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졸전에, 또 졸전이다.

지난해 첫 출항 이후 순항을 거듭하던 벤투호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하필이면 무대가 ‘59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어서 그 여파가 더욱 거센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벤투호는 우루과이를 꺾고, 칠레와 비기는 등 강팀들을 상대로 선전했다. 아시안컵 전에는 우즈베키스탄을 4-0으로 대파하는 등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아시안컵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스스로 높였다.

그러나 정작 대회가 개막한 뒤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등 한 수 아래인 팀들을 상대로 잇따라 진땀승을 거두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2경기 모두 1-0 신승이다.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경기력면에서 팬심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 그 아쉬움은 더욱 커진 상태다. 벤투호는 ‘예상 가능한’ 상대의 밀집수비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골 결정력에서도 허점을 드러내면서 2경기 연속 진땀을 흘리는 중이다. 벤투호를 향했던 팬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은 상태다.

그런데 한국축구가 대회 조별리그에서 한 수 아래의 팀들을 상대로 부침을 겪었던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김학범 감독이 이끌었던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그랬다. 결과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대회이기도 하다.

ⓒ대한축구협회
당시 한국은 첫 경기에서 바레인을 대파한 뒤 조별리그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1-2로 졌다. 피파랭킹 171위 팀을 상대로 전반에만 내리 2골을 내준 뒤 끌려가다 가까스로 영패를 면한 그야말로 ‘충격패’였다.

이어진 키르기스스탄(당시 92위)전에서도 1-0 진땀승을 거둔 한국은 결국 조별리그 1위를 말레이시아에 빼앗긴 채 16강에 올라야 했다. 김학범 감독 등 대표팀을 향한 비난 여론은 매우 거셌다. 대회 금메달에 대한 기대감 역시도 단번에 사그라졌다.

그러나 조별리그는 조별리그일 뿐이었다. 토너먼트에 들어선 이후 김학범호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난적’ 이란을 2-0으로 완파한데 이어 우승후보로 꼽히던 우즈베키스탄을 연장접전 끝에 꺾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도, ‘숙적’ 일본도 차례로 제치고 결국 정상에 우뚝 섰다.

여론도 단번에 바뀌었다. 비단 김학범호를 향한 찬사를 넘어 한국축구 전체의 ‘붐’으로도 이어졌다. 황의조(감바 오사카)를 비롯해 김문환(부산아이파크) 황인범(대전시티즌) 등 아시안게임 스타들도 탄생했다. 앞서 말레이시아에 당한 충격패 등 조별리그에서의 부침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한축구협회
아시안게임만이 아니다. 최근 아시안컵 우승팀 사례들을 돌아봐도 조별리그는 조별리그일 뿐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지난 대회에선 호주가 조별리그에서 한국에 패배하고도 끝내 정상에 올랐다. 그 전 대회에선 일본이 추가시간에 터진 동점골 덕분에 요르단과 가까스로 비기는 등 불안하게 출발하고도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조별리그부터 압도적인 위용으로 아시안컵 정상에 오른 사례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벤투호가 앞서 필리핀, 키르기스스탄전에서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대회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진출이 확정된 16강을 포함해 ‘최소한’ 2경기가 더 남아 있다. 반전의 여지는 충분하다.

조별리그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는 교훈을 얻은 것은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다. 특히 59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에게는 지난 조별리그보다는 앞으로 넘어야 할 토너먼트가 더 중요하다. 날선 비판이든 칭찬이든, 벤투호를 향한 평가 역시도 ‘더 이상 남은 경기가 없을 때’ 나와도 늦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은 오는 16일 오후 10시30분(한국시각) 아랍에미리트 알나얀 경기장에서 중국과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이날 한국은 중국을 이겨야만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