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36·은퇴)과 꾸준히 비교되던 선수가 있었다. 박지성(PSV 아인트호벤·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벌’ 팀(페예노르트·리버풀)을 거친 네덜란드의 ‘전설’ 디르크 카윗(36·페예노르트)이 그 주인공이다.

최전방 공격수는 물론 측면과 수비수까지 맡을 수 있는 다재다능함과 90분 내내 쉼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활동량이 참 많이 닮았다. 네덜란드산 두 개의 심장이랄까.

올시즌 페예노르트의 에레디비지 우승을 이끈 디르크 카윗. ⓒAFPBBNews = News1
큰 차이가 있다면 박지성은 은퇴를 선언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카윗은 여전히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 박지성은 프로 생활을 시작한 교토 상가(일본) 시절부터 말년을 보낸 아인트호벤 때까지,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박지성과는 달리 카윗은 우승 트로피와 큰 인연이 없었다. 프로 생활을 시작한 FC 위트레흐트(네덜란드) 시절부터 전성기를 보낸 리버풀까지, 카윗은 컵대회 우승만 두 차례 기록했다. 특히 2006~2007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리버풀을 떠나 둥지를 틀었던 터키의 페네르바체에서 2013~2014시즌 생애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의 명성을 생각하면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은퇴를 코앞에 둔 시점의 카윗이 리그 우승 트로피를 하나 더 추가했다. 지난 2015년 여름 친정팀 페예노르트로 돌아온 카윗은 올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무려 18년 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카윗은 네덜란드 축구의 희망이었다. 그는 패트릭 클루이베르트와 뤼트 판 니스텔로이로 이어지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2002~2003시즌 위트레흐트 소속으로 20골을 몰아치며 재능을 드러냈고, 2003년 여름 네덜란드의 명문 페예노르트로 이적하는 데 성공했다.

카윗은 2003~2004시즌 34경기에 나서 20골을 몰아치며 페예노르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고, 2004~2005시즌에는 34경기 2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지금은 명성이 많이 줄었지만, 당시만 해도 네덜란드 리그는 호나우도와 호마리우, 판 니스텔로이 등 대형 공격수의 산실로 이름이 알려졌었기에 카윗 역시 빅클럽의 큰 관심을 받았다.

드디어 2006년 여름, 카윗은 첼시와 맨유, 아스널과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빅4’를 형성했던 리버풀로 이적하게 된다. 비록 네덜란드 리그에서 보여준 폭발력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우측면 공격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졌다. 그는 2006년부터 6시즌 동안 286경기에 출전해 71골을 뽑아냈다. 특히 2010·2011시즌에는 리그 33경기 출전 13골 7도움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이후 터키 수페르리그를 거친 뒤 2015·2016시즌 친정팀 페예노르트로 돌아와 32경기 출전 19골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올 시즌에도 36경기(리그+유로파리그) 출전 12골 5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에 앞장섰다.

지난 2010년 리버풀에서 뛰던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오른쪽)과 맞붙었던 디르크 카윗. ⓒAFPBBNews = News1
카윗은 박지성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아르연 로번과 로빈 판 페르시,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16강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는 판 니스텔로이를 밀어내고 선발 출전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로번, 판 페르시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네덜란드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공격수가 아닌 오른쪽 윙백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개최국 브라질을 꺾고 3위를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중원의 핵심이었던 케빈 스트루트만과 수비진의 줄부상으로 인해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스리백 전환과 카윗의 멀티 능력이 빛을 발하며 호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카윗은 2004년에 국가대표팀에 데뷔해 10년 동안 104회의 A매치를 치렀고, 24골을 기록했다. 3번의 월드컵과 2번의 유럽선수권대회를 치르며 네덜란드의 살아있는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카윗은 은퇴를 고민해야 할 나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몫을 120% 해낸다. 성실함을 앞세워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니 판 브롱크호르스트 감독이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포지션은 공격수지만, 수비와 이타적인 플레이에 강점이 있다 보니 동료들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카윗은 이미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로 불리지만, 더 많은 발자취를 남길 수 있길 희망한다. 스포츠한국 이근승 객원기자 lkssky02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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