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 칼럼 1편 : [김병지 칼럼] '한창때일' 주희정에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김병지 칼럼] '한창때일' 주희정에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이번 칼럼에서는 제가 24시즌 동안(1992~2015) K리그에서 뛰면서 목격한 최고의 선수들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원체 오래 뛰다보니 정말 많은 선수들과 함께 차고 달리고 부딪혔습니다. 골키퍼만 해도 1962년생인 최인영 선배(1994 미국월드컵 주전)부터 1994년생인 김동준(2016 리우올림픽 주전)이 프로에 데뷔하던 2016시즌에도 전 현역 의지가 있어 팀을 알아보고 있었으니까요.

오랜 세월을 뛰면서 목도한 최고의 국내 선수부터 얘기해보겠습니다.

왼쪽부터 김주성, 김병지, 라데, 최영일. 연합뉴스 제공
▶김병지 선정 K리그 최고의 국내선수 : 김주성

24시즌을 뛰며 많은 국내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최고는 김주성 선배님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해외 진출이 거의 없는 시기였기에 기량에서 큰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실력이 압도적이었고 오죽하면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 3연패(1989~1991, 현재까지도 3연패는 유일)를 했겠습니까.

저는 김주성 선배의 최전성기로 불리는 80년대 후반에는 팬으로서 90년초에는 상대 팀선수로 중반에는 대표팀에서 한 맴버로서 함께하며 지켜봤던 김주성 선배님을 K리그 최고 선수로 뽑고 싶습니다. ‘난공불락’이랄까요. 치고 달리며 해결하는 모든 것이 가능한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아이콘이었죠. 긴 머리를 휘날리며 탄탄한 몸을 갖춰 ‘야생마’라는 별명으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최고의 인기였습니다. 그런 튀는 외향에 실력까지 완벽했습니다.

측면을 주포지션으로 해서 도움과 골을 자유자재로 하던 김주성 선배는 현재 선수로 비유하자면 국내 선수는 손흥민(토트넘), 외국인 선수는 아르연 로벤(바이에른 뮌헨)을 합쳐놓은 느낌이랄까요.

김주성 선배를 막기 위해서는 무조건 전담마크맨을 둬야했습니다. 한명이 아니라 두명을 뒀죠. 전담마크맨은 영리한 선수 혹은 아주 빠른 선수로 뒀죠. 당시 최고의 왼쪽 풀백이던 정종수 선배가 전담마크해도 버거웠죠. 그리고 골키퍼 입장에서도 김주성 선배의 슛은 반박자 빠르게 들어오고 강력해서 골을 허용한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슛을 때릴 것처럼 하다 동료에게 내주는 어시스트 능력도 탁월해 예측 불가능한 선수였습니다.

게다가 김주성 선배는 축구센스가 워낙 뛰어났기에 공격수로 전성기를 보냈지만 은퇴할 즈음 마지막 몇 년은 스위퍼 포지션으로 옮겨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셨죠. 모든 포지션을 뛸 정도로 축구지능도 뛰어났습니다.

제가 본 최고의 선수로 김주성 선배로 뽑았지만 더 언급하자면 성남일화 시절 신태용 고정운 이상윤 트리오 선배, 그리고 황선홍, 홍명보, 하석주 이동국도 충분히 최고였다고 말하기 부족함이 없겠네요.

-김주성 : 1987~1999 부산
255경기 35골 17도움
MVP 2회, 신인왕 1회, 베스트11 4회,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3회

긴머리가 인상적이었던 '야생마' 김주성. 연합뉴스 제공
▶김병지 선정 K리그 최고의 외국인선수 : 라데

K리그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중 최고는 라데를 꼽고 싶네요. 보스니아 출신의 라데 보그다노비치라는 풀네임을 가졌던 라데는 그러고 보면 딱 5년만 뛰었는데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183cm의 키였지만 타켓 스트라이커 역할은 물론 탄탄한 피지컬을 이용해 드리블에 마무리 능력까지 최고였습니다. 결정력이 워낙 뛰어났고 라데로 인해 상대팀 선수는 더 많이 뛰어야했고 움직임을 많이 가져가야 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를 전담마크로 붙여도 라데는 늘 전담마크맨을 따돌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팀입장에서도 라데는 ‘뭔가를 해낼 것 같은 선수’로 느껴졌죠. 그게 바로 에이스가 아닐까요.

골키퍼로서도 ‘직접적 위험’을 많이 느꼈습니다. 예측 불가한 움직임과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슈팅은 라이벌팀간의 대결(라데의 포항vs김병지의 울산)에서 늘 쉽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중반은 라데가 K리그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죠.

2000년대부터는 역시 모따가 최고였습니다. 브라질 국적의 풀네임 주앙 소아리스 다 모타 네투였던 모따는 전남-성남-포항을 거치며 2000년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습니다.

모따는 세밀한 팀 플레이에서 워낙 뛰어났습니다. 프리킥과 크로스와 같은 킥은 물론 볼을 중심으로 한 움직임이 매우 좋았습니다. 볼을 연결 시켜주고 공의 움직임을 살렸다랄까요. 상대팀으로서 ‘공이 저기로 가면 위협적이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모따는 그곳으로 정확히 볼을 투입시키는 선수였습니다. 경기장 전체를 볼 줄 아는 선수였죠.

-라데 : 1992~1996 포항
147경기 55골 35도움
K리그 우승 1회, 도움왕 1회, 베스트11 2회

-모따 : 2004 전남, 2005~2009 성남, 2010~2011 포항
178경기 71골 34도움
K리그 우승 1회, 득점왕 1회, 베스트11 1회

라데(왼쪽)와 모따. 포항, 스포츠코리아 제공
▶김병지 선정 가장 저평가 받은 선수 : 최영일

꼭 언급하고 싶은 선수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수비수 최영일 선배입니다. 90년대 축구는 전담마크맨을 두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 최영일 선배는 상대 핵심 선수를 막는 전담마크맨의 표본과도 같았습니다. ‘상대 핵심=최영일 마크’라는 공식이 당연했고 오죽하면 별명이 ‘수갑’이었겠습니까. 그냥 상대 핵심은 수갑차고 경기한다고 선수들끼리 얘기했을 정도니까요. 일본의 미우라 카즈요시의 라이벌로 유명하기도 했죠.

최영일 선배는 그야말로 요즘말로 ‘가성비 최고’ 믿고 쓰는 넘버1 중앙 수비선수 였습니다. 조용했지만 강했죠. 수비수가 원래 주목받지 못하는 포지션이긴 하지만 최 선배는 공격욕심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더 주목받지 못했지 않나 싶습니다. 월드컵도 2번이나 나가시는 등 업적도 대단했지만 현세대의 축구팬들의 머릿속에는 크게 자리잡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저평가된 선수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현재 울산 현대 감독이 된 김도훈입니다. 물론 크게 인정받긴 하지만 제 기억엔 황선홍-최용수 등과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능가하기도 했던 공격수인데 생각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도자로서 성공한 모습은 그런 저평가를 보상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최영일 : 1989~1996 울산, 1997~1998 부산, 2000 안양
266경기 3골 6도움
K리그 우승 2회, 베스트11 2회

-김도훈 : 1995~1997 전북, 2000~2002 전북, 2003~2005 성남
257경기 114골 41도움
K리그 우승 1회, 득점왕 2회, 베스트 11 2회

최영일(상단)과 김도훈.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코리아 제공
김병지 칼럼 : K리그 최다출전자(706경기)이자 한국 축구의 전설인 김병지 前선수는 매주말 스포츠한국을 통해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병지 칼럼니스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이나 스포츠한국 SNS를 통해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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