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한국축구에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뭔가 인정받기가 힘든 일입니다. 이제야 그런 자리가 돼서 매우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 2014 K리그 시상식

“잘난 아버지를 두면 항상 이렇더라고요. 하하.” - 은퇴 경기 기자회견

그에게는 평생 그림자를 드리울 자랑스러우면서도 원망스러울 ‘전설’ 차범근이라는 이름이 따라다닌다. 그야말로 ‘잘난’ 아버지를 두고 그 그림자 밑에서 뛰었지만 차두리는 정말 ‘잘해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잘난 아버지와 잘한 아들의 행복한 마침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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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31일 오후 1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KEB 하나은행 FA컵 결승전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전반 33분 다카하기, 후반 43분 아드리아노 후반 추가시간 몰리나의 프리킥 골이 터지며 3-1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안양 시절 우승이후 무려 17년 만에 들어 올린 감격의 FA컵 우승컵이다.

이날 경기를 끝으로 차두리는 완전히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날 경기전까지는 밝혀지지 않았던 내용이지만 이미 다음 주 슈퍼매치에 차두리는 경고누적으로 결장하기에 더 이상 홈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결국 FA컵 결승전을 끝으로 차두리는 최용수 감독과 현역 마지막 경기를 가지기로 교감을 나눈채 결승전에 나섰다. 선수들에게조차 비밀로 했던 극비사항이 경기 후 기자회견을 통해 드러났다.

차두리는 “어쩌면 현역으로서 이번경기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한다. 이날 우승을 못했다면 ACL 진출을 위해 리그에 나서야했지만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될게 없다. 잔여경기는 후배들에게 출전 기회를 주고 싶고 그것이 후배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며 "발바닥 부상도 다 낫지 않았다. 몸도 생각해야한다. 아마 이 경기가 제 마지막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내 차두리는 현역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채 끝내게 됐다. 전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이기에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려봤을 것 같지만 스코틀랜드시절 리그와 FA컵 우승컵을 제외하곤 그의 선수시절 내내 우승컵은 거리가 멀었다.

오랜 외국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 왔을 때는 여러 번 기회는 있었다. 2013년 AFC 챔피언스리그, 2014년 FA컵, 2015년 아시안컵까지 매번 결승에 올라갔지만 항상 한 끗이 모자라 준우승에만 그쳤다.

그런 그가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채 마무리를 했다. 축구를 시작하는 이 세상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영화 같은 시나리오라면 ‘월드컵에서 활약, 유럽리그 진출, 우승컵 경험, 은퇴직전 국내 복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현역은퇴’가 아닐까. 차두리는 그야말로 이 모든 것들을 이루며 영화 같이 축구인생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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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는 사실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차범근이라는 존재로 인해 분명 큰 혜택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그 그늘 밑에서 햇빛을 보고 싶어 고통스러운 적도 많았을 것이다. 차두리는 “그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어긋나기도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고 지난 2014 K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 수비수상을 받은 후 “한국축구에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뭔가 인정받기가 힘든 일이다. 이제야 그런 자리가 돼서 매우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는 짧지만 큰 울림이 있는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겪어보지 않고는 그 말의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갖는 기대감은 평생 자신을 옥죄는 속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두리는 잘 이겨냈다. 독일과 스코틀랜드, 국내에서 모두 분명 큰 족적을 남겼다. 지난 3월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때도 최근 열린 국가대표선수의 은퇴식 중 가장 성대하고 전국민이 아쉬워한 경우는 드물었다.

차두리는 은퇴하는 당일 우승컵을 들어올린채 경기장에 내려온 아버지를 찾아가 안으며 자신 목에 있던 우승 메달을 아버지에게 걸어줬다. 그동안 자신을 ‘잘한’ 축구선수로 키워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을 것. 그러나 아버지 차범근은 “나도 감독할 때 FA컵 우승 메달을 걸어봤다”고 말했다. 아들 차두리는 “잘난 아버지를 두면 항상 이렇더라”라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안다. 아버지 역시 속으로 많이 기뻐하고 이 메달을 평생 집에 걸어둘 것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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