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카잔(러시아)=이재호 기자] 기뻐하자. 하루 정도는 승리에 취해도 된다. 어떻게 전대회 챔피언이자 피파랭킹 1위인 독일을 상대로 2-0으로 이길 수 있겠는가. 16강 탈락에도 기뻐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냉정한 눈도 필요하다. 신태용호는 지난 10개월간 많은 공적과 과실을 남겼다. 7월이면 계약이 만료되는 신태용 감독은 물론 대표팀을 향한 냉정한 평가가 2연속 16강 탈락한 한국 축구를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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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월드컵 대표팀은 27일(이하 한국시각) 오후 11시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김영권과 손흥민의 골로 2-0 투혼의 승리를 기록하며 월드컵 1승2패 조 3위로 마감했다.

스웨덴에 0-1, 멕시코에 1-2로 패했던 한국은 세계 1위이자 전 챔피언 독일을 상대로 패배가 예상됐음에도 끝까지 버텨내는 수비축구로 독일의 16강행을 무산시켰다. F조에서는 최종전에서 스웨덴이 3-0으로 멕시코를 이기며 스웨덴이 1위, 멕시코가 2위로 16강에 올랐다.

한국은 버티고 버텼고 독일은 다득점이 필요하자 공격수 3명을 투입하며 수비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결국 후반 추가시간 코너킥 상황에서 김영권이 골을 넣었고 VAR판독으로 골이 인정됐다. 후반 추가시간 6분에는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골문을 비우고 중앙선 이상 올라왔을 때 주세종이 길게 골대 앞으로 찼고 손흥민이 달려가 끝내기 골을 넣으며 한국이 기적같은 승리를 했다.

기뻐하기 충분하다. 어떻게 독일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한 베팅업체는 ‘한국이 2-0으로 이기는 것보다 독일이 7-0으로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냉정히 예측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웨덴, 멕시코에게 진 팀이 어떻게 독일을 이기리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국민적 기쁨이며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끝까지 버틴 집중력과 정신력은 한국 축구가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단 한경기를 잘했다고 해서 월드컵의 실패가 모두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냉정함이 필요하다.

신태용호는 지난해 8월 출범 이후 줄곧 여론을 등지며 힘든 상황을 스스로 자초했다. 월드컵 진출 확정 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월드컵 진출에 여론은 성났으나 민심을 읽지 못하고 헹가래를 하고 귀국 환영 행사도 열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또한 거스 히딩크 논란에 대한축구협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여론은 더욱 성났다.

이후 유럽 원정에서 참패로 궁지에 몰렸던 신태용 감독은 11월 A매치와 12월 동아시안컵에서 반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1월 터키 전지훈련부터 월드컵 스웨덴전까지 단 한순간도 칭찬을 듣지 못하는 졸전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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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5월 온두라스전에서 2-0 완승을 거뒀지만 온두라스는 경기전날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로 의욕이 없어 보이는 팀이었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동안 국민들에게 전혀 신뢰를 주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국민들은 대표팀을 믿지 못했고 대표팀은 고립되게 월드컵을 준비했다. 역대 최악의 월드컵 관심이 지속되며 광고업계, 방송계 모두 큰 걱정을 할 정도였다.

결국 스웨덴전에서 졸전 끝에 0-1 패배를 당하면서 걱정은 현실이 됐다. 대표팀을 향한 여론이 가장 들끓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멕시코전에서 1-2로 패했지만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조금씩 여론은 돌아섰고 독일전 감동의 승리로 대표팀을 향한 여론은 많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표팀 준비 과정 속에 신태용 감독의 여론을 등지는 말들(이동국 은퇴 발언, 김영권 옹호, 트릭 논란)은 헛발짓이 분명했다. 또한 스웨덴, 멕시코전에서 드러났듯 준비한대로 경기가 되지 않을 경우 전술과 용병술에서의 부족한 유연성은 꼭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그리고 23인 엔트리에서 중앙수비수만 5명, 왼쪽 풀백만 3명을 뽑으면서 자연스레 공격진 자원이 줄었고 스웨덴, 멕시코전에서 지고 있는데 넣을 공격자원이 없어 왼쪽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투입하는 이해 못 할 용병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공격 자원의 폭을 좁힌 셈이다.

신 감독은 ‘시간이 부족했다’는 말을 자주하지만 일본, 호주 등도 신 감독보다 더 짧은 기간 팀을 맡아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신 감독은 지난해 8월 부임 이후 올해 4월을 제외하고 매달 대표팀을 지휘하는 행운을 누렸다. 공식 A매치 외에도 12월 동아시안컵, 1월 유럽 전지훈련까지 특별 소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이 월드컵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3백을 실험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4-4-2가 통했기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는데 잘하는 4-4-2 완성도를 높이기보다 다른 선택을 통해 실험한 것은 아쉽다. 스웨덴전 역시 당당하게 4-4-2로 맞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스웨덴전 무승부라도 했더라면 16강 진출의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상자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변수는 대회 준비전 생기기 마련이다. 있는 자원으로 꾸려야하는 것이 감독의 임무다. 차선을 찾아야했는데 신 감독의 선택은 차선보다 수비자원을 늘리는 것이었다.

결국 독일전의 훌륭한 성과와 동아시안컵 우승, 월드컵 진출 등의 공은 있지만 여론을 져버린 언행, 전술적 유연성 부족, 지나치게 많은 것을 시도하려는 실험정신, 결국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등은 신태용 감독의 과실이다.

7월이 끝나면 신태용 감독의 계약기간은 종료됐다. 냉정하게 분석해 신 감독에게 대표팀을 더 맡길지 아니면 새로운 감독을 선임할지는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외 선임위원들이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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