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었던 ‘김병지의 인생 베스트 11 "안정환은 FW아닌 MF"’에서는 제가 프로 24년을 뛰면서 경험했던 최고의 선수들을 베스트 11 형식으로 꾸리며 옛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24년을 뛰면서 경험했던 감독님들 총 15분(감독대행 제외)에 대한 회고를 해볼까 합니다. 감독님 이름 뒤에 연도는 부임기간이 아닌 저와 함께한 시간들임을 미리 알립니다.

왼쪽부터 김병지와 FC서울 시절 함께했던 세뇰 귀네슈, 울산 현대 함께했던 차범근, 김병지, 대표팀 히딩크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데뷔 : 차범근 감독(울산, 1992~1994)

저의 뒤늦은 프로생활 첫 감독님은 바로 한국 축구의 전설이신 차범근 감독님이었습니다. 차범근 감독님 역시 당시가 생애 첫 감독직을 맡을 때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만해도 선수 은퇴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명성이 엄청났고 저 역시 너무 영광이고 긴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차범근 감독님은 선수 은퇴 직전이었기 때문에 선수들보다 더 경기력이 좋았습니다. 오죽하면 팀훈련때도 함께 참가해서 뛰시며 시범을 보이시는데 모두들 감탄섞인 눈으로 지켜봤죠. 공격수 출신이기에 골키퍼들을 상대로 따로 훈련도 진행하셨는데 골키퍼의 역동작을 이용해 허점을 공략하는 슈팅은 정말 날카로웠습니다.

차 감독님은 역시 외국에서 오래생활하셨기 때문에 생각의 폭이 남달랐습니다. 차 감독님께서 당시 만해도 거부감이 많았던 저의 ‘꽁지머리’를 허용해주셨고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했습니다. 또한 선진축구를 한국축구에 처음 심어주셨죠. 숙소문화, 웨이트 시설 같은 인프라는 물론, 경기전 웜업은 어떻게 해야하고, 훈련 스케줄은 어떻게하고, 경기 후 회복훈련을 어떻게 하는지 등 체계적 시스템을 한국 프로축구에 처음 도입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생애 첫 프로 감독님이 차범근이었다는 것은 향후 축구인생에 큰 축복이었죠.

▶울산 : 고재욱 감독(1995~2000), 김정남(2000)

고재욱 감독님하면 역시 ‘단합’이 떠오릅니다. 정말 선수단 화합과 단합에 대해 철저히 강조하시면서 팀을 부드럽게 운영하셨습니다. 이런 단합된 분위기 속에서 고 감독님은 정말 허용의 폭이 크셨던 분입니다. 제 프로 감독생활 내내 가장 허용의 폭이 크셨던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가 저의 전성기로 볼 수 있는데,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일명 ‘기행’으로 불리는 프리킥, 페널티킥에서 키커, 코너킥 상황에서 공격가담과 같은 것도 많이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고 감독님은 허용해주신 분입니다. 그덕분에 전설로 남은 바로 그 ‘K리그 결승전 김병지의 헤딩골’도 가능했죠. 당시 저는 고 감독님께 ‘올라가도 되냐’는 사인을 냈고 고 감독님은 OK를 하셨죠. 아무리 시간이 급해도 골키퍼의 공격가담을 허용해주시는 감독님은 지금도 없지 않나요? 그만큼 선수의 개성을 인정하면서도 단합을 강조하셨던 고재욱 감독님입니다.

이후 김정남 감독님과는 약 6개월가량 함께 했지만(2000시즌 중반) 워낙 시간이 짧았습니다. 이후에는 제가 포항으로 이적했죠.

▶포항 : 최순호(2001~2004), 파리아스(2005)

포항으로 이적했을 당시 최순호 감독님과 연을 맺었습니다. 현재 다시 포항으로 돌아오셨는데 당시 기억에 남는 것은 선수들의 식단부터 컨디션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신경을 많이 쓰셨습니다. 상당히 생리학적으로 접근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훈련에서 부터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의 모든 것을 믿고 일임하였고, 지금도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최고의 키퍼 신화용.정성룡을 발굴하였습니다.

파리아스 감독은 프로팀에서는 처음 맞이했던 외국인 감독이었습니다. 부임하고 6개월정도 있다고 저를 따로 부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사실 처음 부임하고 너에 대해 훈수를 두는 사람이 많았다. ‘다루기 힘들고 김병지 때문에 머리가 아플거다’라고. 하지만 6개월간 생활해보니 왜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너를 100% 믿는다. 내가 본 김병지를 믿는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파리아스 감독님부터 무교체 연속출전의 도전을 하게 되었고, 그야말로 무한신뢰를 보내주셨던 감독님입니다. 이후 포항이 ACL에 우승하는 등 다시금 명문팀 반열에 오를 때 파리아스 감독님과 함께이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왼쪽부터 포항에서 함께했던 파리아스 감독, 경남에서 함께했던 조광래 감독, 전남에서 함께한 하석주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서울 : 이장수(2006), 귀네슈(2007~2008)

FC서울로 향하게 됐던 것은 순전히 이장수 감독님께서 불러서였습니다.서울이라는 큰 클럽에서 뛸 기회이기도 했고요. 이장수 감독님은 용맹하면서도 지략가적인 면모를 함께 가졌습니다. 저로서는 이장수 감독님과 딱 1년밖에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이장수 감독님 이후 터키의 세뇰 귀네슈 감독이 왔습니다. 귀네슈는 몇 없는 골키퍼 출신의 감독으로 저에게 향후 진로에 대한 꿈을 심어준 분입니다. 골키퍼 출신도 저렇게 성공한 감독이 될 수 있구나를 생각했고 30대를 넘어가며 귀네슈 감독과 같은 길을 밟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귀네슈는 아마 가장 많이 훈련을 시킨 감독으로 기억합니다. 외국인 감독하면 자율적이고 훈련량이 적을거라는 인식이 있지만 귀네슈 감독은 정말로 극강의 훈련량을 자랑했습니다. 전지훈련동안 매일같이 하루에 2,3번 운동을 시키셨습니다.

일반적으로 1.2번 훈련을 하는데 말이죠. 연습경기를 마치고 난 후에도 2번 운동을 시킬 정도였던 분이니까요. 그래도 그 덕분에 기성용, 이청용과 같은 현재 한국축구의 대들보들이 성장했고 과감하게 어린 선수를 기용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경남, 전남 : 조광래(2009~2010), 최진한(2010~2012), 하석주(2013~2014), 노상래(2015)

조광래 감독님은 저의 선수생활 말년에 대한 동기부여를 정확히 해주신 분입니다. 500경기에 대한 기회를 주셨고 고향팀에서 다시 뛸 기회도 주셨죠. 조광래 감독님은 딱 선수들의 나이와 경력에 맞게 맞춤식으로 대했습니다. 저같은 노장에게는 덕장, 외국인 선수에겐 지장, 어린 선수에게는 맹장이었습니다.

모든 감독님이 그렇지만 특히 열정만큼은 최고였던 조광래 감독님입니다. 에피소드를 얘기하자면 선수 엔트리 18명을 짠 후 경기전날 18명의 선수에게 각각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이 담긴 A4용지를 모두 나눠줬습니다. 18명에게 매경기 각각 다른 A4용지를 나눠준다는 것은 열정이 없이 힘들죠. 어린선수들이 많다보니 그런식으로 경기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셨죠.

그런 모습들과 함께 전체적으로 제 축구인생의 멘토로 생각하는 분이 조광래 감독님입니다. 현재는 대구FC의 사장으로서 언젠가 감독을 넘어 축구단운영까지 생각하고 있는 저에게 가야할 길을 먼저 보여주신 분입니다.

최진한 감독님의 경우 조광래 감독님이 대표팀 감독 부임 때문에 시즌 중 나가셨음에도 혼란을 잘 수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훈련장과 경기장에서는카리스마 있게 생활적인 면에서는 온화한 성품을 지도력의 양면성을 많이 보고 배웠죠.

이후 전남으로 이적을 하는데 많은 분들이 이적이유를 궁금해했지만 결국 하석주 감독님만 보고 간거였습니다. 선수생활도 함께 했고 ‘형님’으로 모시는 분입니다. 제가 뽑은 제 인생 베스트11에 넣을 정도로 신뢰도 있고요.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마음 편하게 하석주 감독님 밑에서 운동을 했습니다.아마 미리 은퇴했었다면 수석코치로 함께 했을겁니다. 선수시절부터 농담반 진담반 그랬으니까요.

노상래 감독이 제 프로인생 마지막 감독이었는데 저와 동갑입니다. 딱 1년 함께했지만 친구로서 현재도 전남을 잘 이끌고 있기에 묵묵히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대표팀 : 박종환(1995~1996), 차범근(1997~1998), 허정무(1998~2000), 히딩크(2001~2002), 허정무(2008)

아무래도 대표팀에서 가장 오래함께 했던 허정무, 거스 히딩크 감독님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정무 감독님의 경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2008년 저를 만 38세의 나이에 다시 대표팀에 불렀던 부분입니다. 허 감독님은 나이로 편견을 가지시지 않았습니다. 선수능력을 토대로 재평가를 해주셨고.대신 경기력으로 냉정히 대표팀으로 불렀습니다. 아마 편견 없이 경기력만 보고 판단하시는 공정한 경쟁심리를 유발하셨기 때문에 한국 축구사 최초의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해내지 않으셨나 합니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 솔직히 애증의 관계죠. 국민의 염원을 담아 한국축구사 최고의 업적인 월드컵 4강을 이뤄내셨고 그 속에서 저도 많은걸 배웠죠. 하지만 분명 개인적으로는 존경스럽지만 조금은 미운 감독님이기도 했습니다. 축제 분위기였던 3,4위전에서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지만 그때마저 끝내 기회를 주시지 않은 부분은 조금은 야속했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고 히딩크 감독님 밑에서 보고 배운 것들로 향후 오랜 선수생활을 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프로팀과 대표팀을 거쳐 총 15분의 감독과 함께하면서 저는 정말 많은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축구계 편견 중에 ‘골키퍼 출신은 감독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있게 반박합니다. 필드플레이어 뒤에서 누구보다 경기장 상황을 잘 지켜보고 판단해왔고 15분의 감독님들의 장점을 모두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차범근 감독님의 체계적 축구, 고재욱 감독님의 열린 모습, 파리아스 감독이 선수에게 주는 믿음, 귀네슈 감독의 골키퍼출신의 성공, 조광래 감독님의 열정, 허정무 감독님의 선수관리,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 등 수많은 장점을 몸소 체험했기에 향후 저 역시 ‘골키퍼 출신’으로서 반드시 K리그 감독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한국 축구사에 남을 대단한 지도자와 함께한 행운 덕분에 제 축구인생도 성공적이었고 은퇴 이후 더 큰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요.

프로축구연맹 제공
김병지 칼럼 : K리그 최다출전자(706경기)이자 한국 축구의 전설인 김병지 前선수는 매주말 스포츠한국을 통해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병지 칼럼니스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이나 스포츠한국 SNS를 통해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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