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병지입니다. 제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이 된 이후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의 26인 명단발표가 지난 14일 있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신태용 감독의 국가대표 데뷔전 첫 명단을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저의 생각과 마침 제 기록을 깨고 A매치 최고령 출전 역대 2위를 꿰차려는 이동국(전북)에 대한 저의 소회도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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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의 고민이 보인 명단…쾌조의 컨디션 유럽파도 대기

이번 대표팀은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어깨에 졌습니다. 오는 8월 31일 이란과의 홈경기, 9월 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경기를 통해 2018 러시아 월드컵에 한국이 진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니 말이죠.

신태용 감독의 고민도 매우 깊다는 것이 대표팀인 명단을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큰 범위는 벗어나지 않는 선수선발이었고 안정감이 돋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지 않는 경기’다 보니 수비에 많이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먼저 중국파가 많이 포함된 수비에 대한 논쟁이 있던데 분명한 건 그 선수들은 k리그에서 좋은 기량을 검증받았으며 빠르고 힘도 있고 대인방어가 좋은 선수들이기에 중국에서 거액에 데려간 것이 사실입니다. 최고의 모습을 보였고 신 감독 입장에서는 꾸준히 중국 쪽도 지켜보면서 판단했을 것입니다.

기성용과 손흥민 같은 부상 이슈가 있는 선수들이 뽑힌 것은 유연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봅니다. 특히 기성용의 경우 회복이 되면 경기 당일 최종 23인에 포함하면 되고, 아니면 예비 명단 3명에 남겨놓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기성용은 워낙 대표팀을 잘 알고 있어 벤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역할이 있는 선수이기에 이런 명단 운영은 잘했다고 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손흥민이나 구자철, 황희찬 같은 유럽파들은 사실 막 시즌을 시작한 지금이 가장 몸상태가 좋을 때입니다.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시즌 개막에 맞춰 최상의 컨디션을 준비하기 때문이죠.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K리거들은 지금이 가장 피곤하고 힘든 시기입니다. 지난 7월은 무더위 속에서 많은 경기를 뛰었고, 8월의 일정까지 쉼없이 달려왔죠.

경기감각을 이유로 유럽파가 준비가 덜 됐고 K리거들이 준비가 됐다고 말하는데 경기감각보다 선수들은 피로도가 더 경기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인상적인 것은 전·현직 전북 소속 선수들이 많이 뽑혔는데 기량도 기량이지만 신 감독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조직력도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시간에 조직력을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죠.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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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와 노장 발탁…이동국에 대한 기억

아무래도 제가 골키퍼 출신이다보니 골키퍼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김승규, 김진현, 조현우가 뽑혔는데 조현우를 빼고는 모두 J리거입니다.

제가 얼마전 일본 고등학교 골키퍼 클리닉 참석차 다녀왔는데 현지 관계자를 통해 얘기를 나눠보니 아직 일본은 골키퍼에 대한 코칭 인프라가 부족하더군요. 고등학교까지도 골키퍼 전문 코치가 없는 곳도 많고요.

일본에서도 한국 골키퍼들은 일본 골키퍼에 비해 신체적으로 확연히 우월한데 실력 역시 낫다고 많이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J리그에서 뛰면서 한국 골키퍼들은 다른 공격스타일과 슈팅을 경험하면서 성장했다고 봅니다.

가장 많이 이슈가 되는 것이 이동국과 염기훈 등 베테랑의 발탁입니다. 저 역시 안정감을 위해서 이런 베테랑이 뽑힌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신 감독 입장에서는 충분히 다양한 카드로 나이에 상관없이 검증을 해보겠다는 것 같습니다.

짧은 기간이니 훈련에서 다 활용해보며 최적의 카드를 찾겠다는 건데 단순히 실력도 실력이지만 베테랑 선수들이 열심히 하면 후배들은 알아서 따라하게 되니 분위기나 정신적인 부분에 큰 도움이 되겠죠.

이동국의 경우 제가 한창 전성기였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처음 봤습니다. 마치 지금의 김민재처럼 최초 발탁에 어린 나이의 유망주였는데 고종수와 함께 확실히 ‘향후 한국 축구를 책임질 미래’라는 것을 대번 알아봤습니다. 황선홍 이후를 기대 받는 공격수로서 힘도 있고 감각도 있어 선배들에게 뒤처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이동국은 기대만큼 성장하면서 한국 최고의 공격수가 됐는데 경기에서 마주할 때면 본능이 남다른 선수였습니다. 피지컬도 거의 완벽한데 본능적인 감각까지 갖췄으니 최고의 선수가 될 수밖에 없었죠.

사실 이동국은 저와 함께 했던 프랑스 월드컵 이후 한국의 월드컵에 늘 중심에 있을 줄 알았지만 부진과 부상으로 참 월드컵과 인연이 되지 않았습니다(월드컵 총 출전시간 51분). 개인적으로는 그가 이번 발탁을 통해 월드컵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봐서 보기가 좋습니다. 이동국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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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2위, 곧 3위가 될 나의 최고령 A매치 출전 기록

이동국이 이란전이나 우즈벡전에 출전하게 된다면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A매치 최고령 출전 2위 기록(37세 298일)을 경신하게 됩니다(이동국 이란전 출전시 38세 124일).

나의 경우 2002년 이후 5년이 넘어 2008년 1월 칠레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했습니다. 당시 FC서울 소속으로 나이는 37세였지만 리그에서 최고 활약을 펼치자 허정무 감독께서 나이를 불문하고 경기력 평가를 통해 대표팀에 소집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대표팀 선발 기대를 하고 있었던 터에 정말 기회가 찾아와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저는 허리 디스크가 터지는 큰 부상을 입으며 다소 아쉽게 5년여만에 입은 한국유니폼을 45분여 밖에 입지 못했습니다.

회복에만 6개월이 걸렸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그렇게라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5년만에 뽑혔는데 부상으로 끝났으니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하시는데 부상을 당하고 ‘그래도 이렇게라도 대표팀 생활을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라며 감사함을 더 느꼈습니다.

솔직히 저는 제가 역대 최고령 A매치 2위 출전자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던 기록이었는데 갑자기 제 이름이 오르내리고 이동국이가 제 기록을 깰 수 있다고 하니 축하를 해줘야겠지요.

이동국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진출을 위해 제 기록을 깼으면 합니다. 또한 이참에 이번 A매치를 계기로 역대 최고령 출전자이신 고 김용식 선생님(39세 274일)의 기록까지 도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병지 칼럼 : K리그 최다출전자(706경기)이자 한국 축구의 전설인 김병지 前선수는 매주말 스포츠한국을 통해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병지 칼럼니스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이나 스포츠한국 SNS를 통해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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