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무덤을 파고 있다. 아무도 납득하지 못하는데 자신들만 납득된다고 한다. 가장 크게 사과해야할 전북 현대는 달랑 홈페이지 사과문 한 장이 전부다. 한국 축구의 위기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그들이 스스로 만들고 있다. 이제 정말 신뢰는 바닥을 친다.

프로축구연맹은 30일 오후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전북에 대한 상벌위원회 징계내용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약 8시간에 걸친 격론 끝에 나온 징계내용은 고작 전북에게 승점 9점 삭감과 1억원의 벌과금 부과였다.

말도 많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징계 내용이었다. 이번 징계와 관련해 의문 드는 몇가지들을 언급해본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권오갑 총재는 어디갔나

이날 징계 수위 발표전 K리그 상벌위원회는 사과문을 작성한 후 낭독했다. 일단 이것부터 이상하다. 왜 대체 상벌위원회가 사과문을 발표하는가. 잘못한 1차적 당사자는 전북의 스카우터이자 책임이 큰 전북 현대 구단인데 말이다.

물론 프로축구연맹도 관리 감독 소홀에 대한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날 이 사과문을 대신 읽은 사람은 허정무 부총재였다. 권오갑 총재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사과문 끝에는 ‘프로축구연맹 총재 권오갑’ 이라고 분명 적혀있다.

항상 그렇겠지만 총재님은 바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총재라는 직위에 있다면 바로 이런 일 때 모습을 드러내 연맹의 잘못에 대해 나서서 설명해야한다. 대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이 되야 총재가 얼굴을 내비칠 수 있는 것일까. 역대 K리그에서 이보다 중대한 사안이 있기나 했던가. 총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자체가 이 사안을 연맹에서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를 반등하는 바로미터다.

▶‘협조하겠다’던 전북, 전혀 협조 않고 사과문은 달랑 한 장

가장 책임이 큰 전북의 태도도 어이없다. 조남돈 상벌위원장은 "스카우트를 조사하면서 진술서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오늘까지 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취재진이 이를 한번 더 묻자 “여태까지 받은 자료가 없다”고 했다.

즉 전북 측은 전혀 상벌위원회에 협조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규명을 위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 질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한 지난 5월의 다짐은 거짓이었다.

게다가 전북은 이 발표가 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공식홈페이지에 한 장도 되지 않는 분량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상황 설명이나 구체적 방안도 없고 그냥 인정뿐이었다. 그 어떤 사과를 해도 분노가 사그라들기 힘든 시점에 전북이 하는 최선이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굳이’ 같은 시간에 물타기 보도 줄이어

참 공교롭게도 전북 현대의 징계수위가 발표되는 앞 뒤로 중요한 뉴스들이 연맹과 대한축구협회 등에서 여럿 나왔다.

약 한시간여 전에는 백승호가 포함된 AFC U-19챔피언십에 나설 안익수호의 명단이 발표됐고 발표 직후에는 안산 무궁화가 승격 싸움에서 완전히 배제된다는 굵직한 뉴스가 연맹을 통해 나왔다.

물론 발표하고 나니 ‘하필’ 비슷한 시간대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주말에도 이런 뉴스를 잘 발표하던 기관들이 굳이 이 시간대에 발표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날 축구 업계 관련자들의 모든 촉각은 상벌위원회의 전북 징계에 대한 것뿐이었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쏠릴 뉴스를 조금이나마 분산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진 않은지 의심될 수밖에 없다.

▶‘리그 사정 고려 안했다’는 상벌위, 고려했어야 했다

조남돈 상벌위원장은 전북에 큰 손해가 없는 징계 내용에 대해서 “징계를 정하는데 있어 현 리그 사정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걸 고려하면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징계가 중요했던 것은 시즌 중 승점삭감의 징계가 내려지면 전북의 리그 순위상 우승경쟁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 것인가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동네 축구 좋아하는 아이를 놓고 생각해보라고 해도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상벌위는 ‘리그 사정은 고려 안했다’고 한다. 모두가 고려해야한다고 여겼던 상황을 상벌위 혼자 고려 안하는 것이다. 물론 법리적으로 경남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했다는 말도 이해한다.

하지만 경남 징계 때도 이미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얘기가 나왔던 상황에서 전북이라도 제대로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앞으로 K리그 내에서의 제대로 된 기강 확립이 가능했다. 상벌위는 향후 K리그의 도덕성과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덜 중요한 가치를 지키느라 날려버렸다.

K리그가 위기라고 한다. 맨날 위기라고 한다. 축구관계자들 조차 야구에 비해 인기가 적은 것을 인정하는걸 넘어 그 격차가 더 벌어지지않기만을 바란다. 이미 K리그는 2002년 찾아왔던 좋았던 시절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었다. 이번 일이 부디 스스로 관뚜껑을 만드는 일만 아니길 바라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아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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