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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다.

지난해 1월이었다.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아시안컵 예선 조 추첨에서 윤덕여호는 북한, 우즈베키스탄, 홍콩, 인도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최악의 조 편성’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아시아 최강팀’으로 꼽히는 북한과 한 조에 묶인 까닭이다. AFC가 피파랭킹이 아닌 2014년 아시안컵 성적으로 시드를 나눈 것이 화근이 됐다. 북한은 지난 2011년 여자월드컵 도핑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2015년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다. 이번 예선 시드 배정 기준이 된 2014년 아시안컵 역시 불참했다.

결국 북한은 최하위 그룹에 속했다. 반면 한국은 2014년 아시안컵 4위의 성적으로 톱시드를 받았다. 각 시드별 한 팀씩 한 조에 묶이는 조 추첨을 통해, 한국과 북한이 결국 같은 조에 편성됐다.

본선 진출권은 5개 팀 중 단 한 팀에게만 주어졌다. 더구나 아시안컵 본선은 2019년 프랑스 여자월드컵 예선까지 겸하고 있었다. 예선 1위를 하지 못하면 월드컵에 나설 기회도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윤덕여 감독이 조 추첨 이후 “원하지 않았던 결과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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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야 할 산들이 많았다. 우선 B조 전력상 한국과 북한이 1위 다툼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팀들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한다는 전제 하에, 맞대결에서 어떤 결과를 내느냐가 중요했다. 1승2무14패라는 역대전적의 열세를 극복하는 것이 윤덕여호에게 주어진 첫 과제였다.

전장이 북한 평양이라는 점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번 B조 예선은 모든 경기가 북한에서 개최됐다. 최소한 지면 안 되는 북한전을 원정에서 치러야 하는 셈이 됐다. 결국 북한에 지지 않는 경기를 치르고, 득실차를 통해 본선행을 노리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가 됐다.

그런데 경기 일정마저도 까다로웠다. 5개 팀이 예선에 참가한 만큼 각 라운드마다 휴식팀이 나왔다. 한국은 첫 라운드에서 휴식을 취했고, 북한은 최종전에서 쉬었다. 결국 한국은 늘 북한보다 예선 진행 속도가 늦었다. 북한이 다른 팀에 대승을 거두면, 그보다 더 넣어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 늘 경기를 치러야 했다.

첫 단추가 중요했다. 상대는 인도였다. 북한이 8-0으로 대승을 거둔 팀이었다. 윤덕여호는 전반 12분 강유미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후반 추가시간까지 넣고, 또 넣었다. 10-0 대승. 출발이 좋았다.

최대 고비였던 2차전 북한전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장슬기의 동점골에 힘입어 무승부를 거뒀다. 1위를 향한 현실적인 목표, 그 전제조건을 잘 충족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다득점’ 싸움이 됐다. 윤덕여호가 바라던 방향으로 흘렀다.

3번째 상대는 홍콩이었다. 앞서 북한이 5골을 넣었던 팀이었다. 윤덕여호는 북한보다 1골 더 넣었다. 지난 인도전 2골차에 이어 이제는 북한보다 3골을 더 넣은 셈이 됐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후 북한이 3승1무(승점10) 18득점-1실점으로 예선을 먼저 마쳤다.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전을 앞둔 한국의 성적은 2승1무(승점10) 17득점-1실점. 1위 등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은 2-1 이상의 승리였다. 부담감이 극해 달했을 마지막 경기, 윤덕여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을 4-0으로 꺾고 조 1위와 함께 본선행을 확정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들이었다.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컸던 이유,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던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예선이었다. 그러나 윤덕여호는 북한이라는 난적, 평양이라는 무대, 까다로웠던 경기 일정 등을 모두 극복해냈다. ‘평양의 기적’을 쓴 윤덕여호를 향해 값진 박수가 아깝지 않은 이유다.

한편 윤덕여호는 내년 4월 요르단에서 열리는 본선을 통해 월드컵 진출을 다툰다.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8개팀 가운데 5위 안에 들면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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