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반석(29·제주 유나이티드)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 본선에 설 수 있을까.

오반석은 철저한 무명이었다. 국가대표팀은 물론 연령별 대표에도 선발된 적 없다. 수상 경력이라곤 2006년 금강대기 전국 중고교 축구대회 수비상이 전부였다. 2012년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여섯 시즌 동안 174경기를 뛰었지만, K리그를 즐겨보는 팬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선수였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랬던 오반석이 2017시즌 K리그 클래식 최고의 수비수로 우뚝 섰다. 지난해 11월 ‘KEB 하나은행 K리그 어워즈 2017’에서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중앙 수비수 부문에 선정됐다. 네 명의 수비수 중 유일하게 국가대표이자 전북 현대 소속이 아니었다. 생애 두 번째이자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받은 상이었다.

실제로 오반석의 지난 시즌 활약은 대단했다. 제주는 수비의 중심축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었던 조용형이 예상치 않게 전력에서 이탈하며 흔들릴 수도 있었지만, 오반석이 중심을 잡았다. 권한진과 김원일을 이끌고 리그 최소 실점 2위(37실점)를 달성했다. K리그 클래식 38경기 중 무실점 경기가 15차례나 있었다.

‘K리그 클래식 준우승팀이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제주는 2016시즌 화끈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가 매우 부실했다. 리그 38경기에서 71골을 넣으며 전북과 함께 최다득점을 기록했지만, 57실점을 내줬다. 그해 챌린지로 강등당한 성남 FC보다 6골이나 더 내줬다.

주장이자 수비 핵심인 오반석은 큰 책임을 느꼈다. 그해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리그 16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보다 철저하게 몸을 관리했고, 2017시즌을 대비했다. 권한진과 김원일, 조용형, 백동규, 알렉스 등 수준급 선수들과의 경쟁도 피하지 않았다.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전환하고, 로테이션을 가동하는 데도 빠르게 적응했다. 그 결과가 제주의 준우승과 최소실점 2위,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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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반석은 189cm의 장신이다. 공중볼 장악력이 뛰어나고, 거친 몸싸움에도 밀리는 일이 없다. 대인방어 능력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발도 잘 쓴다. 전방으로 길게 차주는 것이 아닌, 짧게 공격을 만들어나가는 데 익숙하다. 피나는 노력으로 양발잡이(주발은 오른발)가 됐고, 해를 거듭할수록 킥의 세밀함이 더해졌다.

오반석을 보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최진철(은퇴)이다. 최진철은 1993년과 1997년 대표팀에 발탁된 경험이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는 훈련에만 참여하고 본선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선 A매치 데뷔전을 치렀지만, 막판 교체 출전이었다. 역시 프랑스 땅은 밟지 못했다.

히딩크 사단에 합류한 것도 행운이 따랐다. 2001년 9월, 윤희준의 부상으로 인한 대체 발탁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최진철은 소속팀 전북에서처럼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해냈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히딩크 감독의 마음을 조금씩 사로잡았고,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4강 신화’에 앞장섰다.

오반석도 가능하다.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혀본 적 없지만, ‘성실함’이란 최대 무기를 갖고 있다. 2017시즌에는 K리그 클래식 최고의 수비수로 올라섰고, 대표팀 명단 후보군에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대표팀에는 김민재와 장현수를 제외하면 붙박이라 할 수 있는 수비수가 없는 만큼,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이다. 이름값에서 밀릴지는 모르지만, 실력만큼은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오반석이 최진철의 뒤를 잇는 ‘늦깎이 수비수’의 전설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스포츠한국 이근승 객원기자lkssky02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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