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병지입니다.
최근 연예인들 사이에서 ‘김병지 컷’이 유행하고 있다죠? 물론 그 머리는 원래는 ‘울프컷’이라고 알고 있는데 워낙 제가 오래전부터 해오던 머리다보니 ‘김병지 컷’으로 명명됐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 머리, 아무나 소화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하. 잘생기고 멋진 연예인분들이니까 멋져보이는거 아닐까요. 물론 저야 오래전부터 이 머리를 했기 때문에 익숙해서 잘 어울리는거겠죠. 하하.
그렇다면 이번 칼럼에서는 제가 언제부터, 그리고 왜 이 ‘김병지 컷’을 했고 나름 이 김병지 컷이 유행했던 예전의 에피소드와 나름 자랑할 만한 긍정적 효과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1992년 울산 현대를 통해 프로에 데뷔한 저는 첫 시즌부터 10경기에 출전하면서 제 실력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1993시즌에는 25경기나 나오며 주전급으로 성장했습니다. 아직 20대초반으로 나이도 어렸고 울산 현대라는 명문팀에서 주전골키퍼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 누구도 크게 주목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스스로 저 자신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고 현재 제 아내(당시 여자친구)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내는 머리스타일을 바꿀 것을 얘기했고 함께 상의 후 미용실에 가서 과감하게 지금의 ‘김병지 컷’으로 머리를 한 것과 동시에 다양한 컬러로 염색까지 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당시 축구선수들뿐만 아니라 일반 남성들은 앞은 바가지머리에 뒤를 조금은 길게 기르는게 보편적이었습니다. 거기에서 한발 더 나가서 옆머리는 짧게 뒷머리를 많이 남긴거죠.
처음에 그 머리로 경기장에 나타났을 때 비난을 많이 들었습니다. 운동선수가 운동에만 집중해야지? ‘비행청소년 같다’면서 긴머리에 염색한 저를 사람들은 대놓고 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고 다행히 차범근 감독님 덕분에 비난의 눈초리에도 개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개방적이었던 차범근 감독님, 개성을 존중해줘
프로 1,2년차 당시 소속팀 울산 현대에는 독일에서 선수은퇴를 하고 차범근 감독님께서 지휘봉을 잡고 계셨습니다. 차 감독님은 신인인 제가 그런 머리를 하고 훈련장에 나타나자 야단보다는 ‘젊은 친구가 개성이 있어’라며 인정해주셨습니다. 차 감독님은 독일에서 생활하시고 선진축구를 경험하시면서 깨어있는 분이셨고 유럽처럼 선수들이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인정해주고 존중하며 독려하시는 마음이 있었던거죠.
이런 마음을 가지는건 쉽지 않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더 경직된 사회였고 특히 스포츠 쪽은 더욱 보수적이라 튀는 것을 용납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하늘같았던 차범근 감독님께서 제 실력은 물론 머리스타일까지도 존중해주시니 하늘을 날 듯 기뻤고 저는 실력으로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을 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차 감독님만의 지도스타일이 아니었나 회상해봅니다.
당시에는 염색이라 함은 그저 흰머리가 나는 것을 검은 머리로 덮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연예계에서도 염색은 보기 힘들었지만 저는 과감하게 파란색, 초록색, 빨간색으로 염색했고 그 덕분에 전 ‘머리스타일이 특이한 선수’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절정의 인기때 경기 끝나고 나갈때면 머리부터 보호하기도그렇게 실력으로나 개성으로 인정받던 저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선방으로 나름 ‘전국민적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K리그 연봉 1위에도 오르고 ‘골 넣는 골키퍼’라는 명성도 쌓이면서 sns 가 보편화 되지 않았던 그때 그시절 온 국민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기’였다고 자부해봅니다. 하하.
그때는 경기를 마치고 구단버스까지 가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경기장 밖을 나가면 팬들이 제 긴 뒷머리를 손으로 잡아 뜯어가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머리부터 가리고 경기장을 나서던게 기억이 납니다.
또한 제 머리가 화제가 되고 매번 기자분들이 ‘올시즌은 어떤 머리와 색깔이냐’고 물으며 스포츠 신문 1면에 자주 도배했습니다. 그러자 어린 축구선수, 초등학교 어린 아이들도 이 머리 스타일을 많이 따라했습니다. 꼭 각팀의 선수 중에 4~5 명씩은 병지컷을 하는 선수가 있어서 같이 보고 웃곤 했죠. 그러면 저는 차별성을 두기 위해 브릿지(특정부분만 염색)를 넣거나 파격적인 색깔을 하기도 했죠.
▶인정받기 쉽진 않았지만… 나름 축구계 개성 문호 열었다는 자부심
앞서 언급했듯 제 ‘김병지 컷’은 제 자신을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제 얼굴스타일에 어울리기도 하였지만, 확실히 관심을 받으면서 실력도 함께 성장하니 기자분들의 취재도 많아지고 대중들에게 제 인지도도 달라졌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 스타일을 고수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비난도 많았고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못할 때면 ‘머리는 저렇게 해서 못하네’라며 머리 때문에 더 쓴소리를 듣기도 했죠.
하지만 결국 제 스타일로 인정받았고 요즘 아이돌이나 연예인들이 비슷한 스타일의 머리를 하니 ‘김병지 컷’이다 라고 하시는걸 보고 쑥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제 파격적인 머리스타일이 자리를 잡으면서 축구계에서 이후 좀 더 외적 표현이 자유로웠졌다고 자부합니다. 이후 데뷔한 안정환의 테리우스 머리나 이천수의 노란 머리 등 후배들이 자유롭게 머리를 하고 코칭스태프는 물론 팬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흐뭇했습니다.은퇴를 한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은 제 머리를 보고 저를 알아봐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몇몇 분들은 “은퇴하셨는데 왜 머리를 안 바꾸세요?”라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전 이렇게 답변하곤 합니다.
“그 덕분에 저를 이렇게 알아봐주시잖아요."
최근 위너의 송민호, 엑소의 백현, 빅뱅의 지드래곤, 배우 남주혁 등 많은 연예인이 시도하면서 다시 유행하는 모습에 패션매거진에서 저에게 호·불호를 묻는 말에 '진정불호'라고 남긴것은 그 분들을 위한 저의 마음이 담긴 메시지 입니다.
어울리지 않는것이 아닌 진정 멋있지만, 팬들께 인정받기까지 비난 받아야 한다는것을 알기에… '진정'으로 남긴 마음 입니다.
-김병지 칼럼 : K리그 최다출전자(706경기)이자 한국 축구의 전설인 김병지 前선수는 매주말 스포츠한국을 통해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병지 칼럼니스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이나 스포츠한국 SNS를 통해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