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사람보다 구조가 바뀌어야한다.”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에서 전무 직책으로 8개월여 일하면서 느낀 것은 무엇일까. 기자 간담회를 통해 홍 전무는 경기인이 아닌 행정가로서 느낀 소회를 밝혔고 이는 분명 귀담아 들을 만 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는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홍명보 전무,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48개사 기자단과 간담회를 가졌다.

러시아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와 이후 나오는 비판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한 자리가 아니냐는 눈초리도 있었고 실제로 그런 내용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의미 있는 질타와 얘기도 나왔다.

특히 4번의 월드컵은 선수로(1990, 1994, 1998, 2002) 2006년 월드컵은 코치로, 2014 월드컵은 감독으로, 이번에는 행정가로 월드컵을 가진 ‘경기인’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홍명보 전무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홍 전무의 말은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그리고 행정가로서의 입장을 모두 대변하는 말들이었기에 더욱 이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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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지켜본 소회에 대해서는 4번이나 월드컵을 나갔던 선수로서 감정이입 했음을 밝혔다. 홍 전무는 “이번 월드컵을 보며 힘들고 안타까웠다"며 "힘들었던 이유는 1990 1994 1998 월드컵이 많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저도 그 당시에 느꼈던 것을 아직도 선수들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것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이거를 넘어갈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벽에 막히는 느낌이 있었다. 이번에 밖에서 경기를 보니 매순간 상황, 선수들의 표정을 봤을 때 예전과 너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소회를 밝혔다.

3사 해설위원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때는 “오케스트라의 꽃은 지휘자이듯 축구현장의 꽃은 지도자다. 3사 해설위원들이 감독으로서 경험했더라면 더 깊은 해설이 나올 수 있을거라 본다. 이 친구들은 한국축구의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인데 현장에 와서 현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고 자신이 받은 것을 돌려주는게 필요하다고 본다”라며 대표팀 감독을 해본 입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 축구의 문제점에 대한 질문에는 행정가로서의 입장을 얘기했다. 지난해 11월 대한축구협회 조직개편 때 전무로 입사한 홍 전무는 “유소년 축구의 문제점을 얘기하고 싶다. 축구는 13세부터 19세까지가 가장 중요하다. 13~16세까지 좋은 경기력을 가져가야 17, 18세때 국제적으로 성인레벨에 준하는 경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 입시로 인해 중1, 고1은 거의 경기에 나오지 못한다. 중3, 고3이 입시 때문에 경기를 뛰어야하기 때문이다. 중2, 고2도 절반은 쉰다. 고1에 좋은 선수가 있어도 후반전에 나온다. 전반전은 고3이 입시 때문에 뛰어야하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좋은 선수도 중고등학교 6년 중 3년 가까이를 제대로 경기에 뛰지 못하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들은 당장의 입시 성적을 위해 기술적으로 좋은 선수보다 빠르고 큰 신체적으로 좋은 선수를 선호한다. 기술 좋은 선수는 도태되고 있다”면서 “축구는 대기만성 스포츠다. 연령별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가 월드컵에 나가는 경우도 많다”면서 이런 상황을 전무 취임 후 파악해왔다고 밝혔다.

홍 전무는 격정적으로 말했다. 바로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 소용없다고 말이다. “바로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고 정책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8년, 12년 후에도 지금과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와도 마찬가지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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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현재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지도자들에게 신체적으로 좋은 선수, 기술적으로 좋은 선수로 두 팀을 나눠 운영하길 권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홍 전무는 그나마 독일전을 통해 한국축구가 작은 불씨라도 살린 지금에 대해 “언론이든 축구인이든 축구협회든 바로 이런 기회가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한국 축구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고 본다”면서 반드시 행정가로서 구조적 문제부터 바꿀 것임을 천명했다.

한국 축구에서 홍명보 전무같은 인물은 어디에도 없다. 선수로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빛나던 2002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장을 지내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코치에 이어 감독으로 U-20월드컵, 2012 런던 올림픽의 성공,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를 맛봤고 이후에는 중국에서 프로 감독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 후에는 다시 행정가로 변신했다. 한국축구의 정점에서 모든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홍 전무의 행정은 더 빛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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