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아시아 챔피언' 호주가 1.5군으로 정예 멤버를 꾸린 '세계 챔피언' 독일을 상대로 적지에서 무승부를 거뒀다. 이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2004년 겨울, 한국축구사의 길이 기억될 바로 '그 경기'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호주는 26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독일 카이저슬라우텐의 프리즈 발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과의 A매치 경기에서 2-2로 비겼다. 2-1로 다 이긴 경기에서 종료 9분을 남기고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골을 내준 것이 아쉬울정도였다.

이날 '2015 AFC 아시안컵 챔피언' 호주는 팀 케이힐과 로비 크루스 등 아시안컵 우승 핵심 멤버들이 부상 등을 이유로 함께하지 못했다. 케이힐의 대체자인 토미 유리치 역시 후반 종료 직전에야 경기에 들어설 정도였다.

반면 '2014 FIFA 월드컵 챔피언' 독일은 홈에서 열리는 경기답게 마리오 괴체와 마르코 로이스, 메수트 외질 등 정예 멤버를 내세웠다. 단순히 이름값만이 아닌 FIFA랭킹의 차이(호주 65위, 독일 1위)에서도 큰 격차가 있는 팀간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호주는 독일을 거의 이길 뻔했다. 만약 종료 9분전 허용한 골이 아니었다면 세계축구계는 발칵 뒤집혀질 뻔했다.

이 같은 '대어' 독일을 약 10여 년 전 한국은 3-1로 대파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독일은 막강한 팀이었다. 2002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팀. 물론 유로2004에서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아픔을 겪긴 했지만 2006년 자국에서 열릴 월드컵을 위해 팀을 재정비 중이었다.

독일은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홍보를 위해 분데스리가 전반기 종료 직후 아시아 국가들과 친선전을 열었다. 친선 투어였지만 독일은 올리버 칸, 미로슬라브 클로제, 미하엘 발락, 필립 람, 바스티안 슈바인스타이거 등 베스트 멤버를 모두 불렀고 일본을 3-0으로 완파한 뒤 부산 아시아드(2004년 12월 19일 경기)를 찾았다.

그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예상치 않았다. 상대의 전력이나 이름값이 너무 대단한 것도 있었지만 문제는 한국이 박지성, 이영표 등 주축 선수들을 아직 유럽리그 진행 중이었기에 소집할 수 없었던 것. 이에 한국은 K리거 위주의 팀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분데스리가에서 활약 중이던 차두리만이 예외적으로 유럽파 중 한국에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일단 전반 5분경 나온 무려 70m에 가까운 거리를 혼자 질주하며 독일 수비수 3명을 젖히는 차두리의 트레이드마크인 '폭풍 질주'가 나오자 독일은 흔들렸다. 이어 전반 16분 이동국의 크로스가 뒤로 흐르자 김동진의 논스톱 왼발 슈팅이 작렬했고 당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였던 올리버 칸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전반 24분 미하엘 발락이 동점골을 뽑아내며 한국의 반란은 잠재워지나 했지만 후반 26분 이동국의 환상적인 오른발 발리킥이 작렬하며 한국은 승기를 잡았다. 당시의 발리킥은 이동국이 넣은 수많은 골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회자되는 '환상골'의 정수였다.

독일은 이후 페널티킥 기회를 얻었지만 발락이 찬 것을 이운재가 막아내며 패배의 기운이 엄습했다. 이어 조재진이 후반 종료 3분을 남기고 차두리의 패스를 이어받아 추가골을 넣으며 3-1 완승을 거뒀다.

한국은 사실상 1.5군보다도 못한 전력으로 독일의 최정예를 3-1로 완파했다. 이는 단순히 홈경기라는 이점으로만 설명되지 못하는 놀라운 경기력과 결과였다.

이날 경기를 회상하면 참으로 명장면이 많았다. 김동진의 환상적인 논스톱 슈팅, 차두리의 70m 폭풍질주, 이동국 하이라이트에 항상 빠지지 않는 결승 발리골, 국가대표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등번호였던 11번을 달고 뛰던 차두리 등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던 2004년 겨울의 기억은 10여년이 지난 현재 호주의 선전으로 인해 문득 한국 축구팬들의 뇌리를 스친다.

사진= 스포츠코리아, ⓒAFPBBNews = News1, SBS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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