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①담배 연기 찌든 경기장 더 이상 안돼
②"욕설 쏟아지는데…아이랑 다시는 안 올 거에요"
③불법 반입에 투척까지, 위험에 노출된 경기장
④잠실구장 먹다 남은 음식까지 10톤 쓰레기…안내방송, 분리수거도 효과 없어
⑤악성 게시글, 보이지 않는 살인 흉기

프로스포츠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관중석 안팎의 꼴불견 행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스포츠한국에서는 경기장 흡연 문제부터 과도한 욕설, 쓰레기 문제 등 볼썽사나운 경기장의 어두운 민낯을 집중 조명해 본다. 이번 캠페인이 올바른 관중 문화 조성의 첫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두번째 주제는 경기장에서 무절제하게 쏟아지는 `욕'이다./ 편집자 주

사진 속 단체 및 인물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보세요, 지금도 또 욕 하잖아요.”

6살 아들과 함께 수도권의 한 축구장을 찾은 A(38)씨 부부가 한숨을 내쉬며 관중석 한 켠을 가리켰다. 심판의 휘슬이 울린 직후였다. A씨 부부가 가리키는 곳에는 심판을 향해 고성과 함께 욕설을 퍼붓는 서포터스 여러 명이 서 있었다.

가족들과 처음 축구장 나들이를 왔다는 이 부부는 “아이가 (욕설)뜻을 묻는데, 뭐라고 답해야 하나 싶다”면서 “이런 분위기라면 다시는 안 올 것 같다. 아이 가진 부모라면 모두가 같은 심정일 것”이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B(28)씨도 눈살을 찌푸린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별 욕이 다 쏟아지는데 선수 가족들을 거론할 때도 있다”면서 “팬 입장에서 화는 날 수 있겠지만 욕설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폭력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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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팀·심판 향한 욕설 여전…가족 관련 욕설까지

프로축구장에서 서포터스의 욕설을 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상대팀 선수단이나 서포터스를 향해, 심판진을 향해 욕설이 뒤섞인 불만을 표출하는 장면들은 여전히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욕설이 나오는 상황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어떠한 형태로든 불이익을 받는다고 판단됐을 경우다. 심판의 판정이나 상대의 거친 파울이 대표적인 예다. “우~”하는 야유에 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욕설의 수위는 팀이 지고 있는 상황, 그리고 경기가 종반으로 향할수록 더욱 거세진다. 상대팀 플레이 하나하나에, 주심의 판정 하나하나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들끓는 분위기는 결국 과도한 욕설로 이어지는 것이 부지기수다. 누가 들어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욕설들이 경기장에 울려 퍼질 때가 많다. 선수나 심판은 물론 일반 관중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귀에도 고스란히 담긴다.

선수를 향한 서포터스의 욕설이 실제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번진 사례도 있다.

지난해 모 구단은 일부 서포터스가 그라운드에 난입, 광고판을 걷어차는 등 난폭한 행위를 벌였다가 징계를 받았다. 서포터스를 향한 상대 골키퍼의 세리머니가 화근이 됐는데, 해당 골키퍼는 “과할 정도로 뒤(서포터스)에서 욕을 한 것에 대한 감정이 더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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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관중의 몫…“서포터스는 양날의 검”

문제는 서포터스석에서 형성되는 험악한 분위기가 경기장 전체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의미로 들끓기 시작하면 그 여파가 일반 관중석으로까지 번진다는 의미다.

서포터스가 심판이나 상대팀 선수를 향해 비속어가 섞인 구호를 단체로 외칠 때면, 일반 관중들이 비속어를 따라 외치기 일쑤다.

이처럼 경기장 전체에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면, 감정이 격앙된 일부 관중들은 욕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경기 후 심판이나 선수들을 향해 욕설을 하거나,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통로 천장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극단적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욕설 등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모처럼 찾은 축구장에서 마음이 상해 다시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관중격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프로축구 전체로 볼 때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A씨는 “한 명이 욕설을 시작하니까 이곳저곳에서 점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면서 “내가 예민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라면 오기가 꺼려질 것 같다”고 말했다.

모 구단 관계자가 서포터스를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서포터스에 대해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고마운 분들”이라면서도 ”팀을 사랑하는 마음은 알지만 욕설 등 난폭한 행동들은 오히려 팀에 해가 된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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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보다는 서포터스 내부적으로 자중해야”

구단들은 경기 중간중간 욕설을 자제해달라는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욕설이 나올 때마다 안내 방송을 한다면, 경기 내내 안내 방송만 해야 한다”는 한 구단 관계자의 푸념이 말해주듯 실효성은 크지가 않다. 경기 진행에 방해되는 언행을 할 경우 퇴장조치 할 수도 있다는 연맹 규정 역시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규정이나 제도적으로 이러한 문화를 제한하는 것보다는 관중들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윤영길 한국체대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욕설은 환호 등 경기에 몰입해 있는 동안 무언가를 표출하는 방식 중 하나"라면서 "다만 플레이에 대한 비난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개인이나 가족에 대한 비난과 연결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강제한다고 바뀌기는 쉽지 않은 문화다. 오히려 에너지를 분출하는 통로를 원천봉쇄 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면서 “대신 건전하게 순화해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연상 프로축구연맹 사무국장도 “훌리건 문화는 축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지만 분명 역기능도 많다. 축구는 서포터스만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면서 “가족 단위 팬 등이 서포터스의 지나친 욕설에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경기장에 안 오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강제 장치 등보다는 서포터스 내부적으로 자중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 구단 서포터스 관계자는 “욕설 등을 하면 자체적으로 징계하자는 등의 내부적인 목소리가 있다.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심판 판정 등의 문제도 함께 발전해야 욕설 문화가 바뀌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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