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 2002시즌 종료 후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라이벌 구단이자 세계 최고의 명문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존 헨리 구단주는 보스턴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로 당시 오클랜드 에슬레틱스의 단장이었던 빌리 빈을 초청한다. 헨리 구단주는 '당신의 방법으로 팀을 재구성한다면 다음 시즌은 편안하게 보스턴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당시 프로스포츠 역사상 단장에게 주는 최고액인 1,250만달러(5년 250만달러)를 제안했다.

전 세계 스포츠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제안이었지만 빌리 빈은 고심 끝에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 자신이 10대 시절 최고의 유망주로서 각광받을 때 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돈'에 이끌려 무리하게 프로행을 택한 후 처절한 실패(메이저리그 6년간 148경기 타율 0.219 출루율 0.246 장타율 0.296)를 맛본 경험이 있기 때문. 또한 오클랜드에서 지내는 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왼쪽이 현 오클랜드 에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 서울 최용수 감독

# 지난 7월 첫째 주 한국 스포츠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다. FC서울의 최용수 감독이 중국 C리그의 장쑤 순톈으로부터 2년6개월간 최소 20억원에서 최대 25억원, 즉 총액 최소 50억원에서 최대 63억원에 달하는 제의를 받은 것. 빌리 빈처럼 세계 최고액은 아니라도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지도자가 받는 최대 금액으로 기록될 정도의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고심을 거듭하던 최용수 감독은 끝내 제안을 거절하고 서울 잔류를 선택했다. 최 감독은 "돈을 쫓아가서는 안됐다. 내게 중요한 것을 생각했다. 시즌 중에 대안도 없이 팀을 떠나는 것은 무책임한 선택"이라며 "어떤 선택이 훗날 후회 없는 결정일까를 생각했다.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지도자는 신념과 철학을 지켜야한다. 서울에서 선수들을 키우며 팀을 육성해가고 있는데 타이밍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실 빌리 빈과 최용수는 현실적으로 보면 '바보'나 다름없다. 아마 범인(凡人)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쉬운 선택지를 따라가는 것이 합리적이며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빌리 빈은 세계 스포츠구단 단장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고, 또한 매번 쥐꼬리만한 팀 예산을 줘 오죽하면 사비까지 털어 트레이드를 추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오클랜드보다 세계 최고의 팀 예산과 명성을 가진 보스턴으로 가는 것이 일견 현명해 보인다.

최용수 역시 자신의 기존 연봉(4억원)보다 약 5~6배는 많은 금액을 눈앞에 쥘 수 있어도 '대의명분'과 '신념과 철학'이라는 현대에 와서 고리타분한 거절의 변을 밝혔다.

이런 '바보'같은 선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울림을 준다.


영화 '머니볼'의 포스터

빌리 빈은 보스턴의 제안을 거절한 후 당시까지 초기 단계였던 '머니볼'야구를 더 관철시킬 수 있었고 이후 '고정된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듣게 된다. 머니볼 야구를 통해 새로운 선수평가 방식, 극도의 한계에서 뽑아낼 수 있는 혁신의 가치 등을 야구계만이 아닌 전 세계가 인정했고 그의 철학을 담은 책 '머니볼'은 스포츠쪽만이 아닌 경제서에서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영화 '머니볼' 역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큰 감동을 줬다.

아마 빌리 빈이 우승에 목말랐던 보스턴(보스턴은 2004년이 돼서야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86년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함)으로 갔더라면 지금과 같은 위상과 평가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분명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최용수의 선택이 나왔을 때도 많은 이들은 박수를 보냈다. 최근 K리그 내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막대한 자본'이 버티고 있는 중국과 중동행 러시에서 이제 감독까지 그러한 기류에 편승될 뻔했던 것을 최 감독이 제어시킨 부분은 백번 칭찬받아 마땅하다. '프로'에게 '돈'만큼 중요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시대임에도 신념과 철학, 선수와 팬들을 위해 내린 대승적 결정은 놀랍기 그지없다.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기에 최 감독이 내린 결정은 좀 더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건 최용수, 빌리 빈도 결코 일반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야구 역사상 최고의 단장으로 평가를 받고, 선수시절에도 이미 전설적인 공격수였고, 단 하나밖에 없는 한국 최고의 빅클럽 중 하나인 FC서울의 감독의 위치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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