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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신태용 감독의 유임 가능성이 열렸다. 4년 전 실패 이후 고위직을 꿰찬 전무이사는 ‘여론’을 대변하던 후배들을 향해 쓴 소리를 내뱉었다. 급기야 수장은 다른 나라 팬들과 국내 팬들을 비교하고 나섰다. 고개를 숙여도 모자랄 상황, 대한축구협회의 행보는 그래서 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우선 국가대표선임위원회는 신태용 감독이 계속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뒀다. 10여 명의 차기 사령탑 후보군에 신 감독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선임위의 차기 사령탑 기준에 신 감독이 얼마나 부합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핵심은 따로 있다. 감독 선임이 난항에 부딪혔을 경우, 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길 수 있는 여지와 명분을 대한축구협회 스스로 만들어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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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사상 초유의 ‘엿 사탕 세례’를 받았던 당시의 감독이었던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박지성·안정환·이영표 해설위원을 향해 “현장에서 감독 경험을 했더라면 더 깊은 해설이 나왔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앞선 해설위원들이 월드컵 기간 동안 후배들을 향해 보낸 날선 비판이나 뜨거운 격려는, 축구팬들의 마음과 대부분 궤를 같이 했다. 방송이 아닌 현장에서 한국축구의 발전에 힘을 보태달라는 속뜻이 담겨있겠지만, 이러한 발언이 나올 타이밍은 결코 아니었다.

급기야 ‘수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해외 팬들과의 비교를 통해 국내 팬들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정 회장은 “월드컵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은 멕시코와 독일 팬들이었다. 광적인 응원을 보내는 멕시코 팬들의 열정, 패배하고도 국기를 흔들며 성원을 보내는 독일 팬들의 태도도 배울 만하다”면서 “반면 우리는 선수와 감독에 대한 비난이나 조롱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태용호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성패’를 대한축구협회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4년 전에 이은 또 다른 실패에 고개를 숙이고, 제 살을 도려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여론을 더욱 들끓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독일전 승리’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대단한 착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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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회장의 러시아 월드컵 관련 기자간담회 인사말에서부터 대한축구협회의 ‘착각’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정 회장은 “우리 대표팀이 세계 랭킹 1위인 독일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면서 “그러나 16강 진출 실패로 국민들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6강 실패에 대한 반성보다 독일전 승리를 먼저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신 감독의 실험, 도전 정신이 너무 폄하되는 듯하다”면서 신 감독을 치켜세우기에 바빴다. 수장의 이러한 한 마디 한 마디는 고스란히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등 조직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홍명보 전무이사의 타이밍이 어긋난 한 마디, 신태용 감독의 차기 감독 후보군 편입도 같은 맥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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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던 팬심이 누그러진 것에 오히려 기고만장해진 듯한 모양새다. 고개를 숙이고 자성하는 분위기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여론에 반(反)하는 선택과 발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대한축구협회만이 이번 월드컵을 ‘실패’로 규정짓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위기가 대한축구협회의 ‘대단한 착각’인 이유는, 독일전 승리 직후 팬들의 박수는 오롯이 그라운드 위를 누빈 선수들을 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몸을 내던지는 수비, 무려 118km나 함께 뛴 선수들의 정신력과 투혼을 향한 박수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는 이를 신태용호와 한국축구에 대한 박수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신태용 감독의 후보군 편입부터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홍 전무이사, 정 회장의 발언 등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4년 만에 또 다시 실패를 경험하고도, 그 누구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쯤되면 독일전 승리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모양새다. 과감한 새 출발이 필요한 시점에 대한축구협회를 큰 착각으로 빠트린 까닭이다.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분위기에 오히려 의기양양한 모습까지 보여주니, 새로운 발걸음은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실패’ 직후, 한국축구가 마주하고 있는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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