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날드 쿠만이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됐다. 네덜란드 축구협회(KNVB)는 6일(이하 한국시각) 쿠만 감독과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4년 6개월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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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만은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이다. 선수 시절, 중앙 수비수였지만 득점력이 대단했다. ‘수트라이커’(수비수+스트라이커)의 원조다. 1987~1988시즌, 중앙 수비수였음에도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하며 놀라운 득점력을 보였고, 네덜란드 축구 역사상 두 번째 트레블 달성에 앞장섰다. (당시 소속팀은 거스 히딩크가 이끌던 PSV 아인트호벤)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FC 바르셀로나에서도 이적 첫 시즌부터 두 자릿수 득점 달성에 성공하는 등 성공 가도를 이어갔다. 1991~1992시즌에는 리그 16골을 기록하며 우승을 이끌었고,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극적인 결승 프리킥 골을 작렬하며 바르셀로나의 사상 첫 유럽 챔피언 등극에도 앞장섰다. 1993~1994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UCL) 득점왕까지 차지하는 등 놀라운 모습을 이어갔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다. 쿠만은 마르코 판 바스턴과 루드 굴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 등 ‘오렌지 삼총사’에 가려졌지만, 유로 1988 우승 주역이었다. 이는 아직도 네덜란드의 유일한 메이저대회(월드컵+유로) 우승으로 남아있다. A매치 78경기 14골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지도자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쿠만은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국을 이끌던 거스 히딩크를 보좌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 시절만큼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아약스 감독 재임 시절 리그 우승을 포함한 더블에 성공했고, UCL 8강에도 올랐다. 벤피카 시절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등을 따돌리고 8강 돌풍을 일으켰다. 아인트호벤에서도 아스널을 꺾고 8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명선수’에 이은 ‘명장’의 탄생을 기대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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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발렌시아 시절이었다. 2007년 10월, 쿠만은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를 대신해 스페인 명가 발렌시아 사령탑에 올랐다. 최악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위협하던 발렌시아는 강등권까지 추락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구성과 전술이 난무하면서, 쿠만은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한 채 발렌시아를 떠났다.

이후 자국 리그 소속 AZ 알크마르와 폐예노르트에서 명예를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 성공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과 에버턴에선 준수한 성적을 냈다. 다만, ‘명장’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면이 많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에버턴의 성적 부진 책임을 물어 경질됐다.

네덜란드 대표팀 사령탑 부임은 아쉬움을 털어낼 기회다. 네덜란드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아르연 로번과 로빈 판 페르시, 라파엘 판 더 파르트 등 황금세대가 모두 은퇴하면서, 전력이 매우 약해졌다. 터키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빈센트 얀센, 프랑스에서 부활을 알렸지만 검증이 필요한 멤피스 데파이, 맨유에서 자리를 잃은 달레이 블린트 등이 핵심이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내는 것만으로도 칭송받을 수 있다.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쿠만의 입맛에 딱 맞는 버질 반 다이크, ‘특급 유망주’ 마티아스 데 리트 등이 버티는 만큼, 새로이 신설된 UEFA 네이션스리그와 유로 2020에서 선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쿠만은 조국에서의 성적이 좋았다.

쿠만이 암흑기에 접어든 네덜란드의 구세주로 거듭나 ‘명장’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지 관심이다.

스포츠한국 이근승 객원기자lkssky02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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