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에겐 애증의 존재인 웨인 루니가 10일(이하 한국시각) 공식적으로 에버튼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한때 잉글랜드 축구의 상징이자 팀의 상징이기도 했던 루니의 13년 맨유 생활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루니의 맨유에서의 13년은 찬란하고 또한 처참했다. 전설로 남은 데뷔전 해트트릭과 괴물같은 활동량과 득점력으로 정점을 찍은 2010년, 그리고 이후 포지션 변경까지 강요받을 정도로 기량이 퇴화하며 조롱까지 당했던 말년까지 루니의 13년 맨유에서의 생활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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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데뷔, 전설의 시작

이미 19살의 나이에 유로 2004에서 잉글랜드 주전급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루니는 에버튼을 떠나 맨유로 2004년 여름 이적하게 된다. 2560만파운드의 이적료(한화 약 380억원)를 19세 선수에게 쓴다는 것에 논란도 있었지만 루니는 데뷔전이었던 페네르바체(터키)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전반 17분, 28분, 후반 9분 골을 꽂아 넣으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연소 해트트릭(18세 335일)을 달성한다.

전설로 남은 데뷔전 해트트릭으로 단숨에 맨유의 스타로 떠오른 루니는 데뷔시즌 리그 11골(29경기)를 시작으로 2014~2015시즌까지 11시즌 연속 리그 10골 이상을 넣는 꾸준함도 함께 겸비한 공격수로 맨유의 아이콘이 된다.

2004년 루니의 입단식(상단)과 루니의 페네르바체 해트트릭 데뷔전. ⓒAFPBBNews = News1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박지성, 패트릭 에브라, 네마냐 비디치, 에드윈 판 데 사르 등이 영입되며 ‘전설의 멤버’로 강해진 맨유의 중심에서 루니는 2006~2007시즌 생애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최강의 멤버들과 함께 루니 역시 전성기를 내달리기 시작한다.

▶맨유의 전성기와 함께한 루니의 절정기

2006~2007시즌 우승을 시작으로 맨유는 다시 오지 않고 있는 200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이한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8시즌동안 5번의 리그 우승, 1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으로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는 2000년대 후반 맨유에서 루니는 누가 뭐래도 팀의 핵심이었다.

박지성-호날두-루니로 이어지는 엄청난 역습 축구의 선봉장이었고 전방에서부터 치열한 압박을 하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축구에서 전방 수비수로서 놀라운 활동량을 뽐냈다. 또한 루이 사하, 카를로스 테베즈,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등 최고의 공격수들이 그의 자리를 위협했음에도 결국 살아남고 그들과 보조를 맞춘 것은 루니였다.

왼쪽부터 호날두, 박지성, 루니. ⓒAFPBBNews = News1
특히 2009~2010시즌에는 리그 32경기에서 무려 26골, 2011~2012시즌에는 34경기 27골을 넣으며 ‘스코어러’로서의 능력은 정점을 찍는다. 2011년 2월에는 루니 개인에게 있어서도 역대 최고의 골인 맨체스터 시티전 결승 오버헤드킥 골을 넣으며 절정의 감각을 뽐내기도 했다.

단순히 뛰어난 득점력을 넘어 무시무시한 활동량, 호날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던 스피드,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서 나오는 몸싸움 등은 맨유의 10번을 꿰차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상,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 등은 모두 루니의 몫이었다.

루니 역사상 최고의 골로 남은 2011년 맨시티전 오버헤드킥. ⓒAFPBBNews = News1
▶그럼에도 기대만큼 못 큰 루니, 급격한 추락을 맞이하다

이처럼 뛰어난 활약을 했으나 사실 루니는 더 잘했어야 했다. 워낙 10대시절에 잉글랜드 대표팀과 에버튼, 맨유 초창기에 보여준 임팩트는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기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니는 동갑내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비해 빨리 만족했고 호날두만큼 성실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선수로서 여전히 정점을 찍을 수 있는 30대 초반의 나이부터 급격한 노쇠화가 시작됐다. ‘악동’으로 불렸던 20대 때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래도 컨트롤을 해줬지만 퍼거슨의 은퇴 이후에는 그를 컨트롤할 수 있는 이가 없었고 도박이나 강한 말로 각종 구설수에 오르며 추락은 빨랐다. 누구보다 빨리 정상에 올라갔고 매우 높이 올라갔기에 추락의 속도도 빨랐던 것.

바비 찰튼(왼쪽) 경의 249골을 넘어 맨유 최다득점자에 오른 루니. ⓒAFPBBNews = News1
고작 만 31세시즌이었던 2015~2016시즌에 리그 28경기 8골에 그치더니 2016~2017시즌에는 25경기 5골에 그쳤다. 루니의 최고 장점이었던 공격수로서 번뜩이는 움직임과 함께 놀라운 활동량이 훈련 부족, 노쇠화로 인해 사라지자 루니는 맨유에서 뛰는 것 자체가 버거워보였다. 공격수 포지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로 갈수록 포지션은 내려갔고 루니가 벤치에 앉는 일은 잦아졌다.

오죽하면 영국의 한 매체가 ‘루니의 최적의 포지션은 어디인가’라는 설문조사에서 ‘벤치에 있는게 낫다’는 의견이 압도적일 정도로 말년의 루니는 계륵이면서 조롱의 대상이 됐다.

▶유로파리그 후반 추가시간 투입, 전설 루니를 향한 배려

맨유에서 마지막 시즌이 된 2016~2017시즌 루니는 팀의 주장이었지만 경기를 나오지 못했다. 특히 시즌 막판으로 치닫으면서 중요한 경기들이 많을 때는 루니가 제외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도 올해 1월 맨유에서 250골째를 넣으며 바비 찰튼 경이 가지고 있던 맨유 역대 최다득점자 위치에 오르기도 한 루니는 그사이 중국 이적설, 해외리그 이적설 등이 계속 제기됐다.

루니가 더 이상 맨유 유니폼을 입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결국 루니에게 처음이자 맨유로서도 영광됐던 유로파리그 우승의 순간, 후반 추가시간 마지막 교체투입을 통해 루니는 13년 맨유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다. 무링요 감독은 떠날 루니를 위해 나름 우승이 확정된 순간에 박수를 받게 해주는 배려를 한 것이다.

루니의 맨유에서의 마지막 우승트로피이자 마지막 모습. ⓒAFPBBNews = News1
맨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든 루니의 표정은 기쁘면서도 슬퍼보였다. 그 역시 이것이 맨유에서의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알았으리라.

결국 루니는 자신이 처음 프로생활을 시작한 고향 에버튼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13년의 맨유 생활을 정리했다.

루니는 그 누구보다 화려한 데뷔와 선수생활 초창기를 보냈다. 당대 최고의 클럽이었던 맨유에서 클럽의 아이콘이 될만한 실력을 가졌으나 ‘악동’으로 굳어진 이미지와 동갑내기 라이벌이었던 호날두에 비해 더 성장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맨유 역사상 최다 득점자에 오르고,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 등을 받을 정도로 최고를 찍었고 분명 역사에 남을만한 선수엿다. 하지만 워낙 뛰어났던 프로 초창기를 떠올리면 다소 아쉬운 결과를 들고 맨유를 떠나 영광스럽지만 또 아쉽기도 한 맨유에서의 13년이었다.

-스한 이슈人 : 바로 이 사람이 이슈메이커. 잘하거나 혹은 못하거나, 때로는 너무 튀어서 주인공이 될 만한 인물을 집중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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