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병지입니다. 참 아쉽고 착잡합니다. 어린 선수들의 선전을 보는 재미가 열흘간 저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열광케 했는데 포르투갈전을 끝으로 마감됐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포르투갈전에 대한 저의 감상평, 그리고 U-20대표팀 어린 후배들, 또한 U-20대표팀에는 뽑히지 못했지만 미래에 한국 축구를 이끌어나갈 유망주 선수들에게 해줄 저의 격려와 당부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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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운이 없었고, 포르투갈은 결정력이 뛰어났다

신태용 감독님의 말대로 ‘참 운이 없었던 것’은 맞습니다. 어떻게 그 어려운 컷백 크로스 후 슈팅을 두 개 다 성공시킬 수가 있나요. 포르투갈은 전반전 유효슈팅이 딱 2개였고 그 2개가 모두 골로 연결됐습니다. 공이 굴절돼도 마침 포르투갈 선수의 발에 정확히 향했고 슈팅도 더 이상의 방법이 없을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한국은 운이 없었고 포르투갈은 참 결정력이 뛰어났던 경기죠. 축구는 늘 이기고 지는 경기입니다. 누군가는 챔피언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팀이 절대 다수죠. 그것이 축구입니다. 패배는 분명 아프지만 늘 힘들게 받아들입니다.

신태용 감독이 너무 많은 전술을 준비한 것이 독이 됐다는 비판 여론에 대해선 이해합니다. 하지만 큰 대회를 준비할 때 감독이 플랜 A,B,C,D,E 까지 4~5개 정도 준비하지 않는 지도자는 없을 겁니다. 잘될 때는 ‘팔색조’였다 칭찬일색이고, 안됐으니까 안된 100가지 이유를 들어 질타한다면, 축구가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곳에서 질책만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팀이 곧 우리 팀이라면 앞으로를 위해 될 수 있는 100가지 이유를 찾아 격려해주는 것이 지금 필요합니다.

▶후배들의 눈물을 보며 떠오른 1998 프랑스 월드컵의 허탈함

경기 후 대부분의 선수들이 눈물을 참지 못하더군요. 20살 언저리가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 아닙니까. 동네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져도 애들이 우는데 이런 큰 대회에 국민들의 염원을 느꼈을 선수들은 오죽했을까요. 감정이 복받쳐 올랐겠죠. 우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코끝이 찡하면서 후배들이 순수해보이고 그간 땀을 흘린 노력을 알기에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후배들의 눈물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나간 많은 국가대표 메이저대회 중 가장 아쉬웠던 대회가 뭐였는지 떠올려봤습니다. 역시 화제가 많이 되고 한국축구사에도 아픔으로 남은 1998 프랑스 월드컵이 떠오르더군요. 당시 선제골을 넣고도 진 멕시코전, 감독 경질의 아픔이 있었던 네덜란드전을 거치며 전 주목도 많이 받았지만 그보다 어떻게든 승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조별리그 마지막 벨기에전은 어떻게 해서든 승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1-1 무승부에 그쳤고 그렇게 허탈하고 아쉬울 수 없었습니다. 선수생활을 통틀어 가장 아쉬운 대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16강은커녕 1승이라도 하고 싶어 그리 노력했는데 닿지 못하니 아쉬웠고 그 마음이 이번 대회에서 아이들이 흘린 눈물과 세월을 뛰어넘어 맞닿아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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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살, 공장-군대로 막막했던 아픈 시절

이번 대회를 보면서 ‘나는 저 나이에 뭘했지’하는 생각을 저뿐만 아니라 나이 있으신 모든 분들은 떠올려 보셨을 겁니다. 한국나이로 20, 21살인데 대학교 1,2학년의 나이인거죠.

저는 19살~20살 때 공장을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축구선수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프로는커녕 그 어떤 대학도 절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냉정하게 ‘실력이 부족해서’였죠.

그래도 선수는 하고 싶어서 고민하다 창원 금성산전이라는 엘리베이터 회사의 검사실 공장직원으로 입사했습니다. 낮에는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부품들이 규격대로 잘 들어왔는지 검사하는 일을 하고 밤에는 훈련하며 직장팀에서 축구를 한거죠. 공장복을 입고 현장에 뛰어다니며 축구할 저녁만 기다리던 것이 저의 20살이었습니다.

공장을 다니면서 주위 분들에게 ‘축구선수로 성장 하고싶다’고 얘기하자 ‘꿈이라도 꿔라’라고 하시더군요. 그 누구도 제가 축구선수가 되기에는 부족하고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솔직히 제가 돌이켜봐도 20살에 직장인 축구를 하는거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죠. 하지만 혼자 노력했고 간신히 일반인 신분으로 국군체육부대(상무)에 갔습니다. 그때가 한국나이로 21살때네요.

상무에서도 제가 프로에 가겠다고 하자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 실업팀으로 가라’고 주변에서 조언했습니다. 저의 20살과 21살은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고 냉정히 정말 안될 것 같은 일만 하던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은퇴한 지금 어떻습니까. 제가 직접 서술하긴 민망하지만 저는 K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를 출전한 단 한명의 선수로 남아있습니다(706경기).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였고 2002 한일월드컵 4강의 일원이었고 MVP, 연봉킹도 해봤습니다. 몇 천명이 뛰었고, 뛰고 있는 K리그에서 가장 오래, 많이 뛴 선수가 될지 저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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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검승부는 지금부터다

U-20월드컵이 종료된 지금부터가 진검승부의 시작입니다. 축구는 성인무대에서 성공해야 진짜 성공입니다. A대표팀이나 프로는 18세부터 약 37세까지 20년을 아우르는 나이대 선수 중 최고의 선수만 살아남습니다. 당장 골키퍼 송범근은 김승규, 권순태, 김진현, 정성룡, 신화용 같은 골키퍼와 프로에서 경쟁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신만의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 남은 가지지 못한 경쟁력이 필요합니다. 자신만의 스킬, 특이점이 있어야하고 포지션마다 필요한 능력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A대표팀을 보면 흔히 말하는 ‘엘리트코스(각급 청소년 대표를 거친 선수)’를 밟아온 선수는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잠시 청소년 대표에 들렸던 선수 혹은 청소년 대표 경력도 없는 선수가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성인이 돼서 기량이 폭발하는 선수도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 현재 대표팀에 뽑히지 못해 절치부심하며 노력하는 선수들도 있을 겁니다. 조기에 몸이 성장한 선수는 지금 이렇게 대표팀에서 팬들의 사랑을 벌써 받지만 더디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늦다고 잘못된건 아닙니다. 결국 마침표가 어디 찍히느냐가 문제죠.

떠올려보면 저의 20살때도 청소년 대회가 열렸습니다. 서정원 선배(현 수원 삼성 감독) 등이 활약했었는데 저는 그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응원만 했었습니다. 제가 저 무대에 뛰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은 근사치에도 미치지 못했기에 아예 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그 나이 때 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U-20대표팀 선수들이 부럽습니다.

대학을 가지 못했던 19살, 공장을 다녔던 20살, 군입대를 했던 21살, 저를 보면서 모두가 ‘아직도 축구선수를 꿈꾸냐’고 했습니다. 모두 안 된다고만 했습니다. 절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 저를 믿었습니다. 전 긍정의 화신이었고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현재 U-20대표팀의 선수들에게는 자만하지 말고 더 발전하기를, 그리고 지금은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지만 훗날 더 성장할 미래의 선수들에게는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최소한 저의 20살보다 훨씬 잘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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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지 칼럼 : K리그 최다출전자(706경기)이자 한국 축구의 전설인 김병지 前선수가 스포츠한국을 통해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병지 칼럼니스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이나 스포츠한국 SNS를 통해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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