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사천=이재호 기자] 이웅희(28·상주 상무)는 정말 요즘말로 ‘흙수저’였다.

학창시절, 청소년 대표는커녕 대학선발조차 낙방했다. 소위 ‘축구 명문대’도 나오지 못했고 대학 졸업 후 최하위권팀이었던 대전 시티즌의 번외 선수로 겨우 프로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8월 열린 2015 동아시안컵 울리 슈틸리케호의 예비명단에 발탁된 것은 흙수저가 금수저는 아니라도 은수저까지는 간 쾌거였다.

꼴찌팀 번외선수에서 국내 최고구단의 주전 수비수에 이어 대표급 선수로, 그리고 다시 상주 상무의 파릇파릇한 신병이 돼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상주 상무의 전지훈련이 진행중인 경남 사천에서 만난 이웅희는 훈련소에서 막 자대배치를 받은 신병의 군기가 느껴졌다.

▶군대,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인터뷰를 한 시점은 훈련소에서 제대한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았던 시점. 이웅희에게 훈련소 생활이 어땠는지를 묻자 고개를 내저으며 “정말 군대란 곳이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구나하고 느꼈어요. 지옥을 맛보고 왔어요”라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이 뭔지를 묻자 “너무 추웠어요. 정말 추워서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니까요. 논산훈련소에서 나오고 나서도 감기가 안났더라고요. 그리고 처음엔 군대문화에 적응이 안됐죠. 아무래도 나이를 먹고 가다보니(한국나이 29세), 어린 조교들이 반말하는게 충격이었죠”라며 웃었다. 그리고 “함께 입대한 상주 상무 선수들 중에 잘 모르던 선수도 있었는데 확실히 힘드니까 금방 친해지더라고요”라며 금세 함께 훈련을 한 선수들과 친해졌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흙수저 축구인생, 중앙수비수 변신으로 활짝피다

사실 이웅희는 전혀 주목받는 유망주가 아니었다. 학창시절, 대표는커녕 대학선발도 못 뽑혔고, 대전 시티즌 입단당시도 지명이 아닌 번외선수로 겨우 입단했을 정도. 이웅희는 자신이 지금의 위치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중앙수비수로의 변신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저는 늘 오른쪽 풀백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상주 상무의 새로운 감독님이신 조진호 감독님께서 대전 감독으로 부임하시면서 저에게 중앙수비수로 바꿀 것을 지시하시더라고요. 사실 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죠. 제 자리에서 밀려서 어쩔 수 없이 포지션 변경을 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포지션 변경 이후 팀도 잘나가고 저도 경기력이 좋았어요. 그리고 이후 FC서울로 이적, 대표팀 예비명단에 들기도 했죠. 정말 중앙수비수로 바꾼건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대전시절의 이웅희. 프로축구연맹 제공
2011시즌 프로 데뷔 후 3년 만에 K리그에서 인정받는 수비수로 거듭난 이웅희는 2014시즌을 앞두고 FC서울로 이적했다. 번외지명을 받았던 선수가 FC서울이라는 국내 최고의 대형구단으로 이적한 것은 기적이었다.

“전 처음에 서울로 갈때부터 백업 수비수라는걸 알고 갔어요. 그래도 오래 오른쪽 풀백을 봤기 때문에 차두리 형의 백업으로 알았던거죠. 그런데 서울와서 아예 풀백으로서 공격에대한 미련을 버리고 수비에만 집중하다보니 더 경기력이 향상됐어요. 지금은 정말 중앙수비수를 보는 것이 행복해요.”

2014시즌 초반은 백업으로서 간간히 경기만 나오던 이웅희는 후반기부터 서울의 스리백 중앙 오른쪽 수비수 자리를 완전히 꿰차며 서울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심지어 지난 시즌에는 오스마르에 이어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로 각광받았다.

▶상주 상무, 결국 동기부여가 중요… 절대 강등 안 시킬 것

이웅희는 대전, 서울 시절 상주 상무와 상대할 때마다 느낀 것이 있다고 한다. “단 한 번도 상주가 쉬웠던 적이 없어요. 정말 이름 있는 선수들이 구성된 팀이 괜히 그런게 아니더라고요”라며 자신 역시 그동안 상주 상무가 왜 승격 후 강등의 역사를 반복해왔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결국 동기부여가 문제일겁니다. 아무리 많아도 2년밖에 안 있는다는 소속감의 문제죠. 하지만 전 지는건 용납할 수 없어요. 2014년 서울에 있을 당시 같이 중앙수비를 본 김주영과 경기장 밖에서는 사실 성격이 극과 극이었어요. 하지만 축구장안에서 정말 승부욕이 같을 정도로 잘 맞았어요. 둘다 지기 싫어하죠. 결국 상주도 기술, 시스템보다 동기부여를 통한 정신력 강화와 선수단 융화가 시즌의 성패를 결정하겠죠.”

상주는 현재 K리그 팬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다. 아무래도 승격 후 강등의 역사를 2번이나 반복한 상황에서 또 다시 올라와 아쉬움을 남겼기 때문. 이웅희는 “상주에 대한 비난의 말이 아쉽고 안타깝다. 저는 입대를 하면서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왔다. 정말 상주를 강등시키지 않는 것이다. 골을 허용하고 지는게 싫다. 밖에서는 맹해 보여도 경기장 안에서는 정말 승부욕이 강하다. 강등을 당하고 싶지 않다”며 강등불가를 선언했다.

FC서울에서 활약하던 이웅희의 모습. 프로축구연맹 제공
▶흙수저였던 이웅희, 제2의 이정협 꿈꾼다

FC서울에서 주전으로 거듭나면서 이웅희는 지난해 8월 동아시안컵 전에 발표됐던 동아시안컵 예비명단에 포함됐다. 비록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대학선발도 해보지 못했던 선수가 국가대표 예비명단까지 든 것은 크나큰 성과였다.

“사실 전 국가대표라는건 꿈도 꾸지 않았어요. 프로에 와서도 하루하루 버텨내는게 목표였죠. 그러다보니 한 계단씩 올라가더라고요. 대표팀 예비명단이 발표됐을때 매우 기분이 좋았죠. 사실 늘 축구를 하면서 누군가는 알아봐주겠지하는 마음으로 했는데 정말 알아봐주고 인정해줬다는 거잖아요. ‘조금씩 인정받고 있구나’만으로 저는 행복했어요.”

이웅희는 “결국 최종명단에 들지 못했을때 아쉽긴 했지만 그게 제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정말 원래 대표팀이 당연한 선수면 아쉬울텐데 그런게 아니니까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직 기회는 많이 남아있다. 단적인 예로 상주 상무에 오기전까지만해도 이웅희보다도 더 주목받지 못했던 이정협(울산 현대)처럼 상주를 통해 대표급 선수로 거듭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정협처럼 된다면 좋겠죠. 전 일단 팀을 클래식에 잔류시킬 겁니다. 주전 보장도 아니고 일단 주전부터 따낸 후 팀에서 잘하면 알아주시겠죠. 전 제일을 묵묵히 다할 겁니다. 상주는 강등될 거라는 팬들의 인식을 바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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