, 한국이 지배와 점유에 집착했던 4-2-3-1 포메이션의 축구는 늘 실패했었다.

많이 뛰고 압박하는 축구에서 성과가 나왔던 한국 축구에 다시 지배와 점유에 집착하자 8강 탈락이라는 참사만 일어났다. 차라리 베트남처럼 여한없이 뛰기라도 했다면 ‘어쩔 수 없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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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25일(이하 한국시각) 오후 10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자예드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8강 카타르전에서 충격의 0-1 패배를 당하며 8강에서 탈락했다.

후반 33분 왼쪽에서 중원으로 열어준 패스때 카타르의 압둘아지즈 하템이 먼거리임에도 낮고 빠른 왼발 중거리슈팅을 했고 이 공이 그대로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결국 이 골을 만회하지 못한 한국은 59년만에 아시안컵 우승 도전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충격적인 패배와 8강 탈락의 원인은 어디 있을까. 물론 부임한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벤투 감독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선수에 맞춰 자신의 전술을 입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전술에 선수를 맞추는 지도자로 부임과 동시에 ‘지배와 점유’를 강조하며 이를 짧은 시간이지만 그에 맞는 선수만 기용하며 플랜A를 확고히 했다.

실제로 평가전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자신의 전술 핵심인 기성용이 이탈하고 단기전 승부인 아시안컵에 들어가자 좀처럼 벤투가 원하던 ‘지배와 점유’는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물론 점유는 했다. 하지만 백패스만 많은 비효율적 점유였다. 모든 경기에서 점유해도 한국이 만든 골기회만큼이나 상대의 역습에 벌벌 떨어야했다. 그리고 지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 강국인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호주급 팀이 아닌 필리핀, 중국, 바레인, 카타르를 상대로 지배하는 경기를 하는 것은 한국의 전력상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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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지배와 점유를 해도 정작 골은 못넣고 경기력은 개선되지 않자 자연스럽게 비판 여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런 비판 여론에 벤투는 ‘최근 10경기동안 패하지 않았는데 지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바레인전 앞두고 기자회견)’며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축구가 지배와 점유를 강조한 이후 제대로 성과를 낸 적이 없다. 홍명보 감독은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나섰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실패했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그보다 더 지배와 점유를 강조했지만 월드컵 아시아 예선 도중 경질됐다.

반면 한국은 특유의 많이 뛰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승리 등을 해냈다. 오죽하면 러시아 월드컵 실패 이후 정몽규 회장 등이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 ‘선수비 후역습이 한국축구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임이 지당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벤투 부임 이후 지배와 점유를 강조했고 이 지배와 점유 축구는 아시안컵을 통해 허상임이 드러났다. 이미 지배와 점유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조별리그 탈락한 이후 트렌드가 바뀌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단 한번도 볼점유율 우위를 가져간 적이 없는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증명됐다.

차라리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처럼 실력이 부족해도 죽을 듯이 뛰고 부딪치기라도 했다면 선수들의 땀과 노력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비효율적인 점유와 백패스의 지배는 국민들의 화만 더 나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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