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AFC 아시안컵이 지난 6일(한국 시각) 개막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59년 만의 우승을 노린다. 박지성이 대표팀 주장으로 뛰던 시절 한국의 최고 성적은 3위였다. 전 대회였던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도 개최국 호주에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컵이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승리에 대한 축구팬들의 기대가 그 어느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독일을 침몰시킨 것을 시작으로,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했다. 또한 월드컵 직후 선임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작년 9월 이후 7경기 3승 4무, 무패를 기록 중이다.

남미의 강호 칠레를 상대로 거둔 무승부와 아시아 대회에서 한국을 종종 고전하게 했던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거둔 승리의 임팩트는 컸다. 유능한 감독과 프리미어리그에서 최상의 폼을 보이는 대표팀 에이스, 그리고 새로운 선수들의 조화는 59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하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에릭손의 필리핀, 5-4-1 밀집 수비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일본, 이란, 호주 등과 함께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결과 못지않게 경기 내용이 중요하다. 따라서 7일 필리핀과의 C조 조별리그 경기는 1-0 승리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실망스러운 결과로 비칠 수 있다.

한국은 전반 39분에 황의조의 첫 유효슈팅이 나올 만큼 필리핀의 밀집 수비에 고전했다.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은 그의 수비적인 전술 때문에 과거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에서 해임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수비적인 전술과 역습에 능한 감독이다.

에릭손 감독의 지휘 아래 실질적인 경기 운영에서는 5-4-1 포메이션의 두 줄 수비를 유지하고 최전방 스트라이커까지 수비에 가담시켰다. 전반전을 무실점으로 마치고 후반에 한국의 체력이 저하되면 한 방을 노리겠다는 전형적인 역습 전술이었다.

▶2선의 창의성을 살린 벤투의 맞대응

벤투 감독은 A매치의 경험이 많고 기복 없이 뛸 수 있는 안정적인 선수를 선발했다. 첫 경기에서 확실한 승리를 위한 라인업이었다. 공격 전개 시에는 우측의 이용-이재성-정우영 삼각 포지션이 전반 초반 핵심적 역할을 했다. 다만 필리핀의 공격을 차단하고 수비진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렸을 때 빠른 방향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구자철의 기동력이 아쉬웠다.

전반전의 전체적인 흐름은 필리핀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슈팅이 나오기보다 의미 없는 리턴패스가 잦았다. 한국의 과감한 플레이가 아쉬웠다.

벤투 감독은 황인범과 이청용을 투입하면서 2선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볼을 점유하는 동안 황인범과 이청용의 창의적 패스가 답답한 공격을 풀어주었다. 이청용의 패스를 기점으로 황의조가 득점한 결승골 장면은 벤투 감독이 이날 경기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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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후보에게 남겨진 과제

필리핀과의 경기를 통해 드러난 한국의 약점을 약팀을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높다. 약팀들의 텐백을 상대로 얼마나 창조적인 패스와 저돌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을지 여부가 중요하다. 한국은 80%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경기를 주도했지만 13개의 슈팅 중 단 4개의 슈팅만이 유효슈팅으로 연결됐다는 것은 개선돼야 할 점이다.

우승후보를 상대로 약팀이 ‘버스’를 세우는 것은 흔한 일이다. 따라서 최전방의 황의조가 후방 수비를 유인하고 2선과 3선의 미드필더가 직접 해결하고, 슈팅을 시도하는 과감한 전개가 필요했다.

카드 관리와 부상도 우승에 변수가 될 수 있는 요소다. 이날 경기에서 이용, 정우영, 김진수가 경고를 받았고, 기성용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당분간 전력에서 이탈한다. 일관된 경기력을 유지하려면 불필요한 카드를 받지 않도록 주의하고 선수 개개인의 부상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1-0 승리, 비난은 아직 이르다

답답한 내용도 있었지만 한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요소도 존재했다. 먼저 어떤 포메이션에서 어떤 선수가 들어오든지 골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대표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이 취임 후 밝힌 포부처럼 상대가 누구든 공을 점유하면서 우리가 잘하는 것을 하겠다는 벤투호의 색깔이 드러난 경기였다.

밀집 수비를 뚫어내는 것은 어렵다. 아르헨티나도 월드컵에서 이란의 질식 수비에 고전했다. 메시의 환상적인 슈팅으로 1-0 승리를 거뒀지만, 이란의 수비가 더욱 돋보인 것은 사실이다. 필리핀이 이란과 같은 레벨은 아니지만, 그들의 밀집 수비를 극복해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것이 메시의 아르헨티나처럼 개인에게 의존한 결과가 아니라, 선수들의 경기력과 감독의 용병술로 빚어낸 결과라는 점이 이번 아시안컵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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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상문 객원기자 sangmoonjj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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