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불명예다. 그동안 9번의 월드컵 진출에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아시아 예선에서만큼은 강해왔기 때문이다. ‘강함’은 상대 원정에서도 이길 수 있는 실력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번 10번째 월드컵 진출에서는 이런 강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최종예선 10경기 중 5번의 원정 경기에서 무승(2무3패)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스포츠한국의 전수조사 결과 한국 축구사 최초의 기록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64년간 10번의 진출을 했지만 이 10번동안 아시아 예선에서 원정경기 승리 없이 월드컵으로 나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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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조사 결과, 지역 예선라운드 원정 무승은 최초

스포츠한국은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무승(2무3패)이라는 특이한 기록에 의문을 갖고 전수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954 스위스 월드컵때도 아시아 지역 예선은 있었다. 일본과 두 번의 예선을 가진 것. 이 경기들은 6.25전쟁으로 불안정한 국내사정상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열렸고 선수들은 ‘일본에게 이기지 못할 경우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임해 1차전 5-1 대승, 2차전 2-2 무승부로 월드컵 진출 티켓을 따냈다.

이후 기록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방대하기에 원정경기에 승리한 기록 위주로 언급하겠다.

1986 멕시코 월드컵이 두 번째 진출이었다. 이때는 아시아 예선 1라운드부터 참가했고 A조에서 네팔 원정 승리(2-0), 2라운드 인도네시아 원정 4-1 승리, 최종 라운드 일본 원정 2-1 승리가 있었고 이를 통해 월드컵에 진출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는 아시아 예선 1라운드에서 6전 전승을 했고(원정 3승 포함), 최종라운드는 이때부터 제 3국에서 일제히 열리는 시스템이었다. 이때는 싱가포르에서 열렸고 한국은 3승2무로 조 1위로 월드컵에 진출했다.

1994 미국 월드컵에는 아시아 예선 1라운드는 레바논과 한국에서 번갈아 열렸고 당시 한국은 레바논에게 원정에서 1-0 승리를 포함해 8경기 7승1무로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이 최종예선은 카타르 도하에서 일제히 열렸고 한국은 5승2무2패로 일본을 골득실로 누르고 월드컵에 진출했다(일명 ‘도하의 기적’). 당시에는 제 3국에서 열린 경기였고 카타르는 같은조가 아니었기에 원정 경기는 아니었지만 모두 중립경기에서 5승2무2패라는 성과를 거뒀다는 의미가 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는 아시아 예선 1라운드에서 홍콩과 태국 원정에서 2-0, 3-1로 각각 승리하며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종예선에서는 6승1무1패의 성적으로 월드컵에 진출했고 이 6승 중에서는 일본 도쿄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둔 일명 ‘도쿄대첩’이 포함돼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은 개최국 자격이었기에 아시아 예선을 거치지 않고 자동 진출했다.

2006 독일 월드컵은 아시아 예선 1라운드는 참가하지 않았고 2라운드에서 이천수의 프리킥골 베트남 원정 2-1승리를 포함해 4승 2무로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종예선에서는 3승1무2패로 월드컵에 진출했는데 이 3승 중에 쿠웨이트 원정에서 4-0 대승이 포함돼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은 1,2차 아시아 예선 라운드는 참가하지 않았고 3라운드에서 요르단 원정 1-0, 김두현의 해트트릭이 빛난 투르크메니스탄 원정 3-1 승리를 포함해 3승 3무로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종예선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2-0 승리, UAE 원정 2-0 승리를 포함해 4승 4무로 월드컵에 진출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은 역시 1,2차 아시아 예선 라운드는 걸렀고 3라운드에서 UAE 원정 2-0 승리를 포함한 4승1무1패로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종예선에서는 카타르 원정 4-1 승리를 포함해 4승2무2패로 브라질로 향했다.

하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는 1차는 거르고 2차예선에서 8전 전승을 했으나 최종예선에서 원정 2무3패를 포함한 4승3무3패로 월드컵에 진출했다.

즉 위의 9번의 월드컵 진출사를 보듯 한국 축구 대표팀은 단 한 번도 모든 아시아 예선 라운드에서 원정경기에서 승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축구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예선 라운드에서 원정 경기 승리 없이 월드컵에 진출한 대표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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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무승, 무엇을 뜻하나

원정경기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곧 모든 경기가 원정경기인 러시아 월드컵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팀들이 원정경기이지만 아시아에서조차 원정경기 승리를 하지 못한 팀이 과연 러시아에 가서는 이길 수 있을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 원정경기 무승이 카타르, 중국에 패하고 시리아는 국가 사정상 제 3국인 말레이시아에서 했음에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점은 타격이 크다. 또한 상대전적 10승4무1패로 절대 우세인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승리하지 못했기에 더 가슴 아픈 결과다.

한국 축구사는 세계 여섯 국가만 해낸 9회 연속 진출이라는 찬란함만 조명해선 곤란하다. 그 속에 10번의 월드컵 진출사 속에서 64년만에 첫 아시아 지역 예선 라운드 무승이라는 중요한 알멩이가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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