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경기 8분 2초부터 8분 39초까지. 딱 38초동안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을 공략하는 왼쪽 측면에서부터 중앙 미드필더 라인을 거쳐 다시 오른쪽 수비라인까지 공을 내리다 다시 방향을 전환해 왼쪽 수비 라인에서 중앙, 오른쪽 공격 측면에서 문전까지 정확하게 숫자 ‘8’자를 그리며 선제 결승골을 넣었다.

후방에서부터 빌드업을 중시하는 파울루 벤투호의 축구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38초, 11번의 패스의 미학이었던 선제골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20일(이하 한국시각) 오후 7시 호주 브리즈번의 QSAC경기장에서 열린 11월 A매치 평가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4-0으로 대승했다.

전반 9분만에 오른쪽 풀백 이용의 오른쪽 높은 크로스를 남태희가 논스톱 발리슈팅으로 선제골을 만들며 한국은 ‘난적’ 우즈벡에 편하게 풀어갔다. 전반 24분에는 왼쪽에서 주세종이 오른발로 감아올린 코너킥이 수비맞고 문전 혼전 상황에서 이용이 터닝슈팅을 했다. 골키퍼 정면에 맞고 나온 것을 황의조가 재차 강력한 대포알 슈팅으로 골문을 가르며 2-0을 만들며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 25분에는 왼쪽에서 코너킥을 수비가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것을 문선민이 왼발 하프 발리중거리포로 추가골을 만들었다. 후반 36분에는 나상호의 힐패스에 이진현이 석현준에게 내준 것을 골키퍼 앞에서 석현준이 가볍게 밀어 넣어 네 번째 골을 완성했다.

그림1. SBS
이날 경기에서 과정 면에서 가장 완벽했던 것은 단연 첫 번째 골이었다.

경기 시작 8분 2초경 남태희의 드리블돌파가 우즈벡 수비를 맞고 왼쪽 공격 측면에서 박주호가 힘겹게 달려가 공을 살리며 백패스를 했다. 라인을 올렸던 중앙수비수 김영권은 오른쪽 중앙 중원에 있던 주세종에게 연결했고 주세종은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젖히려다 여의치 않자 오른쪽 측면의 이용에게 연결했다(그림1).

이용은 상대 수비가 달려 들어오며 압박하자 공을 뒤로 빼는척하다가 옆에있던 중앙수비수 정승현에게 패스했다. 정승현은 다시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한 주세종에게 패스하고 주세종은 터치가 좋지 않아 후방에 쳐진 이용에게 다시 백패스를 했다. 거의 한국 페널티박스까지 내려간 상황에서 이용은 다시 왼쪽에 있던 김영권에게 패스하며 방향전환에 성공했다(그림2).

그림2. SBS
이때 이청용이 중앙선 밑까지 내려와 김영권의 패스를 받아줬고 이청용은 중앙선 부근에 있던 황인범에게 수비 2명 사이로 정확히 패스했다. 황인범은 이때 골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스루패스를 정확하고 빠르게 오른쪽 측면으로 달려가는 이용에게 연결한다. 이미 한국이 오른쪽에서 상대 공격라인을 상당히 올려놓은 상황이기에 수비 백업이 되지 않은 우즈벡의 측면은 뚫려있었고 이용은 전속력으로 달려 황인범의 스루패스를 논스톱 오른발 크로스로 연결했다. 이 크로스는 문전에 있던 남태희에게 정확하게 갔고 남태희는 지체하지 않고 논스톱 왼발 하프 발리슈팅으로 선제골을 성공했다(그림3).

이 모든 과정이 8분 2초부터 8분 39초까지 38초간 11번의 패스와 한번의 슈팅으로 만들어졌다. 그 사이 우즈벡 선수는 단 한 번도 공을 만져보지 못했고 한국은 11명의 선수 중 8명이 관여한 패스플레이로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왼쪽 공격측면에서부터 시작된 패스플레이는 중원을 거쳐 오른쪽 수비 측면을 거쳐 다시 왼쪽 수비 측면에서 중원으로, 그리고 중원에서 오른쪽 공격 측면을 거쳐 문전 왼쪽에 이어져 골이 됐다. 굳이 그려보면 딱 경기장을 세워놓고 ‘숫자 8’을 그리면서 골을 넣은 셈이다.

그림3. SBS
벤투 감독은 부임 후부터 지속적으로 빌드업을 강조해왔다. 공을 점유하며 패스하고 뒤에서부터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경기를 언급했다. 바로 이 철학이 이 선제골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왼쪽 공격이 실패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중앙으로 공을 뺀뒤 이때도 상대 전방 압박에 백패스를 했지만 뺏기지 않고 공을 빼내 왼쪽측면으로 돌린 후 중앙을 거쳐 패스 플레이로 골을 만든 과정은 이번이 처음 나온 장면이라 할지라도 칭찬받아 마땅했다.

물론 매경기 이런 장면을 보이기 쉽지 않고 또 이런 골을 넣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과정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한국축구는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부분이다. 중요한건 지속성이다.

-스한 스틸컷 : 스틸 컷(Still cut)은 영상을 정지된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을 뜻합니다. 매 경기 중요한 승부처의 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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