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기자들은 두 번이나 중복해서 질문했다. 너무나도 황당했기 때문이다. 거스 히딩크 논란의 이유에 대해 묻자 “지난 A매치에서의 부진한 경기력 때문”이라고 답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행여나 잘못 말했을까 한 번 더 물었고 정 회장은 “논란의 다른 본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대한축구협회장의 현실인식이 이러한데 대한축구협회가 다를 수 있을까.

대한축구협회 제공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최근 한국축구는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대표팀 감독 부임설부터 A대표팀의 심각한 부진(2017년 1승3무4패), 대한축구협회 전현직 임직원의 배임, 사기 불구속 입건 등으로 국민들은 등을 졌다.

이례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면서까지 정 회장은 최근의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 기자회견은 도리어 축구협회장의 현실인식과 ‘노력하고 있다’, ‘기다려 달라’는 뻔한 대답만 나온 자리가 되고 말았다.

정 회장은 감독선임전문 기구를 만들고 현재 대표팀에 대한 신뢰를 확인함과 동시에 전폭적인 지원을 위해 회장 직속 기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또한 조만간 인사와 조직 개편을 할거라고 했다. 당장 무얼하겠다는 것은 없었다. 책임져야할 사람의 사퇴도 없었다.

거스 히딩크 논란에 대해서 말할 때가 이번 기자회견의 핵심이었다. 모두 발언에서 정 회장은 “최근 정리는 됐지만 히딩크 논란으로 상황이 악화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 물론 초기 대응을 명확하게 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을 덮을 수는 없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나와 축구협회는 신태용 감독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낸다"고 했다.

이 발언은 크게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사태의 본질’인지에 대해서는 대답이 없었기에 취재진은 히딩크 사태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는지 추가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상황이 악화된 것이 무척 안타깝다. 초기에 대응을 명확히 못해 죄송하다. 히딩크 논란에 대해서는 김호곤 부회장께서 문자를 온 것이 기억을 못하신게 나중에 밝혀졌고 이 부분은 잘못됐다"면서도 ”히딩크 논란의 본질은 히딩크 논란의 본질은 마지막 2경기에서 ‘저것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나’로 팬들의 기대치를 못 맞춘 것이다“라고 답했다.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경기력이 문제라면 한국은 그보다 못한 경기를 한 적도 많았다. 차라리 경기력이 문제라면 중국전 패배, 카타르전 패배 등이 더 심각했다.

본질은 경기력과 함께 그동안 축구협회가 보여준 신뢰성 제로의 행정과 결정들이었다. 모두가 경질을 요구할 때 밀고 나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경질 타이밍을 한참 놓친 것, 히딩크 논란에 대처하는 자세, 전현직 임원 비리에 대처하는 자세 등 수없이 많은 사안에 헛발질이 누적되고 또 누적돼 결국 축구협회는 가장 불신이 많은 조직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히딩크라는 매개체를 통한 폭발이었다.

행여나 정 회장이 정말 본질을 모르고 있나 싶어 취재진에서는 “정말로 본질이 경기력 때문이라고 보는가. 신뢰가 아닌가”라고 물었지만 정 회장은 “카타르전, 중국전, 이란전, 우즈벡전이 복합된 것 아닌가. 다른 배경은 잘 모르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바로 이것이 대한축구협회의 장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축구협회, 한국축구를 이끄는 이들이 보여준 헛발질은 인식하지 않고 그저 ‘경기만 잘하면 모든 논란은 지나간다’는 식의 문제인식만 하고 있다. 경기력이 확 나아지기란 쉽지 않지만 축구협회는 경기력이 나아지면 자신들의 문제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회장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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