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이하 한국 시각)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중국을 2-0으로 제압하고 C조 1위로 2019 AFC 아시안컵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등 몇 수 아래의 전력으로 평가받는 팀과의 조별예선은 실망스러운 점이 드러난 경기였다. 높은 점유율에 비해 득점이 저조했고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조별예선 1, 2차전을 통해 나타난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문제는 기성용의 부재, 그리고 팀 전체의 유기적 플레이의 실종이었다. 중국전에서 나타난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두 경기 연속 헤더로 득점에 성공한 김민재 ⓒAFPBBNews = News1
▶수비까지 불안정하게 만든 기성용의 공백

기성용은 지난 필리핀전에서 가벼운(1주일) 햄스트링 부상 진단을 받았다. 본래 햄스트링 부상은 완전히 회복돼 필드에 복귀하기까지 최소 2주가 걸리는 부상으로 재발의 위험까지 안고 있는 골치 아픈 증상이다.

더구나 대표팀의 라볼피아나 대형(윙백이 공격 진영 높은 곳까지 전진하고 센터백이 사이드라인으로 넓게 벌리면, 기성용과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그사이에 위치해 백스리를 만드는 빌드업 대형)에서 기성용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어서 한국의 기본적인 경기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예측 가능했다.

기성용을 대신할 정우영의 짝으로 황인범이 선택받았지만 이 두 명의 미드필더들은 수비 진영 깊숙한 곳에서부터 공격을 이끌기에 기성용보다 전문성이 떨어진다. 볼 배급을 담당하는 안정적인 기점이 사라지자, 중원을 거쳐 가는 패스플레이가 상대의 압박에 번번이 막혔다. 또한 김민재, 김영권 등 패스에 자신 있는 센터백이 측면 공격수에게 직접 연결하려는 과정에서 패스 미스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정우영의 홀딩 미드필더 역할 기용은 성공적이었다 ⓒAFPBBNews = News1
▶더블 볼란치의 역할 분담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세울 때는, 홀딩 미드필더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롤 분배가 중요하다. 기성용의 공백은 이러한 역할 분담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우영과 황인범이 둘 다 수비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공격 전개 시 수비 진영에 위치한 모습이 종종 보였다.

그러나 중국과의 경기에서 공격보다는 정우영은 포백을 보호하며 홀딩 미드필더의 역할을 맡았다. 후반전 가오린의 반칙으로 얻어낸 직접 프리킥 기회에서, 무회전 킥에 능한 정우영이 프리킥을 황인범에게 맡기고 자신은 역습에 대비해 센터백과 함께 서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가오린의 강력한 슈팅을 몸으로 막아내는 등 수비 시에는 페널티박스 근처에 머무르면서 몇 차례 좋은 방어도 보여줬다.

킥이 좋고 기동력도 보장되는 정우영이지만 홀딩 미드필더 역할에 집중하면서 수비의 안정성이 늘어나고 좌우 윙백의 전진 플레이가 회복됐다. 특히 수비 부담이 줄어든 김문환은 적극적인 돌파와 크로스로 상대 수비를 위협했고, 황인범도 도전적인 패스를 시도할 수 있었다.

이날 손흥민의 활약은 대표팀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AFPBBNews = News1
▶‘에이스’의 존재감

손흥민이라는 확실한 에이스가 있다는 것도 승리에 결정적인 요소였다.

이날 경기에서 손흥민은 2골에 모두 관여하며 만점 활약을 펼쳤다.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영리한 플레이로 황의조에게 좋은 찬스를 제공했고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중국 수비를 교란했다. 이처럼 경기 분위기를 주도하는 역할 외에도,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등 경기 내내 상대의 반칙을 유도하는 모습은 박지성의 대표팀 시절을 보는듯 했다.

최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손흥민이 아시아 대회에 출전하는 것에 회의적인 여론이 많았지만, 그는 팀 플레이어다. 뛰어난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팀 전체를 이끄는 손흥민의 비중은 최소 기성용 이상이다.

손흥민은 후반 중반까지 처진 스트라이커로 뛰면서 상대의 뒷공간을 만들고 중앙과 측면 2선 자원들에게 기회를 창출했다. 황의조, 손흥민의 득점력과 김민재의 제공권 외에도 우리 대표팀이 토너먼트에서 주된 공격 루트로 삼을 수 있다는 유용성이 있다. 이번 경기 이후 더블 볼란치의 역할 분배, 윙백들의 높은 전진 등 전술적 요소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에이스의 존재감은 필수적이다.

▶조별예선 1위, 그러나 토너먼트는 다르다

C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 한국의 상대는 바레인이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 전술적 보완과 체력관리에 대한 대표팀의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빌드업 중심, 짧은 패스 플레이의 단점은 공을 소유한 선수가 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데 있다. 특히 그것이 김민재와 같은 최종 수비수에게서 발생한다면 경기 결과를 판가름내는 치명적 실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전반 내내 6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다 막판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60% 이하로 점유율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90분 내내 일관된 경기 운영 능력이 유지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황희찬, 이청용 등 2선 자원의 골 결정력 분발 역시 요구된다.

손흥민 개인에 의지하기보다 팀플레이가 손흥민을 지원할 때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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