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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지난해 3월까지만 하더라도, 축구대표팀의 기세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당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대부분의 경기에서 승전보를 울렸다. 아시안컵 준우승과 동아시안컵 우승, 그리고 월드컵 2차예선 8전 전승 등 A매치 16경기 연속 무패(13승3무)를 달렸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기점으로 흔들리던 한국축구에 비로소 ‘희망’이 생기는 듯 보였다.

다만 그 이면에는 간과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었다. 상대했던 팀들은 대부분 아시아 팀들이었고, 전력상 한국보다 몇 수 아래의 팀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과연 강한 팀을 상대로도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그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페인과의 평가전 1-6 참패였다. 그동안 한 수 아래의 팀들을 상대로만 승승장구해왔을 뿐,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혹평이 이어졌다. 앞서 가파르게 이어지던 기세 역시 세계의 벽 앞에 완전히 꺾였다.

민낯은 계속해서 드러났다. 만만치 않은 아시아 팀들과 마주한 월드컵 최종예선 내내, 한국은 추락을 면치 못했다. 슈틸리케호를 향했던 희망적인 시선은 어느덧 싸늘하게 바뀌었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됐고, 신태용호가 새롭게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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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 역사적인 4-1 대승을 거두고 동아시안컵 정상에 오른 현 시점에, 굳이 과거의 일을 되짚는 이유는 단 하나. 결코 세계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먼 대회에서 거둔 성과가, 과도한 자신감이나 자만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22세 이하 선수들이 대거 출전할 만큼 ‘실험’에 포커스가 맞춰진 팀이었다. 북한은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보다 한 수 아래가 명확했다. 일본은 축구협회장마저 날선 비난을 이어갈 만큼 스스로 수준 이하의 경기력에 그쳤다. 이는 신태용호가 일궈낸 결실 이면에 자리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사기 진작’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만한 대회는 결코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앞선 팀들을 상대로도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한 선수들에 대해 재고하는 등 보다 냉정한 내부평가가 필요한 시점일 수 있다. 요컨대 ‘동아시안컵 우승 멤버’라는 틀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한일전 대승, 그리고 동아시안컵 우승이라는 결과가 자만으로 이어지는 순간, 월드컵에서 마주하게 될 팀들의 수준 역시 망각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에서 한껏 끌어올린 기세가, 세계적인 팀을 상대로 허무하게 꺾였던 1년 6개월 전의 아픔이 반복될 수도 있는 셈이다. 동아시안컵 우승 이후, 더욱 더 냉정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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