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승격 2년 차, 2012~2013시즌 스완지 시티의 축구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아기자기한 패스를 주고받으며 점유율을 가져갔고, 화끈한 공격 시도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불과 두 시즌 전 챔피언십에 머물던 팀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을 향한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도 대단했다. EPL에서 보기 힘든 플레이 스타일에 흥미를 느낀 이들도 많았지만,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을 떠나와 둥지를 튼 기성용(28·스완지 시티)이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축구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2012~2013 스완지 시티의 주전 스트라이커 미구엘 미추 ⓒAFPBBNews = News1
하지만 기성용 못지않게 축구팬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가 있었다. 기성용과 함께 스완지에 둥지를 튼 스트라이커 미구엘 미추(은퇴)였다. 상당히 거칠고, 경기 템포가 빠른 EPL은 몸값이 높은 공격수들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한 리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명 공격수나 다름없던 미추는 적응기도 없이 곧바로 맹활약을 펼쳤다. 팬들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미추는 해당 시즌 1라운드였던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전에서 데뷔해 2골 1도움을 기록하더니 ‘빅4’로 불린 아스널전에서도 멀티골을 폭발시켰다. 스페인에서 EPL로 건너온 무명 공격수의 첫 시즌 성적은 35경기 출전 18골이었다. 말 그대로 ‘깜짝 활약’이었다.

미추는 신장 185cm로 스트라이커로서 장신은 아니었지만, 공중볼과 몸싸움에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드리블과 볼 컨트롤 등 기본기도 탄탄했다. 특히, 득점 냄새를 맡아내는 위치 선정과 결정력은 EPL 최고 수준이었다.

EPL 데뷔 첫 시즌에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올라선 미추였지만, 사실 그의 축구 인생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고향인 오비에도(스페인)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프로 데뷔까지 이뤄냈지만, 세계 축구팬들을 사로잡을만한 재능은 보이지 않았다. 유스 시절 함께 시간을 보낸 산티 카졸라(32·아스널)나 후안 마타(29·맨유) 등이 비야 레알과 카스티야(레알 마드리드)로 떠나갈 때, 미추는 4부 리그로 강등된 고향팀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기록도 평범했다. 100경기를 뛰었지만, 13골이 전부였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특급 스트라이커의 재능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007년에는 셀타 비고로 이적에 성공했지만, 미추의 무대는 1군이 아닌 3부 리그에 소속된 B팀이었다. 그곳에서 10골(28경기 출전)을 뽑아내며 2부 리그에 소속된 1군으로 승격하기도 했지만, 셀타 비고에서의 결말은 방출이었다.

그러나 행운이란 것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고는 한다. 바로 미추가 그랬다. 지난 2011년, 우여곡절 끝에 라요 바예카노와 계약에 성공했고,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현재도 EPL 최고의 공격수로 손꼽히는 디에고 코스타(28·첼시)와 전방에서 호흡을 맞추며, 37경기 출전 15골을 기록,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최전방을 책임지기도 했던 미추 ⓒAFPBBNews = News1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데뷔 시즌의 활약을 발판으로 스완지와도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하지만 미추의 꿈같은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평생 자신과는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무적함대 스페인의 최전방을 책임지기도 했지만, 2년 차 징크스와 불운에 발목이 잡혔다.

EPL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올라선 탓에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가 늘어났고, 부상까지 더해졌다. 복귀 이후에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윌프레드 보니(28·스토크 시티)를 넘어서지 못했고, 2골이란 초라한 성적으로 2년 차 시즌을 마무리했다.

미추는 한 번 넘어지자 일어서지 못했다. 나폴리 SC(이탈리아)로 임대를 떠나 반등의 기회를 마련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부상이 문제였다. 3경기 출전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스완지로 돌아왔지만, 그의 자리가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미추는 구단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고, 자신의 친형이 감독으로 자리하고 있던 스페인 4부 리그 UP 랑그레오로 이적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9골(16경기)을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듯 보였지만, 미추의 인생에 더 이상의 반전은 없었다. 2016~2017시즌 친정팀 오비에도로 돌아가 27경기에 나섰지만, 1골 1도움에 그쳤다.

과거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자 급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미추 ⓒAFPBBNews = News1
최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했던 자신이 하부 리그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자, 미추는 급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했다. 아직 31세로 더 뛸 수 있지만, 미추는 부진한 경기력을 넘어서지 못할 바엔 은퇴가 낫다고 판단했다.

짧은 축구 인생이었지만, 정상과 미생들의 삶을 모두 경험한 미추. 제2의 인생은 화려했던 시절 못지않은 추억으로 가득하길 기원한다.스포츠한국 이근승 객원기자 lkssky02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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