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글=이재호 사진=이혜영 기자]
'[단독 인터뷰上]‘대표팀 불발’ 석현준 “슈틸리케 기준에 맞춰 변할 것"'에서 계속
[단독 인터뷰上]‘대표팀 불발’ 석현준 “슈틸리케 기준에 맞춰 변할 것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던 데뷔전, 그리고 유벤투스

그렇게 정식으로 세계 최고의 유스시스템을 가진 팀이자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4회의 명문구단 아약스에 입단한 석현준은 2010년 2월 4일 마침내 네달란드 에레디비지에(1부리그) 데뷔까지 성공한다. 로다 JC와의 리그 경기에서 팀이 3-0으로 앞서던 후반 35분 마르코 판텔라치와 교체 투입되며 마침내 꿈에 그리던 아약스 데뷔전을 치렀다.

항상 100여명도 오지 않던 고등학교 축구만을 경험하던 석현준이 5만 관중이 움집한 암스테르담 아레나에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팬들은 ‘숙(Suk)’을 외쳤고 “그때를 잊지 못한다. 정말이지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석현준은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팀이기도한 유벤투스(이탈리아)를 상대로 위협적인 공격을 펼치는 등 아약스의 비밀병기로 떠올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8세의 석현준이 참 대단해요. 그 당시에는 유로파리그에서 뛴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줄 모르고 그냥 아약스에서 뛰는 게 좋았어요. 필리페 멜루, 조르지오 키엘리니, 지안루이지 부폰, 디에구 같은 선수와 뛰었다니 저도 나중에 돼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됐죠.”

석현준에게 마틴 욜과 아약스란

석현준은 아약스 내에서 유망주로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아약스 유스 출신 선수들의 텃세에도 출전 기회를 얻고 활약할 수 있었던 건 마틴 욜 감독의 보호와 사랑때문이었다.

“욜 감독님은 정말 절 사랑해주셨어요. 저희 팀이 컵대회를 우승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굳이 저만 데려가서 우승컵도 들어보게 하고 세리머니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실 정도로 배려해주셨으니까요. 재계약 문제도 감독님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시고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욜 감독님이 해임되셨을 때 전 2군에 있었는데 2군에는 욜 감독님 눈밖에 나 밀려온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 선수들이 욜 감독님 해임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숙(Suk), 너희 양아버지 잘렸대’라고 말했어요. 그만큼 절 좋아해주신 건 역시 토트넘 시절 이영표 선배님을 통해 한국 선수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지금이라도 욜 감독님이 불러주신다면 어떤 팀이든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욜 감독의 사랑은 석현준의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석현준은 매 훈련 200%이상을 다했다고 한다. 욜 감독은 훈련 중 “봐라, 숙은 훈련에서 200%를 해낸다. 너희도 저렇게 하면 내가 안 쓸수가 없다”고 1군 선수들을 다그칠 정도로 든든한 후원자였다.


석현준에게 든든한 지지 보냈던 마틴 욜(오른쪽) 감독. ⓒAFPBBNews = News1

당시 포지션 경쟁자였던 루이스 수아레즈(현 바르셀로나)도 월드컵 중 팀 매니저를 통해 석현준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자신이 아무리 팀내에서 독보적인 입지라도 눈에 띄게 치고 올라오는 선수가 있으면 신경이 쓰이는 법. 석현준은 “약 6개월 가량 정말 제 능력의 200%이상을 해냈어요. 그러나 늘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죠. 저에게도 한계가 왔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욜 감독의 해임 이후 프랑크 데 부어 감독이 들어오며 석현준은 비(非)아약스 유스 출신과 아약스 유스 출신간의 세력 싸움에서 밀리며 더 이상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그렇게 석현준은 약 1년 반 가량의 아약스 생활을 접고 같은 리그의 FC 흐로닝언으로 옮기며 자신 인생 첫 프로팀이었던 아약스를 떠났다.

“아약스에 있을 때는 아약스가 정말로 좋은 구단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근데 흐로닝언으로 떠난 후 비로소 아약스가 정말로 큰 구단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도 아약스를 떠난 것을 정말 후회하지 않아요. 소중한 경험이었고 아약스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5년간 5팀을 거치는 떠돌이 생활

석현준이 아약스를 떠난 2011년 이후 2015년까지 석현준이 거친 팀은 무려 3개국(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포르투갈), 5개팀(흐로닝언, 마리타무, 알 아흘리, 나시오날, 비토리아). 이처럼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출전시간’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그의 철학때문이었다.

“전 출전 시간을 보장해줄 수 있는 팀이 항상 최우선 고려대상이에요. 아약스를 떠날 때도, 흐로닝언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죠. 물론 그동안 힘든시간들이 많았죠. 그럼 전 집에서 설교집을 보거나 하며 신앙의 힘으로 버텨냈어요.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저를 붙잡아주신 건 종교의 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 사이 석현준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와일드카드를 제외하곤 자신의 나이인 1991년생까지 출전할 수 있었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친선전에 잠시 소집 제안을 받았지만 불발된 후 한국이 금메달을 따는 것을 지켜봐야했고 마리티무에서 맹활약하며 포르투갈 최고 명문 클럽인 벤피카, 스포르팅 리스본, SC 브라가 등의 입단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팀이 반강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보내는 바람에 갈 수밖에 없기도 했다. 석현준은 “그때 사우디를 가지 않고 버텼더라면 하는 생각이 제 인생 가장 아쉬운 선택이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2010년의 석현준, 2015년의 석현준

석현준은 2010년 세계 최고의 유스 시스템을 보유한 아약스에 있을때 솔직히 자신이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있었다고 고백했다.

“2010년의 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행복하다’고 느꼈죠. 솔직히 아약스를 나와 FC 흐로닝언으로 옮겨도 매 경기에 나갈 수 없어 불평불만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제가 뛰는 팀임에도 전 그 팀을 사랑하지 않는 바보였죠. 이후 포르투갈리그의 마리티무로 이적했을 때는 라커룸 화장실의 변기 뚜껑도 없는걸 보고 ‘내가 어쩌다 이런 팀까지 왔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이후 시우디아라비아 리그의 알 아흘리로 갔을 때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부를 누리며 제 자신을 멋내는데만 신경썼다”는 석현준은 그곳에서도 부상으로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자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돈이 많아 세상의 모든 것이 좋아도 결국 축구를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저를 발견했죠. 그래서 다시 유럽리그에서 뛰기 위해 연봉을 엄청 줄여서 사우디를 나왔어요. 팬들이 저를 ‘중동에서 뛰는 석현준’이 아닌 ‘유럽에서 뛰는 석현준’으로 알길 바랐거든요. 돈이야 나중에 잘해서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물론 나중에 진짜 잘 벌어야죠(웃음).”

2010년과 2015년 현재의 자신을 비교해달라는 말에 석현준은 “2010년의 석현준이 더 화려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의 석현준이 정말 힘든 시기도 보내고 값진 경험을 하며 더 성숙한 인간이 됐다. 현재의 나에게 더 만족한다”며 최고의 유망주에서 나락까지 떨어졌다 다시 유럽이 주목하는 공격수가 된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회한에 잠겼다.

내가 축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계속 유럽에 도전하는 이유

단순하고 멍청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대체 왜 축구선수를 하냐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데 왜 계속 축구를 하고 있냐고. 석현준은 망설임 없이,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전 골을 넣으면 잠을 못 자요. 골을 넣고 환호하는 관중, 저에게 달려오는 동료들…. 이렇게 하나 되는 기분과 짜릿함은 그 어떤 중독보다 강해요. 그 감정을 잊을 수 없어서, 계속 느끼고 싶어서 그래서 축구를 계속하게 되네요.”

석현준의 화려한 이력(네덜란드 리그, 포르투갈 리그 경험, 대표팀 경력)만 생각하면 편하게 K리그로 돌아와 좀 더 편한 축구선수의 삶을 살기 충분하다. 그러나 석현준은 2010년 프로 데뷔 후 지난 6년간 무려 3개국(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포르투갈), 6개팀(아약스, 흐로닝언, 마리타무, 알 아흘리, 나시오날, 비토리아)을 옮겨 다니며 계속해서 유럽에서 도전을 하고 있다. 왜 그렇게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제 축구선수 생활이 끝날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여기서 ‘유럽 도전’이라는 꿈을 포기하면 좀 더 부와 명예를 얻을 수도 있겠죠. 또 국가대표 선발도 더 쉬울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중에 뒤를 돌아보면 정말 후회를 많이 할 것 같아요. 지금이 아니면 도전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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