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우리는 축구를 바라볼 때 선수를 장기판의 말 대하듯 할 때가 많다. ‘이 선수가 여기 온다면 더 세질 텐데’, ‘저 선수가 나가고, 이 선수만 살아나면 우리팀은 우승할 텐데’하고 말이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지만 선수도 사람이다. 그리고 평범한 20~30대의 젊은이다.

‘엑소더스(Exodus, 대탈출)’라고 표현될 정도로 K리그는 현재 다른 아시아리그로 빠져나가는 선수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7월 1일부로 개장된 여름 이적시장에서 K리그는 속수무책이다. K리그 득점1위였던 전북의 에두가 중국 2부리그로 떠났고 수원의 외인 공격수 레오 역시 중국 2부리그행을 택했다.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 고명진, 제주의 수비수 이용은 카타르행을 택했다. 수원의 공격수 정대세는 일본으로 떠났다. 모두 K리그에서 받는 연봉의 최소 3~4배이상을 받고 떠난 것.


왼쪽부터 고명진, 정대세, 에두

문제는 ‘돈’이다. 그러나 그전에 선수가 왜 돈을 좇는지 그 심리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돈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선수들이 더 큰 돈을 주는 팀을 택하는 100%의 이유로 설명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축구관계자는 국내선수라면 피할 수 없는 군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최근 2012 런던올림픽,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혜택을 받은 선수가 늘어났지만 기본적으로 선수들은 군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며 “상무나 경찰청을 가더라도 2년간 소득이 전무하다보니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군대를 들어가기 전에 기회가 오면 돈을 축적해야한다’는 생각과 함께 제대 후에는 ‘그동안 못 벌었으니 이제라도 벌어야한다’는 보상심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엑소더스 사태만이 아닌, 이전에도 중동 혹은 중국으로 떠난 선수들의 사례를 보면 군 입대를 얼마 앞두지 않았거나, 군 제대 직후 이적한 사례가 많다.

한 에이전트는 “선수들이 돈을 좋아한다”는 다소 간단한 주장을 펼쳤다. 현장에서 선수들의 이적을 주관하는 입장인 그는 “선수에게 거액을 제시한 아시아팀과 아시아팀 제시액 보다 적은 유럽리그 팀을 놓고 선택지를 주면 대부분 돈을 많이 주는 아시아팀을 택한다”며 “선수들도 요즘 청년들처럼 돈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라며 한탄했다.

이같은 추세는 축구계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와도 맥락을 함께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도전보다 안정을 택하는 보수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장년층은 ‘젊은이들이 도전을 안한다’고 불평하고 청년층은 ‘사회가 도전보다 안정을 택하게 만든다’고 토로한다. 소득은 적어도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젊은층이 노량진에 넘쳐나고 있다. 선수들도 조금 더 안정을 택하고 싶은 요즘 젊은이다.

무조건 ‘돈만 좇아 K리그를 외면한다’고 탓하기 보다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한 분석이 필요하다. 군 복무로 축구가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선수들의 쫓기는 심리와 여기에 반작용으로 드러나는 안정적 선택이 엑소더스의 가장 큰 문제일지 모른다.

단적으로 서울 최용수 감독을 보자. 최 감독은 중국 장쑤 세인티로부터 약 6배(약 60억원)에 달하는 계약 총액의 제의를 받았지만 고심 끝에 잔류를 결정했다. 아무래도 요즘 세대와는 거리가 있는 최 감독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뿌리치기 힘든 제안임에도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은 점이 서울 잔류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 같은 K리그 엑소더스의 사태의 최고 해결책은 재투자와 같은 ‘선순환’뿐이다. 하지만 이는 다소 이상론적인 주장일 뿐이다. 포항의 황선홍 감독도 "이적료를 많이 받았으면 써야한다. 단지 선수를 팔고 끝나서는 안 된다. 그와 견줄만한 선수가 영입되어야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구단들이 주축선수를 팔고나면 그 이적료를 구단 운영비로 쓰고 있다. 가뜩이나 적자구조로 생존해있는 구단 입장에서는 도리가 없다. 결국 선수는 팔려나가는 데 재투자는 되지 않고, 그러다보면 좋은 선수가 빠져나가 리그의 경쟁력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관중 증가는 꿈도 못 꿀 일이 되고 있다.

이 같은 K리그 엑소더스 사태에 대해 일각에서는 ‘차라리, 네덜란드나 벨기에 리그처럼 셀링 리그(Selling League)로 가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셀링 리그는 다른 나라에서 데리고 가고 싶은 선수들이 많은 리그로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선수장사를 통해 재투자와 유소년을 키우는 식으로 세계적인 축구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론대로 네덜란드와 벨기에 리그처럼 아름답게 선순환이 된다면 리그도 좋고 국가대표팀도 강해져 좋다. 하지만 문제는 네덜란드나 벨기에 혹은 아프리카 리그의 경우 자국 선수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도 거의 유럽 상위리그로 간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그렇게 좋은 리그, 좋은 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아지니 선수들의 실력도 향상할 수밖에 없고 대표팀의 수준 향상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한국이 셀링리그화 돼서 아시아 다른 리그로 선수들이 팔려나간다 해도 일반적으로 K리그와 비슷한, 혹은 더 낮은 수준의 리그로 향하게 된다. K리그가 아시아 최상위리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수들이 K리그보다 더 못한 리그로 가서 뛰다보면 자연스레 선수들의 기량은 유지 혹은 하락만 하게 된다. 당연히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다보면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던 한국 대표팀 역시 수준이 하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엑소더스의 사태에서 가장 암울한 것은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선수를 판 이적료로 재투자라도 되면 좋은데 적자구조인 프로축구 구단의 형편에서 재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보수적인 마음으로 인해 사실 멀리 봐야하는 축구 인생에서 ‘돈’을 좇고 있다. 자연스레 K리그보다 수준 낮은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많아지면 대표팀 축구마저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1992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은 당시 현직 대통령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아주 간단한 문구인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로 이겼다. 대통령 선거도 이렇게 간단한 문구로 승리할 수 있는데 K리그 엑소더스는 클린턴의 ‘경제’처럼 단 하나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아마 클린턴 대선캠프가 다시와도 K리그 엑소더스에 대해 한 문구로 설명해달라고 하면 ‘K리그 엑소더스의 문제는… 너무 많아, 바보야’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스포츠코리아, 스포츠한국 DB, 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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